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내각 구성할 총리·장관 인력 풀 밝혀라”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4 10: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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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유례없는 아마추어 후보들…‘대통령팀’ 제시해 국민 불안 줄여야”

“뽑을 사람이 없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적잖은 유권자가 이런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국민적 불안감은 점점 고조되는데 대선 정국은 여전히 각종 의혹이 지배하고 있다. 머릿속에 남는 공약과 정책은 드물다. 내 삶을 나아지게 할 비전에 대한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진흙탕 네거티브 공방전은 점점 강해진다. 진영논리가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다. 다시금 국민은 말한다. “뽑을 사람이 없다.” 

대안은 없을까. 최근 화제가 된 제안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바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다. 강 교수는 11월1일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대선후보들이 ‘팀(team)으로서의 대통령’을 밝힐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을 도와 주요 정책을 책임질 담당자를 미리 밝히라는 주문이다. 집권하면 경제장관은 누구, 국방장관은 누구 하는 식으로 주요 정책의 담당자를 선거 전에 정당이 미리 제시하라는 것이다. 영국 같은 내각제 국가에서 정당이 예비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고 총선에 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렇게 되면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국정을 담당할 팀’을 보여주는 것은 후보의 역량을 간접적으로 가늠하게 하고, 또 집권 후의 정책 방향을 짐작하게 해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강 교수를 11월9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팀으로서의 대통령’ 제안을 한 배경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 대선이 매우 특이하다는 점부터 말해야 한다. 일단 두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는 모두 정치 경험과 의회 경험이 없다. 시장직과 지사직을 거친 이재명 후보의 정치 경험은 전부 행정적 경험이다. 이는 중앙정치와 다르다. 윤석열 후보는 이제 정치 입문 4개월째다. 국가 최고 정치지도자인 대통령으로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 이들의 정치적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빈약하다. 한 후보는 반(反)문재인 정서에 편승했고, 다른 후보는 반기득권 정서에 기대고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은 딱히 어느 곳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국민적 불안감이 크다. ‘팀으로서의 대통령’은 이런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줄 수 있다.”

후보 개인의 경험과 역량 문제를 먼저 짚었다.

“이전 대선에선 이런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나. 그동안 우리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들은 상당한 준비가 돼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선에선 당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후보 주변에는 당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많았기에 유권자들이 이후 상황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두 후보 모두 정치 경험이 없어 개인적 수준의 인맥으로 주변이 형성돼 있다. 집권하면 누가 내각에 들어갈지 예측이 안 된다.”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어떤 정부를 구성할지 예측하기 어렵긴 하다. 

“윤 후보는 검찰 공무원으로 오래 있었다. 굉장히 위계적 구조를 가진 조직이다. 다양성도 떨어진다. 이 후보는 지방정치에서 활동했지만 우리 정치 특성상 단체장이 우위에 서는 구조라 반대파를 설득하고 타협으로 의제를 조율하는 경험이 부족하다. 불안하다. 경제정책에서는 더 심각하다. 윤 후보는 전혀 모르는 것 같고, 이 후보는 굉장히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니 유권자들은 이들이 과연 ‘책임감 있게 해낼 수 있을까’ ‘역량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넘어 불안함을 느끼는 거다.”

또 다른 배경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 5년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경제사회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지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분열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즉 유권자들은 지금,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원한다. 당연히 통합의 리더십과 정치력이 요구된다. 이견을 줄이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게 사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후보는 모두 이와 관련해 어떠한 것도 보여준 게 없다. 좀 비관적이긴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이 문제에 있어 잘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대통령팀’이 제시되면 의혹 제기로 점철되는 대선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까.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주요 후보에게 느끼는 비호감도는 유례없이 높다. 유력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매우 약하다. 열렬한 지지층이 없다. 많은 사람이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저쪽이 이기게 둘 수 없으니 우리가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투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렇게 정책과 비전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고발과 극심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판을 치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전 양상은 더 심해질 거다. 그럴수록 유권자들의 신뢰감은 더 떨어진다. 두 정치 아마추어가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나는 이런 인재들과 함께 있고, 같이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선거 캠프 중심의 국정이란 한국 정치의 오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까.

