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당선인, 인수위 사무실로 남북회담본부 점찍은 내막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1 11: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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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의지 차원인 듯…이전 정부들과의 차별화 욕심도 담겨있다는 분석 나와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은 10년 만에 부활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남북회담본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2~3주 내로 인수위를 꾸려 5월10일 취임하기 전까지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시사저널이 윤 당선인 측과 대통령경호처를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양측은 인수위 사무실을 어디에 설치할지 논의한 끝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남북회담본부, 한국금융연수원 등을 최종 후보지로 압축했다. 인수위 구성은 당선인 권한이지만 인수위 사무실 준비 등 실무적인 작업은 현 정부 몫이다. 다만 정부가 인수위 사무실 후보지를 구상했다 하더라도 당선인 측에서 다른 공간을 요구하면 새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연합뉴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전경ⓒ연합뉴스

당선인 측에서 남북회담본부 역제안 

앞서 대통령경호처는 대선 직전 윤 당선인(당시 후보)과 이재명 후보 측을 모두 찾아 인수위 사무실을 한국금융연수원에, 당선인 집무실을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두는 방안을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공간 구성과 같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사실상 인수위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무실을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뒀다”며 “그만큼 한국금융연수원과 금융감독원 연수원은 보안, 청와대·정부서울청사와의 거리 등 여러 측면에서 검증된 장소”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 측은 해당 안을 검토 항목에 올리는 한편 대통령경호처에 “남북회담본부를 인수위 사무실로 쓰는 건 어떻겠느냐”고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회담본부는 남북회담에 관한 협상 대책 수립, 회담 운영·지원, 대북 연락, 회담 홍보 등을 담당하는 통일부 산하기관이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사무국으로 출발한 뒤 지금까지 총 667차례 남북회담을 치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열린 남북회담은 3회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해 총 35차례다. 남북관계가 급랭한 탓에 남북회담본부도 2018년 12월14일 2차 남북체육분과회담 이후 ‘개점휴업’ 중이다. 통일부가 가끔 장관 주재 행사를 여기서 개최해 왔다. 

당초 윤 당선인 측에서 남북회담본부를 인수위 사무실 후보로 제시하자 대통령경호처나 행정안전부 등 유관기관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서울 북촌의 최북단에 자리한 남북회담본부는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인수위 관련 시설로 사용된 적도 없어서다. 당선인 집무실로 유력한 금융감독원 연수원과의 거리도 한국금융연수원보다 좀 더 멀어진다. 이런 핸디캡을 무릅쓰고 윤 당선인 측이 남북회담본부 아이디어를 꺼내든 배경엔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의지, 이전 정부들과의 차별화 욕심 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과 중국 간 정면 대결, 러시아의 굴기(崛起) 등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반도 긴장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외교·안보 공약에서 ‘한·미 동맹 재건과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를 1순위로 꺼내들었다. 대북정책의 경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일관성 있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화와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국제법 위반에 대한 대북제재 기조를 강조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특히 윤 당선인은 판문점이나 워싱턴DC에 남·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3자 간 대화채널을 상설화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남북회담본부를 인수위 사무실로 정한다면 자연스레 윤 당선인의 외교·안보 공약이 대내외에 각인될 전망이다. 

이제껏 인수위 사무실로 낙점되거나 고려된 바 없는 남북회담본부는 여러 ‘최초’ 수식어를 보유한 윤 당선인에게 어울리는 카드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첫 대통령이 된다. ‘0선 출신’이란 점 외에도 ‘서울 출신’ ‘서울대 법대 출신’ ‘검찰 출신’이란 점이 최초다.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윤 당선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 장점도 약점도 될 수 있는 해당 이력을 전자 쪽으로 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는 3월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마지막 집중유세를 펼치며 “나는 아무런 세력이 없는 정치 초심자지만, 아무 걱정 하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데 뭐가 겁날 게 있겠나”라고 말했다. 

 

5월 취임식 때까지 자택에 머무를 듯 

대통령경호처는 남북회담본부도 인수위 사무실로 부적합하진 않다는 피드백을 윤 당선인 측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만간 윤 당선인 측에서 위치를 최종적으로 선택하면 인수위 출범을 위한 세부 논의와 준비가 시작될 예정이다. 

한편 윤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 전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 머무를 계획이다. 윤 당선인은 2012년 부인 김건희 여사와 결혼한 뒤로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건너편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주변에서는 경호 문제, 정권 인수 작업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거처를 옮기는 방안을 건의했으나, 윤 당선인이 ‘권위의식을 버리고 시민에게 다가가고 싶다’며 자택에 남겠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3월10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당선 인사를 한 뒤 인수위와 관련해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이른 시일 내 구성해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 역대 인수위 사무실 어디에 있었나 

1992년 처음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표현을 쓴 김영삼 당선인은 국회 부근의 여의도 뉴서울빌딩을 인수위 사무실로 사용했다. 1997년 김대중 당선인은 삼청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2002년 노무현 당선인은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4~6층을 썼다. 2007년 이명박 당선인은 국회도서관 뒤 건물을 인수위 사무실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행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인수위가 입법부인 국회 안에 있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폐기했다. 이어 한국금융연수원에 인수위를 설치했다. 2012년 박근혜 당선인은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을 물망에 올렸다가 최종적으론 ‘검증된 장소’인 한국금융연수원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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