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엔데믹 국가’ 선언은 웃음거리”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9 10: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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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률만 낮다고 엔데믹인가⋯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엔데믹

정부는 2월부터 엔데믹(풍토병) 얘기를 꺼냈다. 코로나19 유행이 감소하고 있으며 의료체계로 감당할 수준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며 유행이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도 않았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2월 들어 하루 신규 확진자는 대폭 증가했고 3월17일에는 역대 최고치인 62만 명 이상이 발생했다. 이후 하루 신규 확진자는 점차 감소했다. 마침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이행되는 첫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엔데믹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4월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인용해 “대한민국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5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코로나19를 풍토병 수준으로 낮추는 선도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는 4월6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닫혔던 국제선 운항 규모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엔데믹 시점을 10월 정도로 특정하기도 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검사·방역 완화로 엔데믹 준비하는 정부

정부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전국 선별진료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었던 신속항원검사를 4월11일 중단했다. 의심 증상이 나타나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은 진단검사를 하는 동네 병·의원이나 호흡기 전담 클리닉에 가야 한다. 독감처럼 일반 의료기관에서 진료하려는 움직임이다. 독감의 치명률은 0.05~0.1%이고 4월12일 기준 코로나19의 치명률은 0.13%다. 

방역도 크게 완화하는 추세다. 4월초 ‘사적 모임 10명·영업시간 밤 12시’로 대폭 완화한 방역조치를 아예 전면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4월18일부터 적용할 새로운 방역수칙을 15일쯤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내 마스크 착용 외 모든 방역조치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최근 “‘포스트(post·이후) 오미크론’ 대응체계를 다음 주 중 발표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를 2급으로 하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 국무총리는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감염병 등급 조정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늦지 않게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굳이 엔데믹을 선언하지 않아도 엔데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코로나19 감소세에 맞춰 방역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엔데믹은 정부의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엔데믹은 바이러스가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엔데믹을 선언한들 무엇이 달라지나. 세계 각국은 여전히 팬데믹(대유행) 상태이므로 우리도 언제든지 팬데믹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정부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엔데믹을 이해 못 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특정 감염병이 2개 대륙 이상에 퍼질 때 팬데믹을 선언하고 적정 수준 이하로 사그라지면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다. 엔데믹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감염병이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또는 그런 병’이다. 예컨대 아프리카 등지에서 꾸준히 발병하는 말라리아가 엔데믹에 속한다. 해당 국가는 특별한 병원이나 검사소를 만들지 않고 환자도 일반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할 때 현재 국내외 코로나19 상황은 팬데믹이다. WHO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없다. 

WHO는 4월14일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긴급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이번 팬데믹에 대해 PHEIC 유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비상 프로그램 책임자는 “지금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확진자 수가 곧 절대적으로 위험 감소를 의미한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일 것이다.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기쁘지만, 이 바이러스는 이전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고 우리의 허를 찔렀다”고 경계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WHO 회원국인 한국만 엔데믹을 선언한다는 것은 세계적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3만~4만 명으로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만 엔데믹 선언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미국이 방역을 완화하면 곧잘 따라 하더니 이번에는 독자적으로 엔데믹 선언 얘기를 꺼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하루 신규 확진자나 신규 사망자 수에서 세계 1위 국가”라고 지적했다.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정부의 말처럼 독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신규 위중증 환자는 연일 1000명대가 나오며, 신규 사망자도 매일 200~300명 수준을 오르내린다. 특히 누적 사망자 약 2만 명 가운데 절반인 1만 명이 최근 1개월 동안 발생했다. 

감염병이 언제, 얼마만큼 규모로 발생할지 예측이 가능해야 의료체계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고 일반인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또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될지 아니면 아예 종식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부가 엔데믹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전병율 차의과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엔데믹이란 늘 존재하는 질병을 말한다. 말라리아나 계절 인플루엔자처럼 꾸준히 발생하지만 많이 확산하지도 않고 적게 퍼지지도 않아 일상적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엔데믹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늘 존재하는 질병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정부가 엔데믹이라는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 같다. 차라리 일상을 되찾아가는 단계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약국 약사가 1월14일 화이자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범용 치료제·변이 출현 모두 불확실

국내에서 매년 겨울에 독감이 유행하지만 별도 진료를 하거나 환자를 격리하지 않으며 모든 환자는 일반 병·의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치료제는 60세 이상 고령자와 40세 이상 기저질환자나 면역저하자에게 투여하도록 돼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김우주 교수는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도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나온 덕분에 2010년 엔데믹이 됐다. 당시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환자는 별도의 진단 없이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현재 코로나19 감염자가 중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먹는 치료제가 있지만 고위험군, 같이 먹으면 안 되는 병용 금지 약물, 5일 이내 복용 등 특정 조건이 있어 동네 병·의원에서 범용으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타미플루처럼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매년 10월 독감 백신을 맞는 것처럼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처럼 동네 병·의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필요하다. 이런 점이 선행된 후에 엔데믹을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꾸준히 출현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변이가 생기더라도 전파 속도와 치명률이 낮아야 엔데믹을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3~6개월마다 변이했고 최근에는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1.5배 빠른 스텔스 오미크론이 출현했다. 또 오미크론과 스텔스 오미크론이 혼합된 변이 ‘XE’가 일본에 상륙했고, 국내에서는 오미크론 재조합 변이 ‘XL’도 확인됐다.
 
이재갑 교수는 “우리가 엔데믹을 원하면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은 다소 소강상태이지만 언제든지 유행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어느 정도 확산해도 방어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춰놔야 한다.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외래 환자를 마구잡이식으로 보는 현재의 의료체계로는 엔데믹을 맞을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 계획

방역 당국은 4월13일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 계획을 발표했다. 60세 이상 고령층이 접종 대상이다. 백신 접종 효과가 떨어지면서 확진자 비중이 증가해 고령층 사망자가 지금보다 늘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신규 확진자 중 60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20% 안팎을 기록한다. 또 사망자의 95%가량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월30일 50세 이상 성인에 대한 화이자와 모더나의 4차 접종을 승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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