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지금 ‘화장 전쟁 중’…“21년 영락공원 개장 이래 처음”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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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극심한 ‘화장·장례 대란’ 겪고 있는 현장 가보니
“대통령이 와도 화장터 못 구해”…5~6일장 다반사, 일부는 7일장까지 치러
코로나·환절기에 고령자 사망 늘어 화장 폭증…수도권 ‘원정 화장’까지 겹쳐

“영락공원이 개장한지 21년이 지났는데 이런 ‘화장 난(亂)’은 처음이에요.” 광주도시공사 산하 종합장사시설인 광주 영락공원과 고락을 같이 해 온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함께 환절기 고령자 사망이 급증하면서 개장 이래 사상 초유로 겪고 있는 ‘화장(火葬) 적체’ 상황을 두고 전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락공원 측과 장례식장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상황에선 대통령이 와도 화장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이트(e하늘장사정보시스템)에서 조카가 대학 수강 신청하듯이 애쓴 끝에 간신히 화장터 예약을 잡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의 죽음으로 황망해 하던 유족들은 때 아닌 화장 대란까지 겹치자 코로나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대신, 화장과 장례를 더 걱정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다. 화장터를 구하지 못한 유족들은 어쩔 수 없이 국민장·사회장의 경우 치러지는 5일장을 넘겨 치르는가 하면, 비싼 화장 비용을 감수하고도 다른 지역으로 원정 화장을 떠나는 경우도 많아졌다. 

16일 낮 12시 40분께 광주시 북구 효령동의 화장시설인 영락공원 승화원. 광주 관내 차량과 경기와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10여대의 장례차가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도시공사 산하 화장시설인 광주 영락공원 승화원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함께 환절기 고령자 사망이 급증하면서 개장 이래 사상 초유로 겪고 있는 ‘화장 적체’를 빚고 있다. 16일 낮 12시 40분께 광주시 북구 효령동의 화장시설인 영락공원 승화원. 광주 관내 차량과 경기와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10여대의 장례차가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피치 못할 ‘6일葬’에 유족들 좌불안석…“불효자 된 기분”

16일 낮 12시 30분께 찾아간 광주 북구 효령동 영락공원 승화원 앞 소공원에는 검은 상복을 입고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유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현황 모니터는 10개 화장로 교대로 쉴 틈 없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대에는 광주 관내 차량은 물론이고 경기와 부산 등의 번호판을 단 10여대의 장례차량이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한 캐딜락 운구차 뒷문이 열리자 도열해 있던 유족들이 오열했다. 이어 유족들은 고인을 모신 관을 오후 1시에 시작하는 6회 차에 화장하기 위해 서둘러 화장로가 있는 승화원 안으로 운구해 들어갔다. 

그나마 이 유족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화장터를 구하려면 줄서서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광주의 경우 광주도시공사 산하 영락공원 한 곳에서 하루 최대 40명만 화장이 가능하다. 매일 100명이 넘는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는 수도권의 경우 화장장이 포화 상태여서 화장이 가능할 때까지 4일장, 5일장을 치르고 ‘지방원정 화장’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사는 유족 A씨는 “수원 연화장 등 수도권 화장장을 이용할 수 없어 모친의 연고지인 광주로 이동해 이날 오후 겨우 화장하게 됐다”며 했다. 가족의 죽음을 맞은 유족들이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전국을 배회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화장장 포화상태는 장례 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가장 일반적 장례인 3일장은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광주지역 장례업계에 따르면 최근 빈소를 마련한 지역민들 대다수가 6일, 많게는 7일장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터를 구하지 못한 유족들이 할 수 없이 장례 기간을 늘려 잡으면서다. 장례 3일째 되는 날 빈소를 비워 줘야 하는 유족들은 잠시 일상으로 돌아갔다가 화장터 예약 날짜에 맞춰 3~4일 후에 발인하기 일쑤다. 

이날 오전, 광주시 북구 용전동 그린장례문화원에서 만난 유족 B씨는 “내일 빈소를 비워주고 귀가했다가 이틀 뒤인 토요일 오전에 가족들이 다시 모여 발인할 예정이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엿새 동안 장례식장 시신 안치실에 모셔놓을 수밖에 없어 불효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법중 그린장례문화원 관리이사는 “불과 2주 전만 하더라도 화장터 예약이 어렵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며 “최근에 빈소를 마련한 가족은 기본적으로 4~5일장을 치른다. 아예 시신을 6~7일간 안치한 뒤 발인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상 7일장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규모 불문하고 40여개의 광주 모든 장례식장에서 겪고 있는 일로, 코로나19가 빚어낸 전대미문의 사회적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광주도시공사 산하 화장시설인 광주 영락공원 승화원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함께 환절기 고령자 사망이 급증하면서 개장 이래 사상 초유로 겪고 있는 ‘화장 적체’를 빚고 있다. 16일 낮 12시 40분께 광주시 북구 효령동의 화장시설인 영락공원 승화원. 한 캐딜락 운구차 뒷문이 열리자 도열해 있던 유족들이 오열했다. 이어 유족들은 고인을 모신 관을 오후 1시 시작, 6회 차에 화장하기 위해 서둘러 화장로가 있는 승화원 안쪽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도시공사 산하 화장시설인 광주 영락공원 승화원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함께 환절기 고령자 사망이 급증하면서 개장 이래 사상 초유로 겪고 있는 ‘화장 적체’를 빚고 있다. 16일 낮 12시 40분께 광주시 북구 효령동의 화장시설인 영락공원 승화원. 한 캐딜락 운구차 뒷문이 열리자 도열해 있던 유족들이 오열했다. 이어 유족들은 고인을 모신 관을 오후 1시 시작, 6회 차에 화장하기 위해 서둘러 화장로가 있는 승화원 안쪽으로 운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꼬리무는 ‘원정 화장’…수도권→광주→전남으로 하방 

