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세인고의 ‘수상한 폐교’ 속내는?
  • 박치현·이정희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9 12: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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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계획서 내지 않고 폐교 택해
“폐교가 이전보다 학교 땅 팔기에 용이해서” 등 의혹 무성

학교를 더 지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학교조차 없애버린 곳이 있다. 신도시가 한창 조성 중인 울산시 울주군 청량읍이다. 지금 짓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가 완공되면 청량읍 인구(2021년 말 기준 1만9127명)는 4만 명에 육박한다. 인구가 늘어나면 학교도 그만큼 더 필요하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세인고등학교가 2월28일 문을 닫았다. 신입생이 없다는 재단의 폐교 요청을 울산교육청이 수용한 것이다. 윤덕권 울산시의회 의원은 “(세인고 폐교로) 울주군 6개 읍 중 청량읍에만 고등학교가 없다”며 “향후 6000가구가 입주 예정인데도 고등학교가 없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학부모 A씨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신입생이 오지 않는다는 세인고 주장도 어이가 없지만, 있는 학교마저 폐교시키는 교육청이 이상하지 않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주민들은 울산교육청에 ‘청량고등학교(가칭) 설립 촉구 건의서’를 전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등학교 신설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노옥희 울산교육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민들의 요구가 타당성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시사저널 박치현
올해 2월 폐교된 울산 세인고등학교ⓒ시사저널 박치현

교육청 ‘협의’ 대신 업체와 ‘사전매매협약’ 체결

세인고는 산업단지 조성이 진행 중인 곳 한가운데에 박혀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세인고의 파행 운영과 산단 개발이 한 축으로 연결된 ‘수상한 폐교’라고 지적한다. 한 학교재단 관계자는 “세인고는 그렇다 치고 교육청의 폐교 결정이 누구를 위한 건지, 그래도 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세인고의 폐교 관련 서류를 확보했다. 산업단지 시행사인 B사는 2012년 9월 세인고(옛 홍명고) 부지가 포함된 용암일반산업단지 조성계획서를 울산시에 제출했다. B사가 학교 땅(4만㎡, 감정가 160억원)을 사주고, 세인고는 땅을 판 돈으로 다른 곳에 이전하는 조건으로 가계약했다. 당시 재단 이사였던 C씨는 “산단 업체가 학교를 살 수 있게 도와주면 뒷돈을 챙겨주겠다며 이사들에게 통 큰 로비를 했다”고 시사저널에 밝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울산교육청(산단 승인 우선)과 울산시(학교 이전 우선)의 입장 차로 1년8개월을 끌었고, 국민권익위가 중재에 나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같은 시기 D사가 동일 지역에 산업단지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울산시는 세인고 이전 문제 해결책이 없다며 반려했지만,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이때부터 세인고를 잡으려는 D사의 물밑작전은 가열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세인고는 ‘사학비리 온상’으로 낙인찍혀 학교가 엉망이 됐고, 재단은 산단 업체에 땅을 파는 데 주력했다. C씨는 “그때는 ‘이중계약’으로 차액을 챙겨주겠다는 제안이 많았고, 우리에게도 이런 제의가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매각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세인고는 2015년 1월 이사회를 열어 학교 부지를 공매처분하기로 의결했다. 그런데 재단이사장이 이사회 결정을 무시하고 D사에 팔기로 가계약 협약서(매매금액, 지불방법 명시)를 체결했다. 문제가 생길 법도 한데 그냥 넘어갔다. D사는 이 협약서를 울산시에 제출해 현재까지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앞서 세인고 재단은 2018년 1월 학교 땅을 D사에 넘기기 위해 ‘사전매매협약’을 체결했다. 전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재산을 매각하려면 교육청과 협의해야 하는데, 법망을 피하려고 ‘계약’ 대신 ‘협약’이란 꼼수를 들고나온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용암산단 사업계획서는 3차례나 반려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세인고 이전이 전제돼야 산단 허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짜를 맞은 업체는 ‘도하일반산단’으로 명칭을 바꿔 지난해 4월 다시 사업계획서를 울산시에 제출했다. 

