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석탄, 함부로 대하지 마라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5 08: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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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그가 대변인으로 활약할 때 필자에게 “국정의 80%는 현실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념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는 20%밖에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나라를 ‘관리’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반미 자주화 이념 세력의 지지 철회 협박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행한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고립을 피하거나 한국인의 경제 영역을 넓히는 현실적 이익 앞에 노 대통령은 종종 진영의 이념을 훼손시켰다. 대통령은 진영의 리더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국정의 80%는 관리, 이념은 20% 정도”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뼈아픈 실정들은 정책을 이념을 기준으로 선과 악의 잣대로 펴나간 데서 시작되었다. 문 대통령은 특정 정책에 참여하는 여러 요소에 얽힌 이해관계를 따져보고, 해당 요소들을 적절한 비중으로 배합해 현실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까지 고려해 정책을 폈어야 했다. 나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 정책만 해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풍력·태양광을 천사로, 원자력·석탄을 악마로 취급했다. 탈핵을 이념적 방향으로 삼을 수는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걸 실현하기 위해 펼친 소위 ‘에너지 전환’이란 정책이 가장 짧은 시간에 악마를 제거하고 이 땅에 천사만 살게 하자는 전격전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추진 속도가 폭력적이다시피 했다. 발전 에너지원의 70%를 차지하는 석탄과 원자력을 이해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에너지 전환은 정책이라기보다 자신들을 죽이는 섬멸전에 가까웠다. 국민의 과반수를 고통에 몰아넣는 정책이 선일 수 있나.

문 대통령이 탈핵 이념을 살리고 싶었다면 국민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 안에서 관련 요소들을 적절한 비중으로 섞은 ‘에너지 믹스’ 정책을 폈어야 했다. 최소한 해외 수출이라도 적극적으로 하게 해 원자력과 석탄 산업의 숨통을 터줬어야 했다. 그것이 ‘관리’의 묘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득주도성장, 북한 비핵화 등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을 갖고 펼친 정책마다 실패한 이유가 관리는 없고 이념만 빛났기 때문이다.

다시 에너지 얘기로 돌아가 문 대통령과 정부 및 공공기관의 요직에 포진한 ‘묻지마 탈핵 세력’한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석탄은 과연 악마인가. 석탄은 악이 아니다. 이 땅에서 바로 없어져야 할 적일 수만은 없다. 에너지 믹스 속에서 견딜 만한 속도로 비중을 줄여 나가야 하는 관리 대상일 뿐이다.

11월9일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 ⓒ 시사저널 이종현
11월9일 고양시 일대 요소수 판매 주유소 ⓒ 시사저널 이종현

요소수 대란에서 발견한 석탄의 천사적 속성

당장 요소수 대란에서 보듯 요소는 석탄 속 탄소 성분과 그 열에너지가 없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중국이 한국에 요소 수출을 중단한 이유는 물난리가 나 요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석탄 광산이 침수됐기 때문이다. 호주가 대중 수출을 중단해 그렇지 않아도 석탄이 부족했던 중국에선 요소 생산이 급감했다. 시진핑 주석이 요소의 해외 공급을 갑자기 중지시킨 배경이다. 그런데 요소수는 경유차의 매연을 감소시키는 탄소중립 시대의 필수적인 제품. 따라서 석탄은 어떤 사람들이 ‘묻지마 악마’라고 비난하지만 요즘 보니 탄소중립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긴요한 ‘천사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연탄재는 한때 여러분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석탄과 원자력은 연탄재 이상이다.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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