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승자》, 코미디 부활 마중물 될까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0 15: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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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화제 몰이에도 조마조마…출연자 자질·매력이 성패 가를 듯

《개그콘서트》를 끝냈던 KBS가 《개승자》를 새롭게 편성했다.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지난해 6월 이후 무려 1년5개월 만의 코미디 프로그램 부활이다. MBC, SBS에서도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기 때문에 《개승자》는 지상파 코미디의 부흥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됐다. 

기성 TV 플랫폼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살아남은 곳은 케이블 채널인 tvN이 유일했다. 바로 《코미디빅리그》가 지난 1년5개월간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TV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시즌별로 경연을 치르는 구조다. 그 부분을 참고했는지 《개승자》도 경연 구조를 도입했다. 

《개승자》가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어서 제목에서부터 경연 구조를 내세운 셈이다. 13개 팀이 코미디 코너로 경쟁하고 관객 투표에 의해 매주 1팀씩 탈락하는 형태다. 우승팀은 상금 1억원을 받게 된다. 《코미디빅리그》도 상금을 놓고 경쟁하긴 하지만 매주 탈락까지 하진 않는다. 《코미디빅리그》보다 더 독한 설정으로 반드시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그런 비상한 각오 때문인지 출연자들이 《개그콘서트》의 역대 스타들로 이루어졌다. 개그 어벤져스다. 일세를 풍미했던 박준형, 김준호, 김대희, 이수근 등과 더불어 MBC나 SBS에서 얼굴을 알린 개그맨들도 추가됐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미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익숙한 얼굴로나마 시청자의 채널 고정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기존 인물들을 모아놓으니 신선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이 기존 코미디를 떠났는데, 새롭게 시작한다면서 기존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얼굴들을 내세우면 아예 관심조차 못 받을 수 있다. 스타를 내세워도 문제지만 신인을 내세우기도 어려운 진퇴양난 상황이다. 

그래도 그나마 어벤져스 전략이 비교적 성공적이긴 했다. 큰 관심이 나타났고 1회 시청률 5%가 나왔다. 10%를 우습게 넘었던 《개그콘서트》 전성기 시절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요즘 분위기에 5%면 괜찮은 성적이다. 일단 초반 화제는 일으켰다. 하지만 탄탄대로라고 단정 짓긴 이르다. 앞으로 얼마나 신선한 코미디를 보여주는가, 얼마나 매력적인 새 얼굴을 발굴하는가가 중요하다. 

KBS 《개승자》의 한 장면ⓒKBS

코미디 몰락의 이유 

《개승자》가 기존 스타를 내세워도 어렵고, 새 얼굴을 내세우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개승자》만의 탓이 아니다. 이 시절이 TV 코미디가 힘든 시절이다. TV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추락한 것도 이런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 

과거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엔 국민이 웃을 수 있는 통로가 TV 코미디 프로그램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예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극은 드라마, 음악은 쇼, 웃음은 코미디, 이렇게 명확한 각자의 영역이 있었다. 그중에서 코미디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온 국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가히 국민 오락이었다. 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잇따라 국민 스타들이 탄생했다. 

배삼룡이 지방 무대를 한 바퀴 돌면 현금을 포대에 담아왔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보내 배삼룡을 모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주일도 당대를 주름잡은 국민 스타였다. 심형래는 연예계 납세액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K팝, 드라마, 예능계에 특급스타가 즐비한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요즘 코미디언은 그런 특급스타들의 화려함에 비하면 일반 생활인 정도의 느낌이다. 1980년대엔 심형래 등의 풍자 개그도 인기를 끌었고 2000년대에는 《개그콘서트》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불꽃이었다. 

1980년대부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예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BC 《목표달성! 토요일 -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SBS 《X맨 일요일이 좋다》 등을 거치면서 더욱 시청자를 사로잡기 시작했고, MBC 《무한도전》, KBS 《1박2일》, SBS 《패밀리가 떴다》 이후 완전히 웃음의 헤게모니가 예능으로 넘어갔다. 

이젠 국민 코미디언이 아닌 국민MC의 시대다. 이 즈음부터 연말 시상식 중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시상식이 연예대상이 됐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각축이 가장 큰 핫이슈였다. 그렇게 예능이 대두되던 시기에 있었던 변화가 바로 ‘리얼’ 세상의 도래다. 

기존 예능이 인위적이고 답답한 면이 있었던 반면, 리얼버라이어티는 훨씬 역동적이고 생생하고 리얼한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코미디가 《개그콘서트》라는 공개 코미디 형식으로 바뀐 것도 그런 리얼 코드와 관련이 있다. 전통적인 스튜디오 녹화 콩트는 기존의 답답한 예능처럼 시청자에게 고루하게 비쳤다. 그래서 더욱 리얼하고 생생한 공개 쇼 형식을 차용해 코미디로서는 마지막 대박을 쳤던 것이다. 

