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태도’는 힘이 세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7 08: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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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 많고 탈 많았던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짧지만 강한 흔적과 여운을 남긴 채 막을 내린 지도 꽤 됐다. 대회 초반부터 쇼트트랙 등 일부 종목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이 이어지면서 보는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 얼룩진 자리에서도 판정의 언짢음을 녹일 만한 미담은 피어났다.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우리 국가대표 황대헌 선수는 같은 종목 500m 준결승에서 자신과 부딪힌 캐나다 선수를 찾아가 사과했고.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김민석 선수는 7위에 머물러 낙담해 있던 중국 선수를 찾아가 어깨를 토닥이며 따뜻이 위로했다. 한국 선수뿐만이 아니다. 그 당시 전운에 휩싸여 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선수가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경기 시상식에서 만나 포옹한 모습은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런 미담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우리가 흔히 매너라고 말하는 ‘좋은 태도’다.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태도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태도를 만들고, 그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명대사인 ‘Manners makes man’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슈 자체보다 그 이슈를 대하는 당사자의 태도에 더 민감하게 감정이입해 반응한다.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태도가 본질이 되고, 때로 능력이 되기까지 한다.

정치에서도 그런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정치인이라면, 특히 중요한 선거에 나선 인물이라면 여러 감춰져 있던 것을 그 태도로 인해 들킬 수밖에 없다. 정치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악재들을 만나게 되는데 악재 자체보다 그 악재를 대하는 자세, 즉 태도에 따라 평판이 크게 갈리는 것은 필연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3일 정책공약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 안에서 좌석 위에 구두 신은 두 발을 올려 놓은 것으로 확인돼 '비매너' 논란이 불거졌다.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3일 정책공약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 안에서 좌석 위에 구두 신은 두 발을 올려 놓은 것으로 확인돼 '비매너' 논란이 불거졌다. ⓒ페이스북 캡처

이번 대선에서도 이런 태도 논란이 유력 후보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불거졌다. 얼마 전 SNS 사진을 통해 크게 물의를 빚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열차 좌석 위 구둣발’ 사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음식점 내 흡연 사진은 그 대표 격이라 할 만하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린 행동이나, 비록 오래전 일이라 할지라도 비흡연자와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운 행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중도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그런 일을 하면 고개를 들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더해 사과까지 어설펐으니 ‘비(非)매너’의 끝판왕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기에는 일부 후보의 ‘노 마스크’ 유세도 태도 문제와 관련해 충분히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이 된다.

이제 대선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에 살다 보니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 인쇄물의 양이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더해져 엄청나다. 출마한 후보가 너무 많아 고민의 범위도 함께 커졌지만, 그래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동안 후보들이 내놓은 엉터리 공약과 국민에서 상처를 준 말들을 향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 더 좋은 공약과 더 좋은 말은 지켜내고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민심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투표 행위라는 엄중한 ‘태도’를 통해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태도 즉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매너가 나라를 만든다. 투표는 민주 시민이 취해야 할 최상의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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