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본에서 재조명된 ‘롯데 승계’ 논란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1 07:3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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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형 출판사, 신격호 평전 등 통해 “신동빈이 분쟁 촉발" 평가
롯데 측 “신동주의 일방적 주장 그대로 반영…법적 대응 고려”

롯데그룹 승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본에서 다시 불붙었다. 발화점은 일본 매체의 책 출간과 연속 보도다. 롯데가(家) 형제의 난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 뜻에 반해 경영권 분쟁을 촉발시킨 주역은 차남 신동빈 회장이라는 게 골자다.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경영권 탈취 시도 실패로 갈무리된 듯한 롯데 분쟁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롯데그룹 측은 “신동주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만 반영했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2020년 1월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에 참석한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왼쪽)과 신동빈 롯데 회장ⓒ시사저널 박정훈

“롯데홀딩스 설립으로 분쟁 촉발”

일본 대형 출판사 다이아몬드는 경제 저널리스트 마쓰자키 다카시와 손잡고 신 명예회장 평전 《경영자 교체, 롯데 창업자는 왜 실패했는가》를 집필해 2월1일 출간했다. 신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장남 신동주 회장 등 친족과 일본 롯데 전·현직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 회의록과 관계자 대화록도 면밀히 취재해 쓴 평전이라는 게 다이아몬드 측 설명이다. 마쓰자키는 일본 경제잡지인 ‘경제계’의 편집장을 지냈고 저명한 경영인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한 바 있다. 다이아몬드는 계열 언론사인 다이아몬드 온라인을 통해서도 평전 내용에 관한 연재기사를 게재했다. 

평전과 기사에서 다이아몬드는 신 명예회장이 장남 신동주 회장에게 롯데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30여 년간 기울인 노력이 차남 신동빈 회장의 반란으로 허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다이아몬드는 “신 명예회장은 맨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롯데를 설립하고, 그 수익을 한국에 투자해 한국 롯데를 재계 5위 재벌로 키웠다. 이 ‘롯데 왕국’을 신동주 회장에게 승계하려고 1990년 전후부터 그룹의 자본 관계를 손질하며 준비했다”면서 “2007년 자본, 조직, 인원 재구성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 일본 롯데홀딩스를 만들어 장남 승계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롯데홀딩스 설립이 신동빈 회장의 쿠데타를 촉발시켰다”고 설명했다. 

롯데홀딩스는 롯데 지배구조 개편에서 마지막 열쇠로 꼽히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지분율 19.07%)다. 롯데홀딩스의 지분율은 광윤사가 28.1%로 가장 높고, 종업원지주회 27.8%,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 10.7% 등이다. 신 명예회장이 15년 전 롯데홀딩스를 설립해 한·일 롯데의 뒤틀린 자금·자본 구조를 풀어내면서 “장남이 주식을 넉넉히 갖도록 해줄 것”이라고 했다고 다이아몬드는 전언했다. 

후계자 지명 확실히 안 한 신격호도 책임 

현재 신동주 회장은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의 지분 ‘50%+1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당초 50%를 들고 있다가 2015년 10월 신 명예회장의 지분 1주를 추가로 확보했다. 신동빈 회장의 광윤사 지분율은 38.8%다. 다이아몬드는 신 명예회장 뜻에 따라 이뤄진 지분 배분이 신동주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증거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신 명예회장과 롯데에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신동주 회장으로의 원활한 사업 승계가 가능하도록 구축한 체제였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신동빈 회장에게 ‘내가 나서지 않으면 형 신동주 회장에게 다 빼앗길 수 있다’는 초조함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다이아몬드는 추정했다. 그러면서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설립을 계기로 한·일 롯데의 복잡한 자본 구성을 처음 자세히 알게 돼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는 일본 롯데 전·현직 관계자들 증언을 인용했다. 

