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소외된 2030 여성들의 절망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2 14: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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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장 많은 피해 본 젊은 여성들, 선거에서조차 무시당함의 쓴맛 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이고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세세한 공약이나 비전보다는 후보 개인의 과오·단점·실수에 집중하는 이전투구 양상이었다. 와중에 두 유력후보의 배우자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자회견을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사과 이후 두 배우자는 선거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선거의 향방을 가르는 투표일마저 양당의 두 유력후보는 문제를 일으킨 배우자와 함께 나서지 않고 각각 투표하는 모습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들의 잘못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경쟁의 날들을 끝내고 투표를 하는 당일에는 두 손 잡고 나와서 ‘한 팀’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어차피 따로 살 것도 아니면서, 5년의 대통령 임기를 같이 걸어갈 동반자인데 잠시 거리를 두고 유권자들의 시선에서 치워두는 건 좀 비겁한 전략으로 보였다. 그것이 배우자 ‘보호’였을지 ‘등 돌림’이었을지는 너무나 자명하지만, 끝까지 솔직하지 않은 대선이었음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치졸함이었단 생각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역대 대선 투표율, 남성보다 여성 더 높아

이번 선거가 비판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양당의 세대 및 성별 갈라치기가 너무 심해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극심한 소외감과 무시당함의 쓴맛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특히 2030 여성 유권자에 대한 양당의 한심한 구호와 대처는 선거 후 뼈아픈 대가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정치권이 놓치고 있지만, 사실 여성들의 투표열은 10년 전부터 언제나 남성들의 그것보다 높았다. 특히 20대 여성들이 가장 열심히 투표장에 나왔다. 서울의 경우는 2012년 18대 대선부터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을 뛰어넘었고, 그 변화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에서의 여성 투표율도 남성보다 높다. 18대 대선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높았던 곳이 전국 179곳이었고(남성은 72곳), 19대 대선에서는 146곳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104곳)을 앞섰다. 이 중에서 특히 20대 여성은 더 많이 투표했다. 단지 이들은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기 때문에(실망도가 높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선거와 관련한 이번 칼럼을 준비하며 여러 자료를 읽던 중 성학자로서 심각하고도 관심을 끄는 주제가 갑자기 떠올랐다. 선거와 연애.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고 정치 가치관이 다른 남녀들이 서로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재미있는 연구들이 있다.

몇 년 전 총선을 앞두고 한 여성지가 젊은 남녀들을 대상으로 ‘연인이 정치 가치관이 다르고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면 어떻게 하겠느냐’를 여러 개의 질문으로 물어봤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를 강요한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거나 ‘앞에서 웃고 뒤에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응답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았다. 같은 질문에서 남성 응답자 중 7%가 이런 연인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 중에서는 29%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여자가 정치에 대한 가치관에서 오히려 더 단호한 이유는 그것이 사소한 생활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최근 몇 달간 혼전으로 치러지는 선거전을 보면서 ‘선거와 연애, 혹은 결혼생활’은 공통점이 참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랑 앞에서 이성적이기 쉽지 않은 것만큼 선거에서도 그런 것 같다. 여러 실험의 결과에 의하면,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뇌의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와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감정적인 호감과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후보의 세세한 공약보다는 후보 개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가짜뉴스가 많았던 이번 대선에서 그 진위 확인보다는 네 편 내 편 가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자기 고집만 합리화하는 이들이 양산되었나 보다. 또 같은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만나면 이성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니, 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후보의 이야기를 하다가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싶다.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린 여대생의 죽음

사실 선거를 앞둔 명절에 지인들을 만나 제일 금기시되는 화제가 ‘정치’ 혹은 ‘자신의 투표성향’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뚜렷한 정치성향에 반대하거나 조롱하는 반응을 마주하면 흥분하게 된다. 하물며 가족 간에도 ‘치고받는’ 심한 싸움이 종종 일어나는 걸 보면, 이번 선거 내내 연인들이나 부부들은 선거 때문에 싸우거나 결별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상대의 정치적인 견해를 아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 상대가 살면서 무엇에 가장 의미를 두는지 그의 인생의 중요 가치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와 다른 의견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사실 위기 대처 능력과도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상대를 선택하는 데 중요 조건이 된다. 다른 의견을 듣는 태도와 능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회성을 판단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연인과 부부들이 가장 많이 다투고 서로에게 실망하는 경우는 정치적인 의견이 다를 때이겠지만, 사실 그 의견의 내용보다는 의견을 말하고 들을 때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래’라거나 ‘너는 그래서 틀렸어’ 등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다툼을 부른다. ‘맨스플레인’이라고 부르는 남성들의 ‘가르치려는’ 대화 태도는 여성들의 화를 부른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생활과 환경조건이 바뀌는 것에 더 민감할까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민감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젊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사회·경제 참여는 더 후퇴하고 생활은 위험해졌다.

달리는 택시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려야 했던 포항 여대생의 허무한 죽음은 현재 20대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공포심이 얼마나 극한인지를 보여준다. 2030 여성들은 자기와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체감하고 있고, 그래서 더욱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외로움과 절망,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나하고 지지하는 당이 다른 것은 알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유독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는 걸 보면서 이렇게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할까?’라는 절망감이 심했다는 한 여성은 그 후로는 결혼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그냥 묵묵히 듣기만 하느라 속에서 열 불이 났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상대의 정치적인 견해를 아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 상대가 살면서 무엇에 가장 의미를 두는 지 그의 인생의 중요가치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와 다른 의견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사실 위기능력 대처와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상대를 선택하는 데 중요조건이 된다.

다른 의견을 듣는 태도와 능력을 알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회성을 판단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고, 누가 되었든 우리의 인생은 계속된다공생(公生)‘화합만이 살 길인데, 그동안 정치권이 헤집어 놓았던 편가르기는 이혼직전의 결혼을 봉합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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