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로 제주를 안는 깊은 시선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0 11:0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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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정착한 언론인 황의봉의 《제주는 오늘도 설렘 나 여기서 살당 죽젠!》
제주는 오늘도 설렘 나 여기서 살당 죽젠!│황의봉 지음│해요미디어 펴냄│320쪽│1만7000원
제주는 오늘도 설렘 나 여기서 살당 죽젠!│황의봉 지음│해요미디어 펴냄│320쪽│1만7000원

동백꽃이 지고, 목련이 지고, 유채꽃이 필 때면 제주 사람들은 울고 싶어진다. ‘제주 4·3 사건’의 그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해방을 맞은 지 3년도 되지 않아 제주는 역사의 희생양이 됐다. 그 판을 흔든 이는 육지 사람들이었다. 천 년 넘게 자신들을 수탈하던 육지 것들의 만행이 만든 희생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4·3 사건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더불어 제주는 국제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수많은 개발과 보존의 쟁점 위에 섰다. 이데올로기 못지않은 것이 돈이라고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때로 그 대상이 중국인이었고, 육지 자본이었고, 토박이 자본도 있었다.

반면에 제주의 깊이를 알아가려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올레길이 완성되면서 좀 더 천천히 느끼려는 흐름도 생겼고, 한 달 살기 프로그램도 활성화됐다. 더 큰 흐름은 아예 제주에 정착하러 오는 신중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4년 전 봄, 그 대열에 기자 출신인 황의봉도 합류했다. 제주시 애월읍에 만들어진 이랑마을에 터전을 잡은 그는 그간의 꼼꼼한 기록자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제주는 오늘도 설렘 나 여기서 살당 죽젠!》을 출간했다.

그가 펼치는 제주 이야기의 씨줄이 오름이라면, 날줄은 4·3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사를 관통하는 그 사건을 읽지 않고서는 제주의 숨결 하나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 4·3 아카데미 수강자로 선정되면서 역사적 진실을 계속 주시하게 됐다. 소개 작전 중 불탄 관음사, 예비검속으로 191명이 죽은 섯알오름 등 무고한 지역민들이 희생당한 현장을 보고, 현길언의 소설이나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 등을 통해 제주민의 애환을 알아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 황 작가가 얼마나 제주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는 기자 출신답게 얻은 지식의 실제 배경을 찾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기록했다.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오름이다. 이름을 얻은 368개 오름은 책 전반에 깔려있다. 당연히 수없는 오름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산책길이 좋은 노꼬메오름, 유채꽃과 어울린 용눈이오름, 호수가 좋은 사라오름, 야생화 천지인 백약이오름, 이효리 뮤직비디오로 더 알려진 금오름 등 수많은 오름을 오르고 기록했다.

“예순여덟으로 영면한 ‘오름 나그네’ 김종철을 비롯해 오름에 대한 제주인들의 사랑은 문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때 개발에 그냥 헐렸던 오름도 있고, 보호 때문에 더 들어갈 수 없는 오름도 있다. 제주에 있는 것은 오름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여정 같다.”

작가는 기자 출신답게 수많은 스토리를 찾아서 전달한다. 아일랜드에서 제주로 와 64년간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다가 돌아가신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한국 이름 임피제) 신부, 추자도에서 한스러운 고혼이 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유배 온 조정철과 의를 지킨 홍윤애 등은 물론이고, 제주로 이사한 다양한 이의 삶도 잘 전달한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격언은 작가의 글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다.

언론노련 초기 멤버로 활동했고, ‘신동아’ 편집장을 지낸 작가는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했다. 그때 만난 중국 전문가들의 기록인 《중국통》을 저술했고, 퇴직 후에는 세종대 등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다가 홀연히 제주로 떠났다. 4년 만에 그 소중한 기록으로 제주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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