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최재경, 삼성그룹 권력의 양대 산맥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5 10: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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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올해 삼성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법 리스크’와 ‘연말 인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외 행보가 본격화되면서 경영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말 삼성그룹의 정기인사와 조직개편은 ‘이재용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10월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뉴 삼성’을 언급한 만큼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의 측근 임원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내부 권력지형이 새롭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삼성에 대한 의지가 이번 인사를 통한 고위 임원 세대교체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조심스러운 시각이다.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의 복심으로 분류되는 삼성그룹 핵심 임원들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왼쪽부터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사장, 최재경 삼성전자 고문,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 이인용 삼성전자 CR(대외업무)담당 사장ⓒ연합뉴스·뉴시스·시사저널 포토
왼쪽부터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사장, 최재경 삼성전자 고문,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 이인용 삼성전자 CR(대외업무)담당 사장ⓒ연합뉴스·뉴시스·시사저널 포토

정현호, ‘미전실’ 출신 중 유일하게 사장으로 복귀

삼성그룹의 실세 임원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다. 이 부회장의 측근 그룹은 현재 사법·재무·대외협력(CR) 등으로 크게 나뉜다. 이는 여전히 재판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의 처지와 삼성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과 정확히 맞물려 있는 분야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후 1년간 재판과 수감 생활로 경영활동의 발목이 잡혔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 부회장 측근들이 구원투수로 등판해 총수의 복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사장이 이 부회장의 핵심 측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 사장은 삼성그룹의 모든 컨트롤타워 조직을 거친 전략·기획통이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에서 출발해 구조조정본부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사업지원TF 등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연루돼 여러 고초를 치렀다. 검찰 조사도 여러 차례 받았다. 정 사장이 속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인 최순실씨(개명 후 최서원)에게 수십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 사장 역시 임원직에서 사퇴하고 2017년 삼성을 떠났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 사장은 사업지원TF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 사장은 이 부회장이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같이 구치소로 출근해 이 부회장의 옥바라지를 하고 경영 메시지 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전실이 해체된 후 8명의 사장급 임원 중 삼성전자로 재입사한 인물로는 그가 유일하다. 정 사장이 이 부회장의 복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대목 중 하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정 사장을 ‘2인자’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부회장 역시 정 사장을 가장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정 사장은 이 부회장이 속 터놓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며 “두 사람은 성격과 경영 스타일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사법 분야에서는 특수통 검사 출신인 최재경 삼성전자 고문이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고문은 지난해 삼성그룹이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을 당시 변호인단에 합류해 이 부회장에 대한 방어를 총지휘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이 부회장의 ‘불기소 권고’를 받아낸 일등 공신이다.

 

“최재경, 이재용 부회장 수감 때 독대 면회”

최근 삼성 사정을 잘 아는 핵심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돼 있을 때 관련 규정에 따라 변호인만 면회가 가능했다고 한다”며 “사실상 2인자인 정현호 사장도 이 부회장을 못 만났다. 최재경 고문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 부회장을 독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최 고문은 변호인단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여전히 이 부회장의 지근거리에서 각종 법률 문제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법원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서 수십 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지만, 최 고문이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정 사장 다음으로 이 부회장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가 최 고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 사장은 삼성의 대내적인 측면을, 최 고문은 대외적인 측면을 조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 관계자들은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광복절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정 사장과 최 고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넘버3’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 부재 상황에서 꾸려진 비상경영체제에서 최 사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삼성전자 3인의 각자 대표와 중심축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회의 기구를 이끄는 등 삼성전자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로 발돋움했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경영관리그룹 담당임원,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을 거쳐 지난 2010~14년 미전실에서 근무했다. 특히 삼성전자 CFO인 경영지원실장은 회사 실적을 총괄 관리하는 자리니만큼, 총수 일가의 측근들이 주로 거쳤다. 2010년 이후만 봐도 CFO를 지낸 인사들은 모두 삼성 실세로 불렸던 이들이다. 최 사장은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마찬가지로 ‘미전실·재무통’ 출신으로 경영지원실장 자리를 꿰찼다.

이인용 삼성전자 CR(대외업무)담당 사장 역시 이 부회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과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후배 사이로, 이 부회장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 등을 역임했던 이 사장은 2017년 삼성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으로 물러났다가 지난해 1월 CR담당 사장으로 일선에 돌아왔다.

동시에 사측에서 유일한 준법위 위원으로 선임되며 삼성 측 입장을 외부 위원들과 조율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 부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논란 사과와 무노조 경영 폐지, 시민사회 소통 등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이 사장은 삼성전자 대외협력 업무와 동향 파악 등을 총괄하며,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각종 현안에 대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인용, ‘무노조 경영 폐기’ 등 이끌어내

향후 이들 임원에 대한 역할론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장)는 “사면은 최고법인 헌법 제79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법부에 의한 형 선고 효과 등을 소멸시키는 국가원수의 특권”이라면서 “이에 반해 가석방은 헌법이 아니라 형법에 규정된 제도다. 형을 선고한 법원과 상의할 필요 없이 법무부 장관의 행정처분에 의해 수형자를 석방할 수 있지만 형 자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부당합병 의혹 재판과 조세회피처 페이퍼 컴퍼니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여전히 이 부회장 앞을 가로막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만큼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의 측근들도 총수의 리스크를 떨쳐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거론된 이 부회장의 측근 사장단은 큰 인사 이동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과 어려운 시절을 함께 건너온 측근들이니만큼 대대적인 인사 개편에도 입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인사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부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게 임원 인사다. 심지어 사장단 인사를 올해 말에 할지 내년에 할지 모른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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