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터널에 갇힌 경주대, 폐교의 나락으로 빠져드나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6 14: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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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들 “재단 못 믿겠다”…체불임금 지급 소송 제기
설립자 김일윤 전 의원 “폐교 후 부동산 개발하는 일 절대 없을 것”

경주대학교가 폐교 위기다.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2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신입생 전원에게 4년간 매년 300만원의 장학금을 내걸었지만, 평균 경쟁률은 0.3대1에 그쳤다. 재학생은 4300명(2009년)에서 750명(2021년)으로 급감했다. 충원율도 15%에 불과하다. 교직원들은 월급을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학교 운영자금도 바닥났고, 빚은 눈덩이처럼 쌓였다. 경주대는 ‘사학비리’를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교직원들은 재단이 대학 재산을 사유화하고 그들만의 돈 놀이터로 만들며 학교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경주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1988년 개교한 경주대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일윤씨가 설립했다, 자신의 호를 따서 원석학원(학교법인)을 설립하고, 경주대·서라벌대·신라고등학교를 품었다. 그리고 1992년 그는 총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듬해 학교 공금 53억원을 횡령해 구속됐다. 경주대 파행은 2009년부터 시작된다. 김씨가 감옥에 간 사이 부인 이순자씨가 총장을 맡았다. 장남 김재홍씨는 서라벌대 총장과 경주대 이사를 겸직했다. 재단 이사진은 김씨 측근들로 채워졌다. 족벌체제는 이렇게 완성됐다. 2008년까지 관광특성화대학으로 명성을 높였던 경주대는 이씨가 총장에 취임 이후 이카로스의 운명에 처한다. 상지대·수원대와 함께 ‘3대 비리사학’으로 추락했다. 

경주대학교는 2022학년도 신입생을 받지 못해 캠퍼스가 텅 빈 모습이다.ⓒ경주대 제공

교직원 밀린 월급 25개월치, 50억원

경주대는 2011년 감사원과 교육부 감사에서 무자격 외국인 교수 43명을 채용해 페널티를 받고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됐다. 재정지원제한대학은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지원이 끊긴다. 교직원들은 재단 비리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경주대는 2017년, 2018년 두 차례 교육부 종합감사를 받는다. 이씨는 5년 동안 67차례 쇼핑·관광 목적으로 해외출장을 갔다. 급여도 매달 1000만원 이상 받아 챙겼다. 130억원 상당의 토지 20여 필지를 교육부 승인조차 없이 팔았다. 또 딸이 대표로 있는 호텔 임차보증금과 월세·리모델링 비용 등 5억5000만원을 교비회계에서 지출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쌈짓돈 쓰듯 했다. 이씨는 지난해 4월15일 실형(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교육부가 다시 경주대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과 신입생 부풀리기, 교원 부적정 채용 등 사학비리 백화점이 따로 없었다. 징계 대상자만 103명이고, 중대 비리도 50여 건 적발됐다. 적자도 36억원 발생한 상태였다. 교육부는 2018년 11월 원석학원 이사회를 해산했고, 임시이사를 경주대에 보냈다. 8년 동안 총장 자리를 지켰던 이씨도 이때 해임됐다. 재단은 반발했다.

교육부를 상대로 ‘임시이사선임처분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행정법원)은 교육부가, 2심(고등법원)은 재단이 이겼다. 교육부가 상고했지만, 지난해 9월 3심(대법원)은 결국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교직원 노조는 “교육부의 허술한 대처가 온갖 전횡을 일삼던 재단이 복귀하는 데 일조했다”고 비난했다. 대수술을 예고했던 교육부는 아무것도 못 하고 3년 만에 떠났다. 중환자를 수술대에 눕혀 놓고 시간만 끌다 손을 뗀 셈이다. 교직원 노조는 “교육부의 무책임이 사태만 악화시켰다”며 “임금은 체불되고, 대학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고 토로했다.     

교직원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재단을 다시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설립자 김씨도 학교를 되찾으려면 교직원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적과의 동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해 7월30일 ‘경주대 정상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체불임금 해결을 1순위에 올렸다. 잘해보자고 손도 잡았다. 하지만 김씨는 학교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4개월 동안 시간을 끌며 공회전만 계속됐다. 

교직원 71명은 지난해 12월30일 재단을 상대로 체불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월급은 25개월치, 50억원이다. 심상욱 직원노조 위원장은 “설립자와 재단이 해결 약속도, 대책도 제시하지 않아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기석 총장도 “체불임금 해결에 총장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전국교수노조가 2020년 12월9일 교육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비리사학을 방관하고 교피아 를 양산하고 있다”고 규탄했다.ⓒ교수노조 제공

“교육부에 배임·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 추궁”

교직원들은 재단의 복귀가 ‘사학비리 복마전의 부활’이라고 주장했다. 교직원 노조 반발에도 교육부는 지난해 12월31일 원석학원이 신청한 재단 이사회 구성안을 최종 승인했다. 이사진은 김씨와 친인척, 측근들로 채워졌다. 원석학원은 1월5일 이사회를 열어 박관이씨를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박씨는 홍콩 국적의 국제 부동산업체 회장이다. 

원석학원 토지재산은 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교직원들은 상지대학교 사례를 떠올렸다. “상지대는 교육부 파견 임시이사진이 물러나고 재단이 복귀해 부동산 자산 등을 매각하고, 먹튀한 일이 있었다”며 “경주대도 같은 길을 걷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석학원은 경주 시내 금싸리기 땅을 여러 곳 소유하고, 차명 보유 토지도 53필지 약 25만㎡에 이른다. 특히 경주대 캠퍼스는 KTX 경주역 부근에, 서라벌대 부지는 시내 중심가에 있다. 모두 개발 가치가 높은 곳이다. A교수는 “재단이 외국 부동산 재벌을 끌어들이는 건 폐교 후 개발이 목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설립자 김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유명 관광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경주대 설립 취지에는 변함이 없고, 박 이사장을 모신 건 해외 유학생을 많이 유치해 국제관광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교수는 “김씨가 또 거짓말을 하는데, 교수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고 맞섰다. 김씨는 “조만간 신임 총장을 선출한 후 체불임금도 해결하겠다”며 기자에게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교직원들은 “김씨가 위장전술로 시간 끌기 작전을 펴고 있다”며 “(재단 이사회) 퇴진운동 준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또 감사 결과를 허술하게 처리해 재단을 복귀시킨 교육부에 배임·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덧붙였다. 

메시아를 자청했던 교육부는 판정패했고, 재단은 당당하게 복귀했다. 봄날을 기대했던 교직원들은 한파에 내몰렸고, 재단은 겨울잠에 들어갔다. 경주대학교는 다시 터널 안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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