하지만 예능은 더 치고 나갔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버라이어티를 떼고 아예 리얼예능으로 간 것이다. 처음엔 예능인들을 중심으로 리얼 영상을 보여주더니 배우, 가수, 운동선수, 요리사 등으로 범위가 점점 더 넓어졌다. 유명 스타의 가족까지 가세해 가정생활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tvN 《코미디빅리그》의 한 장면ⓒtvN

인터넷 콘텐츠 등장으로 더욱 타격  

코미디는 그렇게 리얼해질 수 없다. 코미디라는 것 자체가 사전에 기획된 쇼다. 생생한 날것의 작용과 반작용이 시시각각 티키타카로 터지는 예능이 아니라, 대본대로 진행된다. 콩트라는 숙명적인 한계가 있다. 대본에 더해, 코미디언은 원래 웃기려고 과장한다는 기본 인식까지 있다 보니 코미디언의 언행에서 리얼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번 《개승자》에서도 1회 때 출연자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토크를 했지만 이와 같은 인식 때문에 웃음이 쉽게 터지지 않았다. 

코너 하나하나 작은 극으로 만들어지는 콩트 구조가 시청자에게 적극적인 시청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도 문제다. 코미디는 코너마다 집중해서 봐야 한다. 반면 예능은 흘려보내듯이 수동적으로 봐도 된다. 시청자 입장에선 예능을 볼 때 부담이 덜한 것이다. 요즘처럼 시청자들이 번아웃 상태이고 간편한 웃음을 원하는 시기엔 코미디가 약세일 수밖에 없다.

예능에 이어 두 번째로 코미디에 타격을 가한 것은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이다. 특히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의 타격이 컸다. 인터넷에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면서 코미디의 자극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초창기엔 인터넷 콘텐츠의 수준이 조악했지만 기술 발달과 더불어 화질과 음질이 점점 더 좋아졌고, 유튜브 같은 수익 구조까지 나타나면서 인터넷 기반 콘텐츠의 품질이 날로 고도화됐다. 

새로운 플랫폼에선 자극적인 표현이 넘쳐나는데 TV 코미디는 제약이 크다 보니 점점 더 시청자에게 밋밋하고 답답하고 고루하게 느껴지게 됐다. 같은 TV라도 케이블의 《코미디빅리그》는 상대적으로 조금 자유롭지만 지상파 프로그램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질타에 항상 몸을 웅크려야 한다. 

코미디의 중요한 기둥 중 하나인 풍자도 그렇다. 곳곳으로부터의 공격에 아예 풍자가 불가능해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파동 등으로 위축됐는데 요즘엔 정권 억압이 아니라 일반 누리꾼들 등쌀 탓에 풍자가 어렵다. 

과거 독재 시절이 풍자의 호시절이었다. 당시엔 권력이나 정치인을 조금만 희화화해도 폭발적인 성원을 받았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야 하고, 정치인들을 싸잡아 조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정교한 풍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수준 높은 풍자 코미디의 풍토가 아예 없었던 분위기에서는 그런 역량이 길러지지도 않았다. 
이도 저도 다 하기 힘드니 코미디언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기존부터 별문제 없이 해왔던 익숙한 콩트들이다.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나 개그맨들의 자조적인 얼굴 비하, 체형 비하 등으로 간신히 최저 웃음선을 지킬 뿐이다. 이런 구조에선 방송 코미디의 장래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시청자의 관대한 자세도 필요 

인터넷 미디어에선 상황이 좀 다르다. 요즘 젊은 세대는 휴대폰을 통해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을 즐긴다. 특히 1020세대는 기존 TV 이상으로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본다. 이런 곳에선 코미디언이 경쟁력이 있다. 코미디언들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구독자 수 148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 몰이를 했다. ‘피식’이라는 제목부터가 젊은 세대의 인터넷 콘텐츠 취향에 부합한다. 거창하거나 무거운 영상이 아닌 그저 ‘피식’하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마치 심심풀이로 과자를 집어 먹듯이 시청하는 ‘스낵컬처’의 일종으로, 인터넷에선 코미디가 생존할 수 있다. 

TV 코미디에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가벼운 ‘피식’ 정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강한 웃음을 터뜨려줘야 시청률 극한대결에서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코미디언의 자질과 매력이다. 매력적인 코미디언들이 현시대에 맞는 코미디를 개발해야 한다. 예능은 즉흥적이고 돌발적이어서 얕은 웃음을 담지만, 코미디는 극을 기획하기 때문에 당대의 페부를 찌르는 깊고 큰 웃음을 담을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코미디언들이 내공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환경도 문제다. 코미디를 보는 시각에 너무 날이 서있다. 과거엔 보수적인 권력만 문제였는데 이젠 일반 시청자, 시민단체들도 모두 무서운 존재들이다. 차별 이슈 등이 등장하면서 표현의 제약이 대폭 상승했다. 정치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판이다. 빈사 지경에 처한 방송 코미디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관대하게 봐주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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