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탄소 중립 해답 찾다 곳곳에서 ‘허우적’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5 07:3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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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대체재로 내세운 풍력발전, 어민들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13GW 규모 해상풍력발전사업 허가 났지만, 착공은 단 한 곳도 없어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기후변화총회에서 우리나라는 ‘2050 탄소 중립’과 ‘2030년 탄소 배출 40% 감축(2018년 기준)’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목표다. 정부는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 구상은 2019년 5.6%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34년 25.8%로 높이고, 205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64배로 키워 탄소 배출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과 저항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시간도 빠듯하다. 

특히 환경부가 지난해 12월30일 공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자력발전은 빠졌다. 원전 전기생산은 현재 23%에서 2050년 7% 수준으로 낮아진다. 대신에 태양광·풍력발전은 매년 10GW씩 늘린다는 방침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선(善), 원전은 악(惡)이란 ‘에너지 패러다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햇빛(태양광)과 바람(풍력), 생물유기체(바이오) 등을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변환해 이용하는 에너지다. 산을 깎고, 작물 대신 태양광이 논밭을 뒤덮었다. 물 위에도 지어졌다. 경남 합천댐 등 전국 5개 댐에 태양광 패널이 깔렸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 보급량은 4.8GW로 보급 목표치(4.6GW)를 넘어섰다.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이 태양광에 집중됐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치를 맞추기에는 태양광 설비를 까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판단한 것이다. 2021년 말 기준 태양광 설비 규모는 4.4GW로 전체 재생에너지 보급량의 91.7%에 해당한다. 풍력발전 보급은 0.1GW에 불과했다.

태양광발전의 골칫거리는 폐기물이다. 태양광산업협회는 폐모듈이 올해 988톤에서 2033년 2만8153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명이 20년인 폐모듈에는 납·비소 같은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산림 파괴도 심각하다. 산림청 통계를 보면, 현 정부 들어 태양광발전 시설 허가로 훼손된 산림은 1만268건, 이전 15년 동안(2655건)의 4배에 가깝다. 여의도 면적의 17배가 민둥산으로 변했다. 태양광이 친환경 에너지란 탈을 쓰고 오히려 환경 파괴의 주범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한국석유공사가 추진 중인 울산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조감도ⓒ한국석유공사 제공

“정부, 바람만 넣고 규제 통해 손발 묶어놔”

태양광 교체 맴버로 풍력발전이 바람을 타고 등장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12GW 규모의 신규 설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위원회는 최근 울산 동해1 해상풍력(400㎿)과 울산 귀신고래3호 해상풍력(504㎿), 울산 반딧불 해상풍력 발전사업(804㎿), 문무바람1 해상풍력(420㎿)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2025년 준공 목표가 완성되면, 울산 앞바다는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로 변모한다. 인천 굴업도와 영덕 동대산, 영광 낙월, 여수 금오도 등 14곳에도 해상풍력발전 사업 허가가 난 상태다. 총 발전 설비 규모는 4358.85㎿로, 원전 4기와 맞먹는 용량이다. 

정부는 올해를 탄소 중립 이행 원년으로 삼고, 해상풍력을 그 중심에 올려놨다. 그런데 전국 22곳에서 추진 중인 3㎿급 이상 해상풍력발전 사업 대부분이 민원에 부딪혀 답보 상태다. 청사포 해상풍력은 2013년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9년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사업자는 지난해 7월 시추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해운대구청과 해수부가 서로 판단을 미루고 있다. 책임을 피하려고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최우진 청사포 해상풍력 발전사업 대표는 “풍황계측 결과 해상풍력발전에 적합한 7m/s 내외의 균질한 바람이 불고, 지역의 ‘분산형 전원’으로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지반조사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허가 지연으로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 영일만 해상풍력발전(8㎿)도 중단 위기에 놓였다. 2020년 11월 풍황계측을 실시했고,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주민 의견도 수렴한 상태였다. 그런데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 선박 통행에 방해가 된다며 불허했다. 업체 관계자는 “풍력사업 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위치를 옮겨 ‘주민참여형’으로 재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풍력발전에 바람만 잔뜩 불어넣고, 규제를 통해 손발을 묶어놨다. 그 바람에 5개 터빈 제조사가 국내 사업을 포기하고, 영국·대만·베트남 등 해외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수협·한국수자원공사 제공
멸치권현망수협이 2021년 11월17일 해상풍력발전사업 허가를 취소하라는 소송장을 법원에 접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경남 합천군 합천댐에 조성된 수상태양광ⓒ수협·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전문가 “이런 식으로는 난개발만 부추길 뿐”

풍력발전 사업을 하려면 산업부의 세부허가 기준에 따라 1년 이상의 풍황계측이 필요하다. 산업부는 풍황계측기를 먼저 설치하는 사업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했다. 해상풍력 난개발과 알박기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전국 바다에는 100여 개의 풍황계측기가 돌아가고 있다. 일단 깃발부터 꼽고 보자는 것인데, 어민들은 생활터전을 지키려고 집단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경남 통영에서 풍황계측기 설치를 강행하다 어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인천·울산·부산에서도 풍황계측기 설치 반대 해상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허가를 받아도 첩첩산중이다. 현재 13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사업 허가가 났지만, 착공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복잡한 절차와 규제가 첫째 장애물이다. One Stop Shop(행정절차 간소화)을 위한 풍력발전보급촉진특별법도 발의만 된 상태다. 환경영향평가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런 난관을 힘들게 통과해도 ‘집단민원(어민·환경단체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 중인 울산 풍력발전단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김연민 울산 부유식해상풍력 추진단장은 “먼 바다에 들어서고, 소음·경관 문제에서도 자유로워 민원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시환 울산수협 조합장은 “어민 생활터전이 대형 풍력발전기에 뒤덮이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전국 수협과 공동전선을 펼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경남 통영 어민들은 산업부 장관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어민들이 구성한 대책위는 “어민들 의견이 배제된 채 추진되고 있는 욕지도 풍력발전 허가는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상풍력발전 사업과 관련해 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이 제기된 첫 사례다. 풍력발전을 둘러싼 반대여론이 전국으로 번지자 전기위원회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면 심의를 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업계는 “정부가 풍력발전을 권장만 하고 행정지원은 외면하고 있으니 ‘사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정부는 여전히 해상풍력발전을 ‘탄소 중립 해법'의 중심에 두고 있다. 하지만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해상풍력발전은 곳곳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옷을 입고 무작정 질주하는 해상풍력발전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이런 식으로는 난개발만 부추길 뿐 ’탄소 중립‘ 근처도 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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