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11월17일 국회를 찾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당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을 설명하며 인용한 시구(이성복 시인의 《그날》)다. 당과 선대위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는데도, 대다수 의원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민주당 선대위는 11월2일 닻을 올린 지 불과 보름여 만에 대대적인 쇄신 요구에 직면해 있다. 지난 10월10일 경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은 호기롭게 원팀 선대위 구성에 착수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경쟁 후보들을 일일이 만나, 이들의 선대위 합류를 빠르게 이뤄냈다. 이내 당 현역의원 163명을 모두 품은 매머드 선대위가 꾸려지면서, 비주류 이 후보에게 단단히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선대위는 ‘느린 공룡’ ‘식물 공룡’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몸집은 큰데 존재감은 약하고, 머릿수는 많은데 머리(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슈 대응에 기민하지 못한 선대위는 불필요한 잡음만 더욱 키워냈다. 최근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 낙상 사고를 둘러싼 여러 추측과, “부산은 재미없다” 등 이 후보의 일부 발언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서둘러 진화하지 못하고 악화시킨 일이 단적인 예다. 그간 신속 명확한 피드백을 내세웠던 이 후보의 강점은 가려진 지 오래다.

민주당 주류, 李 지원보다 잿밥에 관심

이 때문에 용광로 선대위로서 시너지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1+1이 1보다도 못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선대위 안에 각종 ‘장’은 많은데 자신이 진짜 책임자라는 마인드는 대부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일이 터졌을 때 일제히 쳐다보고 따를 수 있는 리더라도 몇몇 있어야 하는데, 그조차 부재하다. 이 후보도 전처럼 혼자 결정하고 마냥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에서 답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정철 전 원장 역시 선대위 구성에 대해 “권한과 책임이 모호하고 명확한 의사결정 구조를 못 갖춘 비효율적 체계다. 후보만 죽어라 뛰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선대위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이 후보와의 ‘일체감’ 부족이 꼽히고 있다. 이 후보 지원사격에 대한 당 주류들의 의지와 의욕이 극히 소극적이란 지적이다. 최근 민주당 선대위를 둘러싸고 가장 많이 들리는 지적 또한 “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와 가장 감정의 골이 깊었던 이낙연 전 대표의 경우, 지난 10월 ‘형식적’ 원팀 선언 이후론 나서지 않고 있다. 이낙연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 사이에선 “이재명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거나 보호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여전히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 후보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친문 의원들은 자신의 SNS나 지역구에 이 후보를 지원하는 글이나 현수막 하나도 내걸지 않고 있다. 의원들이 대선은 패스하고 내년 당 대표 선거와 지방선거, 내후년 총선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난국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당은 뒤늦게나마 비대한 선대위를 재정비해 민첩성과 효율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광흥창팀’과 같은 별동대를 꾸려 후보의 의중이 즉각 파악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제라도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고 현장을 뛰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선대위 기강을 바로잡고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결국 ‘그립’이 강한 인물의 등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후보와 2인3각으로 뛰어야 하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더해지고 있다. ‘상왕 정치’ ‘중도 확장성 제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도로 이해찬’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구민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