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주지 않은 국민의 마음도 읽는 대통령 돼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3 14: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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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 문재인 정부 반면교사 삼아야 실패 반복 안 해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까지 껴안는 확장성 필요

불과 24만7000여 표 차이의 승리였다. 소름 끼칠 정도의 정확도를 보여준 방송3사 출구조사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어느 정도 격차를 벌리며 당선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 달리, 초박빙 승부를 예고했다. 투표일이 하루 이틀 뒤였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마지막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권교체 여론이 줄곧 55%를 상회하던 대선에서 윤 후보가 48.56%의 득표율로 간신히 당선된 결과는 사실상 반쪽짜리 승리였던 셈이다. “국민들께서 야당에 정권교체를 허락해 주셨지만 동시에 엄한 질책과 엄중한 문제의식을 함께 던져주셨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말은 선거 결과의 핵심을 잘 짚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 당선인은 승리의 기쁨만큼이나, 어째서 이 정도 득표에 그쳤는가를 성찰하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3월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3월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편 가르고 분열 조장하는 정치는 실패로 가는 지름길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준석 대표가 이끌고 윤 당선인이 따라간 ‘이대남’(20대 남성) 공략 전략에 ‘이대녀’(20대 여성)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장면이다. 하필이면 여성의 날까지 ‘무고죄 처벌 강화·여가부 폐지’를 다시 한번 들으라고 공약한 윤 당선인의 이대남 전략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대남에게서 얻은 표만큼 이대녀들이 이재명 후보에게로 갔으니, 공연히 요란만 떨고 남녀 편가르기를 했다는 낙인만 남게 됐다. 이 대표가 내걸었던 세대 포위 전략도, 호남 30% 득표도 모두 현실과 유리된 허구였음이 판명됐다. 남녀와 세대 간 갈라치기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표를 얻겠다는 발상은 애당초 옳은 길이 아니었다. ‘국민통합정부’를 약속했던 윤석열은 이제는 이준석의 손을 놓고 자기의 큰길을 가야 할 때가 됐다. 이준석 정치의 등에 업힌 모습으로 더 이상 가기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고 또 무겁다.

편을 가르고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는 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초래해 정권교체를 낳은 핵심 문제다. 그런 민주당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했다는 윤 당선인이 같은 길을 답습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분열의 갈라치기가 아닌 통합과 상생의 길만이 5월에 들어설 윤석열 정부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윤석열 당선인도 안철수 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분열과 갈등의 골을 메우고 국민통합의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기간 동안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진영 간 대결은 정치적 내전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화됐다. 국민은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져 반목하고 대립하는데, 대통령은 손을 놓고 지지자들에게만 갇혀버렸다. 진영 간 증오와 대결만이 넘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우리는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윤 당선인이 안철수 대표와 함께 만들겠다고 한 국민통합정부가 정치적 구호로만 끝나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윤 당선인은 더 이상 스스로를 국민의힘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고, 정권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넓은 바다로 향해 가야 한다.

 

안철수 통해 낡은 것 제어하고 새것 만들어가야

“정치한 지 8개월밖에 안 된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에 빚을 진 일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던 윤 당선인이다. 자신의 그런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탈진영 시대를 향한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기를 주문한다. 국민통합정부는 단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의 합당만으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두 세력을 넘어 모든 세력과 인물들에게 정권의 문호를 열고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인사, 진영과 정파를 넘어선 협치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 실패했던 보수정권 시절로 단순히 돌아가는 데서 그치고 만다면 정권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했던 탈진영의 나라로 가려 할 때, 절반에 못 미쳤던 국민의 지지를 비로소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민주당 등 범야권의 국회 의석수가 180석 안팎에 이르는 환경이다.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몸을 낮춰 야당의 협조를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넓혀나가야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단지 국민의힘 지지층이라는 한정된 기반을 넘어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층까지 껴안는 확장성을 갖도록 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다.

윤 당선인이 정치를 시작한 이래 보여온 모습에서는 국민의힘에 속한 기존 정치 세력에만 의존한 채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낡은 것은 사라졌지만 새것은 오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구습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사고와 능력을 가진 인물들로 새로운 집권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듯이, 안철수 대표를 통해 낡은 것을 제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모색도 가능할 것이다.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 효과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초박빙 승부에서 단일화가 없었다면 당락이 바뀌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후보 단일화 선언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상호보완적으로 유능하고 준비된 행정부를 통해 반드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협력이 자기들의 밥그릇을 나누는 차원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합심하고 자신들이 차지할 자리는 줄이고 새로운 인재들에게 보다 많은 자리를 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윤 당선인에게 안 대표와의 원활한 협력관계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광폭의 국정운영 리더십을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시작 단계에서 국정의 우선순위를 잘 설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국민 전체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을 우선하고, 이전 정권 시절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같은 문제는 서두르지 말고 법과 제도에 따라 판단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동안 대장동 의혹을 비롯해 집권 세력 관련 의혹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권력남용이나 외압 의혹이 제기돼온 것이 사실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정당한 요구들도 엄연히 있는데 무조건 덮고 갈 일도 아니지만, 권력의 절제 속에서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발휘해야 정치보복 논란을 낳지 않고 협치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오늘날 정권을 내주게 됐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을 때 적어도 자신이 답습해서는 안 될 일들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국민의 마음까지 읽으면서 출발할 때, 더 이상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새 정부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쓴소리를 경청하며 소통하려는 대통령이 될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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