“없다 해도 가면 판다?”…’요소수 품절’ 주유소의 진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1 08: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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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요소수 갖고 있어도 못 파는 이유…“일부러 안 주는 것처럼 오해해 억울”

대개 휘발유와 경유 가격만 적혀 있던 주유소 표시판에 또 하나의 글씨가 새겨졌다. ‘요소수 없습니다.’ 사무실 유리창과 요소수 자동주입기에도 품절을 알리는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10월말부터 가시화된 요소수 품귀 사태로 전국 운송업 종사자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사태가 길어지면 자본주의 연결고리인 유통망 일부가 끊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미리 전화하여 판매 여부를 확인 후 방문해 주십시오.’ 요소수 공급업체 롯데정밀화학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알리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국내 요소수업계 점유율 1위다. 롯데가 공급하는 요소수 자동주입기(EBD)가 설치된 주유소는 전국 2580곳. 이 중 서울에서는 요소수를 구하기 힘들 전망이다. 11월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전체 주유소 470곳을 점검한 결과 요소수를 파는 곳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에서도 국내 배송 요소수의 구입길이 막혔다. 쿠팡, 옥션, 지마켓 등 주요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요소수는 배송에 1주일 이상 걸리는 해외직구 상품으로만 채워졌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와 번개장터는 11월9일 아예 요소수 거래를 제한했다. 매점매석과 사기 등이 횡행하고 있어서다.

요소수 품귀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1월9일 경기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를 돌아보니 대부분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10리터 통으로 요소수를 판매하는 주유소에 요소수가 하나도 없다. ⓒ 시사저널 이종현
요소수 품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1월9일 경기도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를 돌아보니 대부분이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10리터 통으로 요소수를 판매하는 주유소에 요소수가 하나도 없다. ⓒ 시사저널 이종현

 

온라인에서 막한 구입길…주유소 10곳 둘러보니

이런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희망찬 얘기가 돈다. “주유소에 전화해서 없다고 해도 직접 가면 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절박한 화물차 기사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사저널은 11월9일 경기도 고양시 내 롯데 요소수 자동주입기가 설치된 주유소 10곳을 직접 둘러봤다.

서울에서 고양시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제1자유로 주유소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규모가 크고 접근성도 좋아 화물차가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 김아무개씨는 “하루에 화물차만 70~80대가 찾아와 요소수 재고를 문의하고 전화도 수시로 온다”고 했다. 그러나 재고가 떨어진 지는 이미 2주쯤 됐다고 한다.

김씨는 “롯데 (요소수 판매) 담당자가 아예 전화조차 안 받는다”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요소수 품귀 사태가 터지자 요소수를 1리터당 2000원에 팔았다. 원래 가격은 1000원이었다. 김씨는 “요소수 공급가가 비싸져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평소 롯데 요소수의 주유소 공급가는 1리터당 약 850원이었다고 한다. 최근엔 1000원대 중반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11월9일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 ⓒ 시사저널 이종현
11월9일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 ⓒ 시사저널 이종현

 

1리터당 5000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원흥동 W주유소 직원 김아무개씨는 “워낙 수요가 많아 가격을 올린 것이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1리터당 1만원에 판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김씨는 “11월초에 1000리터가 들어왔는데 3시간 만에 다 팔렸다”고 했다. 취재 중에 만난 대다수 주유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롯데는 자동주입기가 설치된 모든 주유소에 요소수를 1000리터까지만 공급하고 있다. 김씨는 “요소수 문의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유선전화기를 가리켰다. 부재중 전화가 23통 찍혀 있었다.

요소수 자동주입기가 설치돼 있다는 또 다른 주유소로 차를 몰았다. 들어가는 길목에 레미콘 수십 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시멘트 제조 중견기업 삼표산업의 서부공장이었다. 삼표산업은 이곳에서 자사 소속 레미콘 기사에게 요소수를 일정량 공급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레미콘 기사는 “사흘 전에 10리터 받고 더 못 받고 있다”면서 “이 정도는 착하게 달렸을 때 8일이면 끝나는 분량”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묻자 기사는 큰 소리로 헛웃음을 지었다. “어쩌긴 뭘 어째요. 돈 못 벌고 쉬는 거지 뭐.” 현장에서 만난 삼표산업 관계자는 “분량을 말할 순 없지만 요소수를 조금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차량에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자동주입기 없이 페트병 요소수를 파는 주유소도 찾아가봤다. 너멍골주유소 소장 이아무개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요소수가 없는데 ‘몰래 팔지 말고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이 한둘이 아닙니다. 진짜 문 닫고 싶어요.” 사무실 한쪽에는 텅 빈 페트병 10여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강매셀프주유소 소장 박창규씨는 “마치 우리가 일부러 안 주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많아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11월9일 고양시 한 주유소 직원이 요소수 자동주입기의 잔량을 가리키고 있다. 200리터 이하로 떨어지면 기계가 고장난다고 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11월9일 고양시 한 주유소 직원이 요소수 자동주입기의 잔량을 가리키고 있다. 200리터 이하로 떨어지면 기계가 고장 난다고 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자체적으로 필요한 경우도…”비싸게 팔아도 남는 것 없다”

실제 요소수를 소량 갖고 있음에도 안 파는 주유소도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름을 나르는 디젤 트럭(탱크로리)을 운행하려면 자체적으로 요소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소수 자동주입기 잔량이 200리터 이하로 떨어지면 고장 위험이 있다고 한다.

벽제동 시내주유소의 자동주입기는 그럼에도 바닥을 드러냈다. 소장 강아무개씨는 “평소보다 (1리터당 요소수 가격을) 300원 올려 1300원을 받고 다 팔아치웠다”며 “비싸게 팔아봤자 별로 남는 것도 없는 제품”이라고 했다. 그는 “이윤은 둘째 치고 화물차 기사들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혀를 찼다.

원당동 원흥주유소에 들렀다. 어김없이 요소수 품절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런데 직원 이아무개씨가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요소수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하는 게 들렸다. 직접 물어보니 “기존에 갖고 있던 500리터를 오늘 아침부터 손님들에게 차 1대당 10리터까지만 팔았다”고 했다. 최대치로 구입하면 총 50대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이씨는 “며칠 전까지 해도 단골들에게만 팔았다”면서 “손님이 페트병에 담아가는 것은 원칙상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언제쯤 동이 날지 물어봤다. “아침에 나가는 속도로 볼 때 오늘 밤을 넘기긴 힘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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