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에도 미술계 ‘호황’ 왜일까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6 12: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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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언어’인가 ‘시장경제의 언어’인가
예술을 투자 대상으로 간주하는 세태에 우려도 커져

2021년 국내 아트페어의 최종회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까지 코엑스에서 5일간 이어진 ‘서울아트쇼’였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가 역대 최대 수익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온 게 불과 얼마 전이어서 주목된다. 엑스포급 공간을 대관한 지방의 아트페어부터 동네 이름을 딴 소규모 행사까지 전국에서 무수히 많은 아트페어가 2021년 열렸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에 신설된 아트페어 수가 19개에 달한다.

이런 사정까지 알지 못했다고 치자. 미술품 소장과 재테크를 결합한 신조어 ‘아트테크’나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연예인 소식, 연예인 서넛이 모여 미술 투자법에 대해 수다를 떠는 예능방송, MZ세대가 미술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른 투자자라는 뉴스 정도는 익숙하게 전해 들었을 줄 안다. 전례 없던 감염병 사태가 무색할 정도로 2021년 미술계는 큰 호황을 누렸다.

ⓒ시사저널 박정
‘2021 부산국제아트페어’가 개막한 12월2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제2전시장에 시민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역대급’ 기록 많이 남긴 키아프

실제로 20주년을 맞은 키아프는 2021년 많은 기록을 남겼다. 아트페어는 공식 개막 하루 전날 VIP오프닝이라는 행사를 마련한다. 대개 미술계 인사와 화랑 고객들을 하루 먼저 초대하는 건데, 2021년엔 VIP오프닝에 하루 앞서 VVIP오프닝이란 게 마련됐다. 입장권은 화랑을 통해 판매됐다고는 하나 일반에 판매된 100장 한정판이 이틀 만에 동났다. 티켓 가격은 30만원이나 했다. 키아프의 전체 수익 650억원 중 절반이 넘는 350억원의 판매가 VVIP오프닝 때 성사됐다고 하니 과열 양상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1년 미술시장의 호황은 전년 9월 거리 두기 2.5단계 발표로 개막을 취소한 키아프, 그리고 고전을 면치 못했던 여타 아트페어들의 실적과 대비되면서 더 도드라진 측면이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결코 잠잠해지지도 않은 2021년 미술시장의 급반전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2021년 미술시장 호황에 대해 대다수 매체가 예외 없이 호의적인 해석을 곁들여 보도했다. 엉뚱하게 들릴 테지만 나는 이 같은 미술시장의 정세 급변으로부터 ‘미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고, 한국 사회 고유의 쏠림문화에 대한 불편한 직감에서 답변을 찾게 됐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미술 현상이 준 격세지감. 전에 경험한 듯한 불편한 기시감. 상충되는 이 두 감정이 뒤엉켜 2021년 미술 호황을 바라봤다. 미술을 향한 세상의 대우는 이율배반적이다. 미술가, 미술품은 ‘천상 영혼’이나 ‘아우라’ ‘순수’와 같이 숭고한 수식어와 연결되다가도, 돌연 ‘역대급 호황’ ‘예상가의 10배 낙찰’처럼 속세의 욕망이 입혀져 표현되기도 한다.

새로운 미술 플랫폼의 출현도 전에 경험하지 못한 현상 중 하나다. 가령 미술품 투자 플랫폼 ‘테사’는 지난 7월 롯데멤버스와 미술품 분할투자 제휴를 맺었다. 소비자가 멤버십 포인트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새로운 미술 플랫폼은 얼굴 없는 낙서화가 뱅크시의 작품 《잭앤질》의 분할 소유권(1억2500만원 상당)을 판매했고, 480명의 참여를 받아 이틀 만에 완판했단다. 분할투자란 작품의 실물을 소장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지분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다. 전에 없는 이 같은 투자 방식은 미술품을 예술의 영역보다 경제의 영역으로 바라보게 하고, 나아가 미술을 선명한 투자 대상으로 간주하게 만들 것이다. ‘뱅크시 특유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라고 짧게 적힌 기사 내용에선, 비평의 무게가 증발한 관용적 수사법 혹은 상품을 판촉할 때 기계적으로 갖다 붙인 표현으로만 내게 접수됐다.

 

미술계 ‘빈익빈 부익부’도 가속화

하지만 경매에 공모한 이들에겐 그런 미묘한 감흥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리라. 새로운 미술 유통 플랫폼은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하는 만큼, 평소 미술에 무관심한 사람조차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바스키아, 키스 해링, 쿠사마 야요이 등 글로벌 네임드 미술가를 라인업으로 엄선한다. 미술을 투자 수단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선 자연스러운 접근법일 테지만, 예비 구입자가 자기의 안목과 취향에 따르지 않고 외부에서 정해 놓은 안전한 가이드라인에 종속돼 미술품 구입을 정한다는 점에선 조금도 예술적이지 않으며 예술계에 기여도도 낮다. 가령 우리 화단에서 단색화가 뒤늦게 부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미술시장이 함께 성장하리라 기대했지만 단색화 계열만 편파적으로 집중 조명되는 데 그쳤다. 투기 수단으로 최적화된 미술은 이름이 이미 알려진 작가들만 편중된 마케팅 지원을 받으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된다. 미술은 예술의 언어가 아니라 시장경제의 언어로 유통된다.

급격한 미술시장의 호황에서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고 앞서 밝혔다. 미술 비엔날레나 주요 미술관들의 기획전시가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가치를 정하는 절대 척도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정확한 시점을 확정할 순 없지만, 어느 때부턴가 미술판의 역학구도가 서서히 미술시장으로 이동했다. 아트페어에 출품했거나 작품이 ‘솔드아웃’된 일이 미술가들 사이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받는 것보다 몇 갑절 귀한 자랑이 됐다. 미술이 존재하는 방식이 변했고, 투자에 최적화된 미술 문화에 내가 격세지감을 겪는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미술시장 호황에서 어떤 불편한 기시감을 느꼈다는 앞선 고백을 보충하련다. 미대생 작품조차 없어 못 판다고 할 정도로 시장이 과열됐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2005년부터 2007까지 3년. 이듬해 문체부와 조선일보가 합작으로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 미술가의 작품 판매 플랫폼 격인 ‘아시아프’를 신설할 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바로 그해 미술시장이 푸욱 꺼졌고 개미투자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아이돌그룹 빅뱅의 태양이나 방탄소년단의 RM이 아트테크를 한다는 소식, 메가스터디 수학 1타 강사 현우진이 지난 10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Gold Sky Nets》를 36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쿠사마 야요이의 국내 경매 최고가 낙찰을 기록했다는 소식(그 기록은 한 달 뒤인 11월 서울옥션 강남센터 경매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또 다른 작품이 54억5000만원에 팔려 경신됨)처럼 지명도 있는 인사들의 미술 투자가 일반인의 미술 사랑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들 쉽게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나 취향이 아니라 정신적인 유행에 휘둘리는 현상은 신드롬일 순 있어도 문화적 자산에도 개인의 성장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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