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남자 차별 말고 잘한 학생 칭찬하자”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04.08 17:0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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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남자와 여자가 아닌 잘한 학생을 칭찬하자.” 몇 년 전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만든 ‘양성평등 기본법’ 중에 등장한 말이다. 이런 내용도 있었다. “여자라 해서 연약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자라 해서 강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남자들은 남자 편, 여자들은 여자 편을 들지 않고 옳은 편을 들자.”

그냥 웃어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의외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자) 논란’의 뿌리는 상당 부분 초등학교 시절 생활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반발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여성 보호를 내세웠다간 “왜 남자만 여자를 지켜요?” “그건 평등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최근 출간한 《슬기로운 좌파생활》에서 “엄마도 페미야?”라고 따지듯 묻는 어린 아들 때문에 결국은 우는 엄마를 보았다며 “단군 이래로 한국의 틴에이저들, 아니 틴에이저 보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너도 페미냐?’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런 아들들이 커서 20대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대남 현상’이 시사하듯이, 초·중·고 학생들의 반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5~34세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혐오표현에 공감하는 비율은 청소년이 66.7%로 여타 세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일부 초등학생은 자기들 사이에서도 “너 페미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페미’의 의미는 자기가 좋은 것만 하겠다는 ‘얌체’나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쩌다 ‘페미’의 의미가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했을까?

일부 언론은 “엄마도 페미야?” “너도 페미냐?”라는 공격성 질문에 이른바 ‘백래시’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이는 너무 성급한 것 같다. ‘백래시’는 정당한 페미니즘 활동에 대한 남성의 집단적 반동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데, 그렇게 미리 판단을 내리고 들어가면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일자리 영역에선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차별이 심해진다.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인지라 정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차별 해소 방안이 장기적·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대 간 불공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로 인한 수혜는 기성세대 남성이 보고 있음에도 그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이대남에게 집중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게 이대남의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소속 활동가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소속 활동가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남성 기득권 질서는 강고할망정 젊은 세대의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나 역시 그간 내가 겪어온 삶의 체험과 기억에 따라, 초·중·고교에서의 ‘여학생 우대’는 당연하거니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간 세상이 변한 걸 건성으로 보아 넘기면서 10대와 20대들의 전혀 다른 경험과 처지에 대한 역지사지 노력을 게을리해온 것이다.

이대남의 생각과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다. 기성세대는 아직 상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관계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는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를 성찰해 보자는 뜻이다. 여성 혐오표현이라는 증상에만 주목하면 이 문제는 영영 풀리지 않는다. 그건 다른 분야에서도 수없이 나타나는, 익명의 온라인 세계가 빚어내는 부작용으로 이해하면서 원인 규명에 집중해야 한다. 우선 “남자 차별 말고 잘한 학생 칭찬하자”는 초등학생들의 제안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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