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文心’에 진화 안 되는 ‘검수완박’ 정국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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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민주당 사이 ‘양비론’ 택한 文대통령
與에서도 속도조절vs강행추진 두고 ‘왈가왈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야권에선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기류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고 보는 반면, 여권은 오히려 “이것이 문심(文心)”이라며 ‘검수완박’에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려는 태세다.

이처럼 해석이 엇갈리는 이유는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를 반려하며 내놓은 발언이 원론적 내용에 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수완박’에 대한 찬반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양비론에 가까운 발언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옆 모습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옆 모습 ⓒ 연합뉴스

아리송한 文대통령 의중 두고 ‘아전인수’ 해석

논란에 휩싸인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 김오수 총장과의 70여분간 면담 과정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의 ‘검수완박’을 저지하고자 사의를 표명한 김 총장의 사퇴를 만류하면서 “국회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검찰총장이 검사들을 대표해 직접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총장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문 대통령이 김 총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해석됐다. 검찰 안팎에서도 긍정적 기류가 읽혔다. 전날 집단 사표를 시사했던 고등검찰청 검사장들도 문 대통령과 김 총장의 면담 후 “김 총장을 중심으로 국회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기류를 저지할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동시에 “국민이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기에 법제화와 제도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에 자기개혁을 주문하며 쓴 소리를 남긴 셈이다. 이는 민주당이 방점을 찍은 대목이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사실상 ‘검수완박’에 공감해 힘을 실어줬다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수완박’ 정국 부담스러운 靑…“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사실 문 대통령의 양비론적 입장은 1년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검찰정국 내내 견지한 태도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검수완박’에 반발하며 직을 던진 직후인 지난해 3월8일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는 꾸준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서도 “질서 있고 책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사퇴를 에둘러 비판하며 ‘검수완박’에 힘을 실으면서도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이다.

‘검수완박’과 관련한 아리송한 문 대통령의 태도는 ‘레임덕설’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유영민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은 ‘검수완박’의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고 전했지만,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즉각 “비공식적으로도 전해들은 바 없다. 사실과 다른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주문을 민주당에서 거절한 그림으로 비쳐져, 정치권 일각에선 ‘문 대통령 패싱’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남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취해도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에 찬성할 경우 검찰은 물론 윤석열 신임 정부와 전면전을 불사해야 하고, 그렇다고 반대할 경우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청와대는 물론 문 대통령도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민주당 ‘마이웨이’ 기류 속 ‘소신’ 발언도 이어져

일단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을 예정대로 강행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법사위 소위를 소집해 ‘검수완박’ 관련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전날에도 민주당 주도로 ‘검수완박’ 법안 심사를 위한 법사위가 열렸으나 여야 대치로 무산되면서 이날 다시 소집을 결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금주 법사위를 거쳐 4월 중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모두 처리하고 5월3일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를 공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거듭 ‘검수완박’의 속도조절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박지현 공동 비대위원장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검경수사권 분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맞지만 속도를 중요시 하다가 방향을 잃을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당내 소신파로 꼽히는 김해영 전 의원은 “국회 의석수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형사법체계의 큰 혼란과 함께 수사 공백을 가져올 것”이라고 공개 반대했고 조응천 의원도 “개정안 내용 일부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야권에선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당초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회의 보이콧 등 투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보여 왔으나, 현재 여소야대 의석 구도를 실질적으로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의 시간이라는 떠넘기기를 그만두고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요구에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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