자본 구성이 복잡해진 건 돌아가면서 서로 출자하는 한국 롯데 계열사들의 순환출자 구조 때문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2014년부터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한국 롯데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신동빈 회장이 적극적으로 진행한 순환출자 고리 끊기는 신 명예회장과 신동주 회장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며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이 됐다고 다이아몬드는 분석했다. 

다이아몬드는 “결국 신 명예회장은 2015년 롯데홀딩스에서 대표권과 회장직을 박탈당한다. 심지어 여동생 신정숙씨가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고, 법원은 한정후견 개시 결정을 내림으로써 신 명예회장은 어떤 반격도 못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신동빈 회장은 일련의 과정을 주도하면서 신 명예회장이 쌓아올린 롯데 왕국을 뺏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비극을 초래한 일차적인 원인은 신동빈 회장의 반란이지만, 후계자 지명을 확실히 완수하지 않은 신 명예회장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명예회장은 계열사 상장을 극도로 꺼리고 소유와 경영을 하나로 생각하는 사업가였다. 2006년 롯데쇼핑 상장이 추진됐을 때 그는 “왜 회사를 남에게 파느냐”고 못마땅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을 회사 일부를 매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신 명예회장은 일본 롯데 계열사는 한 곳도 상장하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일군 내 회사’라는 인식은 승계 문제에 그대로 적용됐다. 신 명예회장이 말년에 접어들어서도 승계를 놓고 ‘아들들은 경영자로서 아직 한참 부족하다’ ‘후계자가 (자신과 같은 능력과 열정으로) 롯데를 더욱 발전시키길 바란다’ ‘후계자 지명과 무관하게 형제가 사이좋게 경영했으면 좋겠다’는 등 현실에 맞지 않은 보수적이고 투박한 인식을 드러냈다고 다이아몬드는 봤다. 

ⓒ연합뉴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롯데홀딩스 본사 건물ⓒ연합뉴스

과신했던 종업원지주회 통제력, 치명타로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분란을 막으려는 의도로 두 아들의 직책을 항상 동일하게 했고, ‘일본 롯데는 장남, 한국 롯데는 차남’으로 사업을 나눴다. 그러나 이는 묵계(默契) 수준에 불과해 치열한 경영권 쟁탈전 앞에서 금세 무의미하게 됐다. 그때그때 구두로 인사나 경영상 주요 지시를 내리고, 극히 일부 지분만 갖고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 신 명예회장의 경영 방식도 전근대적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신 명예회장이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를 쥔 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회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치명타가 됐다는 설명이다. 종업원지주회에는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 이상 직원 130여 명이 속해 있었다. 각 회원이 의결권을 개별적으로 행사하진 않았다. 회원들 의결권을 위임받은 종업원지주회 대표(이사장) 1명이 주주총회에서 표를 던지는 구조여서다. 경영권 분쟁 전까지 신 명예회장은 롯데홀딩스 지분을 보유한 종업원지주회와 광윤사, 임원지주회, 관계사 등의 의결권을 모두 위임받아 100%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회장이 2015년 7월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 명예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하자 상황은 180도 변했다. 광윤사를 제외한 종업원지주회, 임원지주회, 관계사의 의결권 53.3%가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에게 위임됐다. 다이아몬드는 신동빈 회장이 “사장 자리에 연연했던 쓰쿠다 사장, 자신의 수족 같은 고바야시 마사모토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쿠데타 결과 신 명예회장은 “‘롯데를 만든 남자’에서 ‘롯데를 뺏긴 남자’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며 그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경영자들에게 주문했다. 다이아몬드는 △후계자 지명은 공적인 자리에서 정식으로 시행(발표)해야 한다 △후보가 여러 명이면 계승 순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승계 타이밍을 오판해선 안 된다 △후계자에게 경영권뿐 아니라 경영이념도 계승해야 한다 △지주회사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라 △후계자 지명은 경영자의 전권 사항이 아니라 이사회와 논의해야 할 문제다 △만전의 준비를 무너뜨리는 결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등 경영권 승계의 7가지 교훈을 함께 제시했다. 

