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권노갑 “민주당, 계파 분란 끝내고 ‘김대중 정신’ 회복해야”
  • 대담=전영기 편집인/정리=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8 12: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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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인터뷰 ②
“文 대통령, 새 정부 ‘통합정부’로 출범할 수 있게 길 열어줘야”
“文 대통령-尹 당선인 회동 무산 유감…다시 조율해 조속히 만나야”
“DJ는 ‘측근 정치’ ‘靑 중심 정치’ 대신 ‘국무위원’ 중심으로 국정 운영”
“민주당, 수십 년 지켜온 노선 회복하면 많은 점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 가능”

앞선 권노갑 윤 당선인, MB 등 대사면 건의하고 문 대통령 화답하길 기사로부터 이어집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모두가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DJ가 살아있었다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에 어떤 조언을 해줄까. 그는 지금의 정치 양극화와 정치 실종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김대중 정신’으로 다시 대한민국이 통합과 화해를 이룰 수는 없을까. DJ 생전 ‘그의 분신’으로 불리던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 인터뷰는 어렵게 성사됐다. 그의 행동은 정치 원로답게 신중했다. 말에는 깊은 고민과 무게감이 실려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있었다. 

권 이사장은 3월16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여야 모두 이번 대통령선거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선거에서 이긴 국민의힘은 교만해서는 안 되며,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윤 당선인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다섯 글자를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원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이야기도 꺼냈다.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에게 새 시대 국민 대통합을 위해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반적인 대사면을 건의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윤 당선인의 국정 구상에 화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윤 당선인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아우르는 지도자가 돼야만 한다. 그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1997년 12월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인의 건의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 권 이사장은 윤 당선인이 정치보복 우려를 불식하고 관용과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할 때라고 했다. 그게 김대중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새 정부가 곧 출범합니다. 곧 떠나는 문 대통령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점은 무엇일까요. 윤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도 같이 말씀해 주시죠.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이 차기 정부 인수를 잘할 수 있게 모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해 줘야 합니다. 아울러 새 정부가 통합정부로서 출범할 수 있게 적극 협조하며 그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윤 당선인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다섯 글자를 새겨야 합니다.”

3월16일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무산됐습니다.

“매우 유감입니다. 회동 무산의 이유를 서둘러 다시 조율해 대통령과 당선인이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야 합니다.” 

청와대를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권위적인 청와대에서 탈피해 시민의 곁으로 다가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정신은 높게 평가합니다.”

민주당 이야기도 해보죠. 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게 됐습니다. 무엇이 가장 문제였다고 보시나요.

“당이 나뉘어 분열돼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오랜 전통이죠. 그런데 그 전통이 어느 순간 깨졌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패거리 정치가 강해졌습니다. ‘노사모’를 넘어 ‘문파’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측근 정치로, 청와대 비서 중심의 정치를 했습니다. DJ 때는 국무위원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고, 비서 정치 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에 수석이나 비서관으로 근무한 사람은 끝까지 대통령을 보좌했지 경력 쌓고 나와서 정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일했습니다. 국민은 우리를 지지하는 일부가 아닌 전체였습니다.”

민주당에는 동교동계라는 오랜 계파가 있지 않나요.  

“동교동계란 말은 독재정권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김대중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니까 언론이 동교동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동교동계는 피해만 봤습니다. 동교동계 구성원은 선출직에만 나갔지 임명직은 일절 맡지 않았어요. 공천에서도 우리 쪽 사람들이 피해를 봤어요. 오히려 동교동계가 중심이 돼서 새로운 인물을 당으로 영입했습니다. 젊은 피 수혈을 동교동계가 했습니다. 과거의 인물은 철저히 배제했어요. 그래서 당시 내 별명이 ‘저승사자’였어요. 그 후로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민주당 의원을 통칭해 동교동계라고 했습니다. 이낙연, 우상호, 김민석, 정동영, 정세균, 한명숙, 김근태, 송영길 등도 다 이렇게 발탁됐습니다.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인사를 하면 그때부터 당이 분열합니다. 능력과 비전의 경쟁이 아닌 계파가 중심이 되니 당이 흔들리고 허약해진 겁니다.”

문재인 정부 5년간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시나요.

“이번 대선에서 진 것이 바로 그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최근 민주당으로 복당을 하셨습니다. 

