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가 들춘 한국 산업의 민낯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5 14: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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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안전성 흔드는 대외 의존도…일본 벗어나니 중국에 막혔다

“부품·소재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는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 할 길.”

지난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시·도지사 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수출규제를 시행한 데 따른 반응이다. 이후 문 대통령은 수차례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기회로 삼아 나가자(2019년 8월)” “공급망 안정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을 강화하겠다(2020년 7월)” 등 무역 안정성 제고를 다짐했다.

2년여가 흐른 지금, 한국 무역에 또다시 위기감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의 요소수 수출제한 조치란 대외 리스크로 직격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소수 생산에 필요한 석탄과 전력이 부족해지자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그로 인해 요소수가 필요한 디젤 차량이 멈춰섰고, 유통망엔 초비상에 걸렸다. 일본의 수출규제 때와 마찬가지로 무역 이슈가 국가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를 외교적 갈등에서 비롯된 일본 수출규제와 직접 비교하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두 사태 모두 밑바탕에는 국내 산업의 높은 대외 의존도가 깔려 있다.

요소수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물류대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11월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화물트럭 기사가 빈 요소수 통을 들고 서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요소수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물류대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11월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화물트럭 기사가 빈 요소수 통을 들고 서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日 의존도 90% 이상 품목, 2년 만에 대폭 낮춰

실제 그 의존도는 얼마나 될까. 현대경제연구원은 2019년 7월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대부분의 주력 산업에서 일본에 대한 경쟁력은 열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연구원은 2018년 일본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48개라고 분석했다. 이 수치는 유엔 국제무역통계 ‘HS코드’ 6자리를 기준으로 뽑은 것이다. HS코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물품 분류 코드다. 자릿수가 높아질수록 더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시사저널은 현대경제연구원이 뽑은 48개 품목의 일본 의존도가 올해 1~9월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해 봤다. 이를 위해 연구원과 마찬가지로 HS코드 6자리를 기준으로 삼아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를 찾아봤다. 그 결과 48개 품목 중 25개의 일본 의존도가 90% 아래로 떨어졌다. 이 가운데 10개는 50% 이하를 나타났다.

일례로 2018년 총수입액 중 대일 비중이 94.2%였던 라텍스 품목은 올 1~9월 45.7%로 낮아졌다. 살충제, 방부제, 탈취제 등으로 사용되는 나프탈렌은 2018년 대일 의존도가 93.3%였다. 지금은 41.9%를 기록했다.

일정 수준의 무역 자립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품목도 있다. 인쇄·가죽에 사용되고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로 꼽히는 메타크실렌은 2018년 대일 의존도가 100%였다. 그해 총수입액 9500만 달러어치 전량이 일본산이었다. 하지만 올 1~9월에는 단 7000달러어치만 일본에서 수입해 의존도가 1% 미만으로 낮아졌다. 동시에 수출액은 2018년 2000달러에서 올 1~9월 1270만 달러로 무려 6000배 넘게 뛰었다.

한편 48개 품목을 산업별 대분류인 ‘부(Section)’로 나눠보면 총 9개 부로 묶인다. 이 가운데 6개 부의 일본 의존도가 90% 미만을 기록했다. (☞ 아래 표 참조)

 

학계에서는 수입선 다변화를 판단하는 대외 의존도의 명확한 기준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특정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낮아졌다면 어느 정도 수입선 다변화를 이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수입선 다변화는 무역 안정성과 경제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과의 무역은 과거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中 의존도 80% 이상 품목 1850개…“수입선 다변화 필수”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사저널이 한국무역협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9월 수입품 1만2586개 중 3941개(31.3%)가 특정 국가 의존도 80%를 넘었다. 이 중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이 1850개로 가장 많았다. 미국(503개)과 일본(438개)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요소수의 재료인 요소 역시 그중 하나다. 올 1~9월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요소는 총 2억7600만 달러어치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들어온 양이 80.0%인 2억2100만 달러어치에 이른다. 요소의 중국 의존도는 2019년 63.0%, 지난해 65.5% 등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 밖에 자동차, 항공기 등의 경량화에 필요한 원료 마그네슘잉곳(ingot·주괴)은 99.6%를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공급량을 통제하면 자동차업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산화텅스텐, 전자제품 소형화에 쓰이는 네오디뮴 영구자석, 이차전지 핵심 소재 수산화리튬 등이 중국 의존도 80% 이상 품목에 포함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이 계속되는 만큼 특정 국가 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은 공급망 다변화나 국산화 등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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