세인고는 2012년부터 학교 땅을 팔기 위해 산단 시행사와 꾸준히 접촉했다. 울산교육청은 세인고가 지금까지 이전계획서를 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사할 집도 구하지 않고, 살던 집을 못 팔아 안달하는 모양새다. 산단 허가를 받으려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데, 돈도 많이 들고 절차도 복잡하다. 대신 폐교하면 산단 허가도 간단하고, 학교 땅을 시행업체에 팔기도 쉽다. 세인고는 2020년 2월 폐교를 신청했고, 울산교육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세인고는 올해 2월 마지막 졸업생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세인고 폐교 과정에 석연찮은 점이 수두룩하고, 울산교육청의 업무 처리에 대한 위법 논란까지 일고 있다.           

한때 전교생 1600여 명이던 세인고는 2020년엔 133명으로 줄었다. 학생들이 세인고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세인고가 도덕성 논란과 특별채용 등으로 엉망이 된 것은 울산교육청의 지도·감독 소홀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세인고는 폐교 직전까지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학교를 파는 데 급급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업무추진비(2018∼21년)를 보면 학교 이전 협의를 위한 식사와 산단 관계자와의 미팅 등에 학교 예산을 가장 많이 썼다. 

윤덕권 울산시의원을 비롯한 청량읍 주민들은 2021년 11월23일 울산시교육청을 찾아 고교 설립 촉구 건의서를 노옥희 교육감에게 전달했다.ⓒ울산시교육청
울주군 청량읍 신촌마을 주민들이 2020년 용암일반산업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시사저널 박치현

울산교육청, 세인고 이전 비용 전액 부담하며 논란 자초   

학교 이전 문제로 산단 허가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던 2020년 3월, 세인고는 웅촌초등학교 검단분교로 임시 이전했다. 세인고가 원했고, 울산교육청이 이를 수용한 결과다. 건물 노후화(C등급)와 공단 주변의 열악한 교육 여건이 이전 사유였다. 학교가 옮겨지며 산단 조성 장애물이 제거됐지만,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학교 이전 비용 2억9400만원(리모델링 2500만원, 이사 1200만원, 전기·통신·공사 2700만원, 통학버스 임차료 1억8900만원, 인건비 3200만원, 학교운영비 1900만원)을 울산교육청이 전액 부담했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자체 판단으로 지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조건의 사립학교인 울산삼일여고는 이전 부지에 임시교실을 짓는 공사비 전액을 학교가 부담했다. 부산교육청 한 관계자는 “사립학교 이전 비용은 자부담이 원칙이고, 공립의 경우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교육부 심의를 거쳐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인고 이전 비용 지원에 위법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폐교 과정도 석연치 않다. 세인고는 이전(2020년 3월2일)과 동시에 폐교 신청(2020년 2월12일)을 했다. 그리고 2년 후인 지난 2월 세인고는 문을 닫았다. 한 사학재단 관계자는 “고작 2년을 위해 교육예산을 들여 이전해 주고, 곧바로 폐교까지 시켜주는 울산교육청에 의혹을 눈길을 보내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초중등교육법 제65조에 따르면 폐교하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세인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관계자(교사, 학부모, 학생 등)의 폐교 동의서가 없었지만, 재단 이사회 의결로 폐교 신청서가 들어와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교육청의 입장은 달랐다. 폐교는 학교 관계자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고, 반대 의견이 나오면 폐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폐교 위기에 몰리면 재단은 학교를 살리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세인고는 스스로 폐교 신청을 해가며 학교를 죽였다. 그리고 산단 업체가 학교를 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울산교육청은 지난해 3월 사립학교법 제35조를 근거로 세인고에 폐교 후 기본재산 처리방안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1년이 넘도록 계획서를 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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