화장터가 포화에 이르자 일부 시민들은 광주를 벗어나 목포 등 인근 화장터까지 옮겨가 ‘원정 화장’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선 광주로, 다시 광주에선 전남으로 ‘꼬리물기’ 원정 화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송구한 마음에 타 지역으로 이동해 비싼 화장비를 내고 이용하는 실정이다. 광주 영락공원의 화장장 이용료는 관내 주민의 경우 9만원이지만 시민들이 전남지역 화장장을 이용할 경우 50~60만원을 내야 한다. 영락공원은 전남도민의 경우 50만원, 그 외 지역 주민은 90만원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예약이 쉽지 않다는 게 장례식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이날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화장예약신청 사이트인 ‘e-하늘 장사’ 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광주지역 유일한 화장터인 영락공원의 화장 예약은 오는 19일까지 가득 찬 상태다. 인접 전남북의 화장장 상황도 비슷하다. 목포와 순천지역 화장터도 20일까지 마감된 상태다. 전북의 전주, 군산, 정읍지역 화장장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 예약이 다 찼고, 다른 지역에서 원정 화장을 오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화장장의 경우 관외 거주자 예약은 불가능했다. 광주 영락공원 관계자는 “서울, 경기에서도 꽉 밀려서 저희 쪽에 오고 이런 상황이니까 2월 중순 전부터 지금 계속 풀이다”고 했다.

‘화장 난(難)’은 광주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1만명 대를 훌쩍 넘기는 데다 고령 사망자가 늘어나는 환절기가 겹쳐 화장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광주시 월별 코로나19 확진자를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1804명, 지난 1월 7390명에 이어 ‘오미크론’이 지배종으로 자리 잡은 2월 6만7532명으로 급증세를 보였으며, 스텔스 오미크론이 덮친 이달에는 14일까지 10만 4265명이나 신규 감염됐다. 

이로 인한 사망자도 급증했다. 광주지역 코로나19 관련 사망자수는 이달 들어서만 전체 누적 203명의 36%인 73명을 기록했다. 광주 영락공원 관계자는 “2주 전쯤 전국 코로나 사망자가 200명에 가까워지면서부터 화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엊그제(14일)의 화장한 전체 38명 중 9명이 코로나 사망자였다”고 설명했다. 화장터 포화상태의 주요인이 코로나19라는 얘기다. 여기에 봄철을 맞아 파묘 후 이장을 위한 유골 화장이 늘어난 것도 화장 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광주시 “화장시설 운영 확대” 한다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광주시는 화장장 긴급 확대 운영에 나섰다. 지난 2000년 1월 개장한 영락공원은 11기의 화장로를 갖추고 있으며, 평상시에는 고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1기를 제외한 10기가 가동되고 있다. 시는 이날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한시적으로 오후 3시에 끝나던 화장장 가동 시간을 오후 5시까지 연장했다. 이에 따라 화장장 운영 회차도 당초 8회에서 10회로 확대되고, 하루 화장 건수를 기존 40건에서 50건으로 늘어났다. 또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9~10회 차는 광주 시민에 한해 화장을 허용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앞서 이용섭 광주시장도 지난 8일 “화장로 가동시간을 연장하고 화장 사이 간격을 최소화하는 등 시설 가동률을 확대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화장시설을 증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화장시설을 총가동한다는 계획이지만, 화장터 부족난을 당장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장장 가동률을 마냥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우선 회차 당 화장로 10기 모두를 동시에 가동할 수는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2시간에 걸친 가동 중에 화장로와 관대 등 시설에 발생한 고열을 식히기 위해 화로를 교차 릴레이 방식으로 가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술적으로는 1회 당 10구가 가능함에도 현실적으로는 5구의 시신만 화장할 수 있다. 또 화장장 직원들의 주 44시간 근로시간도 확보해야 하고, 공해방지시설인 화장장 특성상 조업시간 제한에 따른 영산강환경유역청과의 협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광주 시민들의 화장터 구하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영락공원 관계자는 “수도권 화장장 포화에 따른 풍선효과로 ‘원정 화장’이 늘면서 사실상 모든 직원이 휴일 없이 계속 업무를 해야 하는 비상 상황”이라고 밝혔다. 화장장 측은 이장 수요가 많은 한식을 앞둔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를 특히 우려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9~10회 차 화장을 광주 시민에 한하도록 조치한 만큼 화장 지체는 보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며 “현재 코로나 등으로 인해 화장장이 포화상태인 만큼 이장을 위한 유골 화장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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