 

신동주 측 “경영 정상화 위해 계속 노력” 

한편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015년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귀결되자 경영권 분쟁은 신동주 회장이 시도한 일로 정리됐다. 하지만 일본 재계 관계자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와 형을 밟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판단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며 “롯데 승계 과정의 전말을 복기한 이번 평전도 그러한 맥락에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동주 회장 역시 “동생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 신 명예회장의 노화와 기억력 쇠퇴를 틈타 일본인 경영진과 야합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경영권을 탈취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계속 경영 복귀 시도에 나서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 롯데 상장사 지분을 모두 매각한 데 대해서도 “의미 없는 주식을 정리한 차원”이라며 ‘경영권 분쟁 종결 수순이 아니냐’는 일각의 해석을 일축했다. 신동주 회장 측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신동주 회장은 롯데 경영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실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전 관련 논란에 대해 롯데 측 관계자는 “다양한 주장을 담은 저서가 자유롭게 출간되는 일본 출판계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신 명예회장 평전 내용이 지나치게 상식 밖이라 유감스럽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어 “신동주 회장 측의 일방적인 의견 위주로 다뤘고,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상당수 확인했다. 저의가 의심된다”면서 “법적 조치 등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2월1일 출간된 신격호 명예회장 평전 《경영자 교체, 롯데 창업자는 왜 실패 했는가》 표지ⓒ일본 다이아몬드 출판사

■ 日 유력 매체들 잇달아 신격호 평전 출간한 이유는? 

일본 다이아몬드는 2020년 11월25일에도 같은 저자가 쓴 신격호 명예회장 평전 《롯데를 만든 남자 시게미쓰 다케오론(論)》을 출간한 바 있다. 시게미쓰 다케오는 신 명예회장의 일본 이름이다.  

《롯데를 만든 남자 시게미쓰 다케오론》은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이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1949년 롯데그룹의 전신인 (주)롯데 창립과 사세 확장, 1966년 한국 진출 후 재계 5위 재벌 등극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했다. 신 명예회장의 경영론과 못다 이룬 꿈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 책은 한동안 일본 아마존 사이트의 ‘주주총회, 회사 승계 비즈니스’ 부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21년 2월28일엔 일본 최대 경제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롯데 창업자 신격호, 경영 국경을 초월한 혁신가》를 펴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인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거대 기업을 만들어낸 신 명예회장의 경영 행보와 철학, 이념 등이 담겼다. 

이어 이번 《경영자 교체, 롯데 창업자는 왜 실패했는가》까지, 2020년 1월 신 명예회장 사후 일본 유력 매체들이 세 번이나 평전을 통해 그와 롯데그룹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신 명예회장의 생애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기저에는 한국 재벌기업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기심이 짙게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아몬드는 《경영자 교체, 롯데 창업자는 왜 실패했는가》에 관한 연재기사에서 “일본 롯데 매출은 메이지, 모리나가 등 일본 제과 대기업과 비슷한 규모라곤 하나, 한국 롯데와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경영 측면에서 롯데는 한국 재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롯데를 비롯한 한국 재벌기업들 내에선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소동이 끊이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 걸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그러면서 “다음 연재에서 한국 재벌의 기질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예고했다. 

닛케이의 《롯데 창업자 신격호, 경영 국경을 초월한 혁신가》는 1부를 롯데 50년사로 채운 뒤 2부는 ‘한국 재벌론에 비춰본 신 명예회장의 모습’을 주제로 풀어갔다. 닛케이는 “신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향후 한·일 경제에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 책을 출판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은 일본과 한국 경제를 관통하는 대표 인물이라 할 수 있다”며 “그가 양국을 오가며 이룬 업적과 경영 방식에 대해 현시점에 일본 경제계에서 벤치마킹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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