“내 정치적 생명의 뿌리인 민주당을 탈당했던 것은 당시 당이 너무 특정 계파 중심으로 분열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복당한 이유는 나의 정치생명의 원뿌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당했다고 개인적으로 무얼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사에 걸려있는 DJ의 초상화를 보니 감회가 또 새삼스러웠어요.”

민주당의 전통 노선이란 무엇인가요. 정치란 원래 비전과 노선에 따라 계파별로 경쟁하는 것 아닌가요. 

“민주당의 뿌리, 전통 노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남북화해와 평화협력, 그리고 인권에 근거한 생산적 복지,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약자를 위한 정치입니다. 이게 우리 민주당이 수십 년간 지켜온 노선이자 전통입니다. 이 뿌리에서 출발하면 많은 점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대선후보로 선출됐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같이 경쟁했던 이들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미 끝난 일이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민주당에서 눈여겨봐야 할 정치인은 누구라고 보시나요.

“제가 발탁했던 많은 정치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훌륭한 정치인이지만 국민의 기대를 얻을 만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누구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민주당의 586이 이젠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어떻게 보시나요.

“안 대표는 정치인보다 자기 전문분야, 과학기술 분야의 일을 하는 편이 좋다고 봐요. 큰 지도자가 되려면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고 넓은 도량,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을 이끌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지도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생전 ‘DJ의 분신’으로 불렸다. DJ(가운데)가 1996년 국민회의 총재 시절 권 이사장(맨 오른쪽)과 자리를 함께한 사진. DJ에 귀엣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박지원 현 국정원장ⓒ연합뉴스<br>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생전 ‘DJ의 분신’으로 불렸다. DJ(가운데)가 1996년 국민회의 총재 시절 권 이사장(맨 오른쪽)과 자리를 함께한 사진. DJ에 귀엣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박지원 현 국정원장ⓒ연합뉴스<br>

다시 DJ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DJ를 성장시킨 가장 큰 자양분은 무엇이었다고 보시나요. 후배 정치인들이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까요.

“DJ의 위대함은 평생을 연구하고 공부한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했어요. 특히 철학과 역사를 많이 연구했고, 역사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세계의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정보화 시대와 문화의 시대 도래를 예견해 우리나라를 IT 정보강국이 되게 했고,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정책’으로 한류문화를 세계에 꽃피웠지요. 특히 용서와 화해의 햇볕정책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이런 모든 것의 에너지는 국민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래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고, 의료·연금·고용·산재 등 4대 사회보험을 모든 국민에게 전면적으로 실시해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돌이켜본다면 ‘정치인 권노갑’의 정치는 어떠했나요.

“어떤 비판이 있든 내 소신대로 정치를 했어요. 자리를 탐하거나 화려함을 추구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DJ를 위해 정치를 했어요. 무엇이, 누가 필요한가만 고민했어요. 금전이 필요한가, 조직이 필요한가, 어떤 보좌가 필요한가만 생각한 거죠. 국회의원 하려고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DJ가 선거에서 떨어지냐, 내가 당선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내가 성장하고 싶어 성장한 게 아닙니다. 그의 정치 역정에 따라 나도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 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는 거는 안 했습니다. 못 했습니다. 그게 내 천성입니다.”  

 

권노갑은 누구

1930년생. 목포 출신, 원적지는 경북 안동.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렸다. 29세부터 48년 동안 DJ와 정치 역정을 함께했다. DJ와의 인연은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때 직업(목포여고 영어교사)까지 그만두고 그를 돕는다. 이후 목포상고 4년 선배인 DJ의 정치적 시련기에도 늘 곁을 지키며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며 2인자로 활동했다. DJ가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등을 제외하고 보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13·14·15대 국회의원과 당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했을 뿐 DJ 집권 때도 권력 전면에는 나서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 집권 때까지 정치적 이유로 다섯 번 교도소에 갔다. 2007년 1월4일 병실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목포상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한국외대 영문학 석사 과정에 입학해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4학기를 마칠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한국외대 역사상 최고령 석사학위 취득자다. 2016년 민주당을 탈당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돕다 민주평화당 창당에 참여해 고문으로 활동했다. 민주평화당 분당 이후 탈당했고, 2021년 12월 민주당에 복당했다. 현재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명예이사장,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전히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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