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 되면 나라 망해!”…둘로 쪼개진 ‘앵그리 표심’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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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결집 넘어 상대 ‘혐오’ 경향…진중권 “대통령 누가 돼도 통합해야”

“저 X을 뽑으면 나라가 망해.”

20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9일, 서울 중랑구 묵1동주민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씨(63)씨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민주당이 또 집권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뒤 같은 투표소에 만난 박아무개씨(24)씨는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감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밝혔다. 박씨는 “TV토론을 봤는데 도저히 ‘대통령 윤석열’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번 대선 여야는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전을 벌였다. 여야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반목’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윤 후보와 이 후보 지지층이 결집하는 과정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 정서’까지 고개를 드는 양상이다. 향후 ‘통합’이 정치권의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가 주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정치분야)가 2월25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에서 열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선관위가 주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정치분야)가 2월25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에서 열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선 기간 여야는 정책이 아닌 상대방의 ‘도덕성’을 연신 검증대에 올렸다. 여야는 대선 전날인 8일에도 ‘대장동 의혹’을 두고 거친 설전을 주고 받았다. 민주당은 윤 후보를, 국민의힘은 이 후보를 서로 “대장동 몸통”으로 지목하면서다.

이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 이른바 ‘김만배 녹취록’을 요약한 게시물과 함께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녹취록에는 대장동 민간사업자 김만배씨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 수사를 당시 주임검사였던 윤 후보가 무마해줬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날 윤 후보는 제주도 유세에서 “머슴이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해 돈벌이하고 업자와 유착했다”며 이 후보를 대장동 의혹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윤 후보 유세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은 연신 “옳소!”를 외치며 환호했다.

대선이 ‘성(性)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윤 후보는 “페미니즘이 건전한 남녀교제까지 막는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으로 여성 혐오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후보 역시 대선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여야 후보가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 유권자)의 표심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젠더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양 진영이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유세 현장에서 ‘폭력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홍성에서 열린 윤 후보 유세 현장에서 ‘전쟁 및 사드 추가배치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여대생이 폭행 당했다. 지난 1일 윤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 ‘전쟁반대’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던 20대 남성 역시 폭행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다 한 노인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전문가 일각에선 이번 대선 이후 한국 사회에서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조국 부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 정부를 흔들었던 윤석열은 용서할 수 없는 공적인 셈이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은 공수처와 검찰의 온갖 수사와 음해로 야당 후보를 탄압하는 집권 세력의 행태에 분노하며 심판하려 한다”고 했다. 이어 “서로에게 상대 후보는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몹쓸 인물이니, 그 대결이 극단적인 진영 대결로 치닫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여야 어느 후보가 당선 되더라도 ‘정치 보복’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가 급격히 나빠지거나 좋아지지 않을 것이기에, 정치에 과몰입하는 현상을 멈춰야 한다”며 “당선되는 후보는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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