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진학 압박’ 日 고교생, 도쿄대 시험장서 흉기 난동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1 11:00
  • 호수 16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수능일, 시험 보러 가던 학생들 칼로 찔러
도쿄대 의대 목표인 명문고 2년생, 성적 비관에 범행 계획한 듯

1월15일 오전 8시반, 일본의 ‘대학입학 공통 테스트’(한국의 대입수학능력시험에 해당)를 위해 시험장으로 향하던 남녀 수험생 2명과 70대 남성 1명이 도쿄대학교 야요이 캠퍼스(농학부) 정문 앞에서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도쿄에서 350km나 떨어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A군(17)으로, 그는 현장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 A군은 피해자 3명과 전혀 모르는 사이로, 흉기를 들고 피해자들의 등 뒤로 다가가 부상을 입혔다. 범행 직후 A군은 “내년에 도쿄대 시험을 보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할복을 시도했고, 이후 무기력한 모습으로 도쿄대 정문 앞에 주저앉았다고 전해진다.

흉기 난동을 저지른 A군은 나고야의 유명 사립고인 도카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카이고교는 2021년 기준 428명의 졸업생 중 30명이 도쿄대에, 31명이 교토대에 진학할 정도로 입시 성적이 매우 우수한 명문고로, 특히 의과대학 진학률이 14년 연속 전국 1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고교를 졸업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도카이고에서는 2학년 성적에 기반해 3학년 반 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딱 이맘때가 학생들이 성적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REUTERS
고교 2년생의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도쿄대 시험장 정문에서 1월15일 일본 경찰들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REUTERS

흉기 난동 직전 지하철 방화도 시도

사건 발생 전날인 1월14일, 가해자인 A군은 등교를 위해 집을 나간 후 저녁이 되어서도 귀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A군의 부모가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며 경찰에 실종신고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A군은 14일 저녁 야간버스를 타고 나고야에서 도쿄로 이동한 뒤, 15일 오전 수험생들이 시험장인 도쿄대로 모여드는 것을 기다렸다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관계자는 A군이 “의대를 지망해 도쿄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1년 전부터 성적이 떨어져 자신이 없어졌다. 사건을 일으키고 죽으려고 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을 들어 계획적으로 범죄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행 전 실시된 진학상담에서도 A군은 “(진학을) 희망하는 곳에 갈 만큼 성적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 A군이 사용한 흉기는 칼날 길이가 약 12cm인 식칼로, 나고야의 자택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또한 A군은 교복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범행에 사용된 식칼 말고도 톱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와 함께 가연성 액체 약 3리터가 담긴 페트병, 라이터 등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도쿄대 정문 앞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지기 직전, 인근의 지하철 도다이마에역에서는 작은 화재가 수차례 발생하는 등 누군가가 일부러 방화를 시도한 듯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역사 내 CCTV 영상에서 A군이 불이 붙은 폭죽으로 보이는 물체를 손에 들고 있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A군이 다량의 가연성 액체를 소지하고 있던 점, CCTV 영상에 그의 이상 행동이 녹화된 점 등을 고려해 경시청은 A군이 의도적으로 방화를 시도했다고 보고 조사에 나섰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도다이마에역 내 시설뿐 아니라 해당 역을 지나는 지하철 난보쿠센(南北線) 차량 내에서도 가연성 액체가 뿌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는 등 A군이 운행 중인 지하철의 차량 내 방화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당일 시험을 치르기 위해 도쿄대로 향하던 중 A군의 이상 행동을 목격했다는 한 수험생(18)의 증언에 따르면, 지하철 도다이마에역 계단에서 교복을 입은 짧은 머리 남학생이 큰 소리로 자신이 재학 중인 학교명과 편사치(일본 입시제도의 상대평가 지표)를 외치며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목격자가 시험으로 인해 너무 긴장해 긴장을 풀려고 중얼거리나 보다 생각하고 있을 즈음, 그 남학생은 가방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 바닥에 던지고는 출구 쪽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남학생의 이상 행동에 공포심을 느낀 목격자는 경찰에 신고하고 예정대로 시험을 보기 위해 수험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직후 도쿄대 정문 앞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고독’이 절망에 빠트려”

도쿄대 흉기 난동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수험생은 물론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불안에 떨었다. 1월15일 아침, 수험생 딸과 함께 도쿄대 정문 앞까지 이동했던 50대 여성은 “(학교 앞에) 소방차와 구급차가 굉장히 많았는데, 무슨 일인지 전혀 몰랐다. 시험에 사이렌 소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험생 딸을 둔 50대 남성은 “딸아이가 수험생이라 걱정돼, 16일(2일 차)에는 교복 말고 사복을 입고 시험을 보러 가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SNS상에서도 “수험생들의 인생이 걸린 장소에서 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시험장에 흉기라니 용서할 수 없다” “이게 진짜 일본 뉴스인지 눈을 의심했다” 같은 시민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일본 열도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 원인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범죄정신병리학 전공 가게야마 진스케 교수는 이번 흉기 난동 사건의 원인에 대해 “(시험에) 합격해 가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에 대한 질투나 적의(敵意)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며 “코로나19 시대에는 고립무원의 상황이 되기 쉬우므로 이렇듯 고독한 곳에서 절망에 빠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회심리학 전공 우스이 마후미 교수는 ‘사춘기 좌절 증후군’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되면 자신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면서 “보통은 자기만의 인생을 걸어가기 시작하지만 가해자는 좌절감에 그치지 않고 이 세상이 나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가해자에게 도쿄대는 자신을 평가해 주지 않은 공부의 상징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A군은 사건 직후 경찰에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했으나, 현재는 변호사를 선임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A군 부모는 변호사를 통해 사죄문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