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지뢰밭 싱크홀 공포, 영화 아닌 현실이다
  • 박치현·김동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6 15: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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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상하수도관 파열과 무분별한 터파기 공사로 위험 상존
바다·강 끼고 발달한 대도시 부산, 연약지반 많아

갑자기 땅이 꺼졌다. 2월4일 울산 신정동 인도에 싱크홀(가로 1m, 세로 0.6m, 깊이 1m)이 발생했다. 땅속 하수관 파열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앞서 1월23일엔 서울 마곡동 건설현장 인근 도로에 생긴 싱크홀(가로 0.5m, 세로 1.5m, 깊이 3m)에 20대 여성이 빠져 부상을 입었다. 공사 도중 땅 밑에 공동(空洞·빈 공간)이 만들어지면서다. 1월20일에는 부산 만덕동 한 도로에 큰 구멍(지름 1m, 깊이 0.7m)이 뚫렸다. 원인은 도로 아래 묻혀있는 상수도관 파열로 밝혀졌다.    

겨울철에는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지반이 약화된다. 이 탓에 노후 상하수도관이 붕괴되며 싱크홀이 빈번히 발생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도심 지반침하(싱크홀)의 원인과 대책을 담은 현안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21년 6월) 전국에서 1176건의 지반침하가 발생했다. 경기도(217건)가 가장 많았다. 이어 충북(147건), 광주(126건), 강원(125건), 부산(104건) 등 순이었다.

ⓒ실시간대구 페이스북 캡쳐
ⓒ실시간대구 페이스북 캡쳐

부산 명지신도시 등 매립지, 싱크홀 우려 커

땅 밑을 혈관처럼 흐르는 지하매설물의 노후화가 싱크홀의 주요 원인이다. 실제로 10건의 싱크홀 중 6건은 상하수도관 등 지하매설물 손상 때문으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지반공사 부실이나 허술한 메우기, 지하수 영향 등이었다. 2019년 부산 해운대 죽도공원 주변 도로가 내려앉아 운전자 2명이 구덩이에 빠졌다. 지반 부실공사가 화근이었다.

정두회 부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도로 공사 때 입자가 작은 하천 흙으로 되메우기를 한 게 싱크홀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땅꺼짐’으로 표기하는 싱크홀은 지반이 꺼지며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다. 싱크홀은 모든 땅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다. 자연재해의 일반적인 싱크홀 유형은 지하 암석(주로 석회암)이 용해되거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경우다. 하지만 각종 공사로 땅속 지하수가 빠지면 상·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간극수압이 감소해 싱크홀이 발생한다. 

2020년 1월 경북 포항철강산업단지 한 공장에서 1600㎡ 면적의 지반이 2~2.5m 깊이로 내려앉았다. 공장 인근 하천부지에 배관을 묻는 터파기 공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이 공장은 지반조사도 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다. 이 바람에 지하수 흐름이 바뀌면서 생긴 공동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며 싱크홀이 생겼다. 최근 개발사업이 많아지면서 지하개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수 기초조사가 완료된 151곳 중 절반이 넘는 76곳(50.3%)이 조사를 한 지 10년이 넘어 자료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두회 교수는 “(지하수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땅속에 구조물이 많이 들어서면, 지하수들이 다른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반침하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지하의 안전이 곧 지상의 안전이다. 특히 바다와 강을 끼고 발달한 대도시 부산에는 연약지반이 많다. 부산 북항재개발매립지는 바다를 메워 조성됐다. 낙동강 하구변의 부산 명지신도시도 매립지다. 2020년 11월 명지신도시 상가건물 앞 도로가 내려앉았다. 지반침하로 상수도관이 터진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갯벌을 메워 만든 이곳은 지반이 연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토부 검토 보고서에는 “(이곳의) 연약지반 성토(盛土) 작업은 기준치보다 3배 이상 빠르게 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지반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명시돼 있다. 매립지를 제대로 다지지 않아 부실시공이라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명지신도시 외에도 부산신항 배후단지(부실매립)와 마산해양신도시(압밀특성 판단 오류), 군산신항(미군 유지·보수) 등이 매립지의 대표적인 침하 사례라고 적시했다. 전문가들은 매립지의 경우 잘 다져도 시간이 지나면 부등침하(불균형하게 내려앉는 침하현상)가 일어날 수 있고, 여기에 시설물 하중이 더해지면 ‘싱크홀’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포항시·부산경찰청 제공
2020년 2월14일 오후 1시 30분께 포항시 남구 이동 한 도로에서 도로가 내려앉으며 가로 4m, 세로 5m, 깊이 4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모습ⓒ포항시 제공
ⓒ포항시·부산경찰청 제공
1월20일 오후 1시50분께 부산 북구 만덕동 한 도로에서 지름 1m, 깊이 0.7m짜리 싱크홀이 발생한 모습ⓒ포항시·부산경찰청 제공

지자체, 지반 탐사 엄두조차 못내

국회는 지난 2016년 1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른바 ‘싱크홀 방지법’으로, 10m 이상 터파기를 할 때 사전에 지하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사후에도 영향조사를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특히 지반침하 우려가 있으면 시설물관리자는 ‘지반침하위험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고도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자치단체장이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 고시해야 한다. 법적인 측면에선 지하 관리에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2021년 말 기준 전국의 평가 시행사례는 4건(부산 1건·포항 2건· 당진 1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고시된 지역은 한 곳도 없다. 지반조사 없는 땅 밑 부실시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와 같지만, 정부 등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실 대응이 화를 키우고 있다”며 “싱크홀 위험지역을 전수조사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부산시는 매년 10억원의 예산으로 광역도로에 한해 지반 탐사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탐사 시 1차로 기준으로 1km에 1건 정도 지반침하가 일어나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일일이 위험도 평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지반 탐사조사는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 73건(2021년 6월 기준)의 싱크홀 사고가 있었다. 같은 기간 경기도(217건)와 충북(147건)보다 훨씬 적게 발생했다. 서울시가 지난 8년간 지하 공동(빈 공간) 5192개를 찾아 사전에 복구한 덕분이다. 또 20%에 그쳤던 공동 탐사 정확도를 95%까지 끌어올린 것도 한몫했다. 공동은 싱크홀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부산시는 5633km 도로를 대상으로 지반 탐사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열악한 재정의 지방 중소도시는 지반 탐사조사를 엄두조차 못 내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안전 문제마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한 셈이다.

지난해 8월11일 대구시 괴전동 고속철도 차량기지창 인근 도로에 지름 10m, 깊이 7m의 대형 구덩이가 파였다. 당시 집중호우로 젖은 지반이 꺼지면서 싱크홀이 발생한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싱크홀 발생도 증가한다. 국토부의 싱크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79건, 2018년 338건, 2019년 192건, 2020년 284건, 2021년 136건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시설물 안전 유지관리 특별법’을 본격 시행한 2019년 발생 건수가 대폭 줄었다. 그러다 2020년 비가 많이 와서 증가했고, 2021년에는 비가 적게 내려 발생 건수가 줄었다.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기간에는 기온이 오르면서 얼어있던 수분이 녹는다. 이 때문에 지반이 약해지고, 토압·수압 증가로 싱크홀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소방청은 이 기간을 해빙기 안전사고 긴급주의 기간으로 지정했다. 싱크홀의 역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항상 그랬고 대부분 인재였다. 땅이 꺼지는 싱크홀도 도시화가 만들어내는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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