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조문객’ 박남선이 보여준 회복적 정의관 [특별기고]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0 11: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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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군 상황실장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 받아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넘어 용서와 화해 추구

10월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영욕의 삶을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와 책임에 대해 사과·용서·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들인 노재헌 변호사는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이나 그 외에도 재임 안 하셨을 때 일어난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본인 책임과 과오가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라”고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반면 광주 5·18 단체들은 “무고한 시민을 죽인 학살 주범을 국가 차원에서 애도할 수 있느냐. 노씨를 국가장으로 하면 추후 전두환도 국가장 예우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발했다.

우리는 그동안 구두선처럼 아픈 과거사를 해결하고 미래로 가자고 했었다.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를 통한 양자 간 화해라는 ‘회복적 정의관’을 이상적으로 말해 왔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체로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와 보복을 전제로 책임을 물어 과거사를 청산하는 ‘응보적 정의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공동취재단
10월27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 던 박남선씨(오른쪽)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씨(왼쪽) 와 아들 노재헌씨를 위로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 너머를 향해

학술적으로 보면 과거 청산과 기억의 정치는 ‘응보적 정의관(retributive justice)’을 추구하는 규범이며, 사과와 용서 및 화해는 ‘회복적 정의관(restorative justice)’을 추구하는 규범이다. 회복적 정의관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차별을 넘어 사죄와 용서 및 화해를 통한 상호공존을 지향하는 전환의 규범이다. 회복적 정의관은 가해자 대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넘어 모두가 국가의 억압과 폭력에 노출돼 희생당한 ‘헐벗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인식전환에 근거한 정의관이다. 회복적 정의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은 응보적 정의관과 대조되는 회복적 정의관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5·18 당시 윤상원 열사와 함께 최후 항전과 전남도청 사수를 결의했던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가 빈소에 조문하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은 기적에 가깝다.

박씨는 1980년 5월19일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에서 동생 박남규씨가 공수부대 위생병에게 몽둥이로 폭행당해 병원에 실려온 동생을 본 후 죽을 각오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박흥수는 박남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러다가 그는 5·18 민주화운동의 끝을 맺은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다른 네 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기도 한 상처받은 영혼이다.

그는 장례식장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과 만나 “고인은 생전에 아들인 노 변호사를 통해 광주 학살에 관한 책임을 통감하고 이에 사죄한다는 얘기를 수차례 했다”며 “그런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오늘 조문하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을 계기로 지역 계층들과 정치세력들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서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주 학살에 관해 사죄 표명하고 유족들과 숨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박남선씨는 가해자들을 진정으로 용서한 것일까? 그렇게 용서해도 되는 것일까? 그는 어떻게 빈소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런 질문에 ‘임민혁이 만난 사람’(조선일보)은 박씨가 조문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노재헌씨가 처음 광주에 왔을 때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는데 만나지 않았다. 두 번째부터 만났는데 나는 ‘아들이 와서 사죄하는 것보다 당사자가 직접 와서 육성(肉聲)으로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계속 누워 있고 필담도 겨우 하는 정도라고 하더라. 병상에서 끌고 내려오라고 할 순 없지 않나. 노씨는 그 후에도 계속 내려왔다. 5·18 행사 때 쓱 참배하고 가버리는 정치인들보다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마지막 만났을 때 노씨에게 5·18 기념 배지를 달아주면서 ‘5·18 정신 꼭 기억해라. 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공수부대 진압대원이었던 A씨는 지난 5월16일 광주 민주묘지를 찾아 자신의 총격으로 무고하게 사망한 고 박병현씨를 추모했다. A씨는 박씨의 유가족을 만나 “지난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제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유가족에게 사죄의 절을 올렸다. 고인의 형 박종수씨는 “늦게라도 사과해 줘서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 용기 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며 A씨를 껴안은 바 있다.

 

히틀러의 상처에서도 ‘용서’와 ‘약속’ 피어나

이처럼 회복적 정의관의 실현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시작은 이미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을 주도해 내란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을 1997년 12월22일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시킨 바 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만행을 직접 경험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이라는 행위를 통해 훼손된 공동체의 정치적 미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용서와 약속을 새 생명의 탄생 과정으로 보고 ‘제2의 탄생’이라 불렀다.

정치적 미덕인 용서는 첫째, 망각이 아니라 아픈 과거의 복기이며 둘째, 법적 처벌의 반대가 아니라 복수와 증오의 정치를 반대하는 일이다. 셋째, 인간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는 연약성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며 넷째,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이다.

단체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박남선씨의 용서와 화해의 손짓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박씨는 목숨을 건 시민군 참여에 이어 용서와 화해까지,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애국시민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울림이 매우 크다. 이제 우리가 그의 상처받고 헐벗은 영혼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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