“선거 캠프는 후보와 굉장히 은밀한 개인적 관계로 이어진 집단이다. 그런데 정당과 달리 선거 캠프는 미리 검증할 수도 없고, 정치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캠프 인사들은 당선 이후 청와대 비서실을 포함해 요직을 차지해 집권의 중추세력이 돼왔다. 이들이 집권 이후 행사하는 권력은 굉장히 크다. 문고리 권력도 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팀으로서의 대통령’이 발표되면 사전 검증도 가능하고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책임정치라는 원리에 맞다. 이번 기회에 인식의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모든 걸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유능하다는 평가는 결국 인사에 달렸다.”

우리 국민은 비선실세로 인한 국정농단 사태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각종 의혹에 등장하는 측근들이 있지 않나. 이들이 지금 드러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집권 이후 굉장히 중요한 자리에 갔을 수도 있지 않겠나. 사전에 ‘팀으로서의 대통령’을 제시하고 검증받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지금 선거 캠프에 있는 ‘자리 사냥꾼’들을 솎아내는 검증 작업도 거칠 수 있다. 현재는 캠프에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상당하다. 그런데 ‘팀’이 사전에 공개되면 검증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인수위나 집권 이후 인사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낙마 등으로 인한 정권 차원의 리스크도 최소화할 수 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도 유의미한 제안 같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가령 대선후보의 경제팀이 발표되면 언론이 핵심 정책과 공약을 물어볼 것 아닌가. 혹독한 검증을 거치게 된다. 동시에 유권자에게도 그 과정에서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 대략적으로 어떤 분야를 누구와 누가 결정하는가를 보게 되면 정책의 큰 방향과 철학 등을 알 수 있지 않나. 그럼 유권자는 방향성을 확인하고 마음을 정할 수 있다. 또 새 정부가 역량을 집중할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집중할 중장기 과제도 나타난다. 그런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관료들이 너무 빨리 줄서기를 하는 등의 부작용은 없을까.

“팀으로서의 대통령은 정무직에 해당된다. 그 이하 직급에 대해서는 엄중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기능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인사수석실이 생기면서 고위 공무원 인사는 정치 바람을 강하게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안정성과 집단의 안정성이 동시에 굉장히 나빠진다.” 

‘팀으로서의 대통령’의 핵심은 책임총리인가.

“오히려 총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현재 제도에서 정국은 대통령이 주도한다. 우리의 정치제도를 고려하면 내각을 구성할 인력 풀(pool)을 공개하고, 누구누구를 중용할 생각인지를 큰 틀에서 보여주는 게 국민의 불안감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느 전문가 그룹을 중용할 것인지를 밝히고, 이들 가운데 누구를 중용할 생각인지를 보여주면 정책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물론 총리 후보군을 발표하면서 어느 부분은 대통령이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총리가 맡을지를 대략적으로 밝히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제왕적 권한을 사전에 어떻게 배분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상당하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개헌을 주장해 왔다. 두 가지 큰 방향이 있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는 강한 국가가 아닌 시민의 시대라고 본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두고 논쟁은 있었지만 우리는 국가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살았다. 현실은 아니다. 국가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를 제도화했으면 좋겠다. 거대 담론보다는 일상의 일을 좀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드문 성과가 바로 지방자치법 개정이다. 물론 여전히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상당한 수준의 분권이 필요하다. 수평적 차원의 분권과 수직적 차원의 분권 모두가 필요하다.” 

다른 방향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는 거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대통령이 모든 디테일한 정책에 다 관여하게 된다. 강한 정파성을 보이게 되니 어느 한쪽의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한 걸음 떨어져 있으면 어떨까.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통합의 상징이다. 일상적 사안에 대해 매일 평가받으면 그게 가능하지 않다. 실질적인 업무는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내각을 꾸려서 하면 어떨까. 물론 대통령이 허수아비가 되면 안 되니 중요한 정무적 권한은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도 줄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임금님처럼 여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번 대선에서 공론화됐으면 하는 다른 의제가 있다면.

“연결되는 맥락인데 ‘정치지도자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지금의 정당정치는 폐쇄적이고 정파적 편향성이 과도하다. 건강한 정당정치를 만들어낼 고민이 필요하다. 공천 과정도 바뀌어야 하고 지방정치부터 성장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유능한 신생세력이 나타나서 기존 정치세력을 위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협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혁신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에 대한 수요가 나타날 것이다. 그중 일부는 정치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야 대표가 현행 25세 이상부터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에 뜻을 모은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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