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잃기’ 경쟁에 나선 민주당과 윤석열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2 16: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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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배 탈당 꼼수’ 對 ‘정호영 지키기’ 점입가경…국민 시선은 안중에도 없어

대선에서 졌는데도 이러는데,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밀어붙이기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마도 자신들이 해온 입법독주에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으로 해석하며 무엇이든 ‘우리 민주당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오만한 입법독주에 민심이 등을 돌려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올해 대선에서도 패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입법독주 시즌2에 돌입했다. 도둑질도 할수록 는다고, 이번 입법독주는 이전 사례들보다 훨씬 대담하다. 4월12일 당론을 결정하고 5월3일 법안 공포라는 최종 목표까지 기간이 불과 20일 남짓이다. 다른 내용도 아니고 우리 형사사법 체계의 기본 틀을 바꾸는 엄청난 작업인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가히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일정에서 야당들과의 협의 같은 일은 거추장스러울 뿐,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그런데 여론은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공수처 법안들이나 임대차 3법 등을 강행 처리했을 때보다도 더 나쁘다.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는 정의당도 반대하고 있고, 그동안 검찰 개혁을 주문해온 참여연대와 민변 같은 진보 성향 단체들도 졸속 처리를 비판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4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검수완박에 대해 52.1%가 반대, 38.2%가 찬성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마디로 말해 ‘민주당만 빼고’ 대부분 다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기어코 검수완박을 하겠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다. 대선에서 민심이 민주당에 심판을 내렸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건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대선 불복을 넘어 국민 무시라는 얘기를 들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검찰 수사권을 폐지해 버리고 나면 경찰 수사만으로는 국가적 수사 공백 사태를 피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4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앞줄 오른쪽)과 박홍 근 원내대표(앞줄 왼쪽) 등 참석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만 빼고 다 반대하는 ‘검수완박’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일단 검수완박 법안부터 공포해 놓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시간을 갖고 연구해 보겠다고 한다. 동네 구멍가게 살림도 아니고, 그래도 아직은 집권여당인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특히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한 수사가 ‘그냥 증발하는 것’임은 이 법안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권 조정 이후로 경찰의 수사가 적체되어 힘없는 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검수완박까지 되고 나면 수사 현장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것으로 돌아온다.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에 지금은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당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강경파 정치인들의 목소리만 남은 당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 비상식적인 법안 발의에 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서명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안건조정위원회에 대비해 최근 사보임했던 민주당 출신 양향자 의원이 법안 반대 의견을 밝히자,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광경까지 벌어졌다. ‘위장 무소속’이 되어 양 의원 대신 투입돼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려는 포석이다. 이런 식으로 ‘의정농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일을 하고서도 6월 지방선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권교체기에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상식에 반하는 것임이 분명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빠 찬스’ 논란이 불거지는데도 “위법행위가 전혀 없기에 조국 전 장관과는 사례가 다르다”며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당장 그러하다. 과거 조 전 장관의 문제를 ‘사태’로 비화시켰던 출발도 ‘위법은 없었다’며 민심과 맞서면서부터였다. 경북대병원의 부원장-원장 재직 당시 두 자녀의 의대 편입학과 아들의 병무용 진단서 발급이 있었던 사실만으로도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서 이미 내려진 결론이다. 그 앞에서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윤 당선인의 모습은 조국 사태 때 문재인 대통령이 취했던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 들어 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尹에서 더 이상 협치와 통합이란 말 안 나와

윤 당선인은 국민이 선택한 정권교체 열망에 부응하는 모습을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강대강’의 오기만 보일 뿐, 이 암담한 무한 정쟁의 늪에서 나라를 구할 새로운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대선을 치르면서 줄곧 협치와 통합을 다짐해 왔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는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로 윤 당선인의 입에서는 더 이상 협치와 통합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초대 내각 인선에서는 윤 당선인의 오랜 지기와 선후배와 복심들이라는 개인적 인연은 많지만, 탕평과 통합의 의미를 담은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40년 지기’라는 정호영 후보자 말고도 ‘용산 시대’ 개막을 주도하고 있는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고등학교 1년 선배다. 그리고 권영세 통일부, 박진 외교부, 원희룡 국토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서울대 법대 출신이 4명이나 차지했다.

반면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추천한 인물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시작도 하기 전에 공동정부가 파기된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윤 당선인의 주변에서 보이는 인물들은 대부분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물론 문제 될 전력이 없고 능력이 있다면 과거 정부 사람들이라고 배제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했던 보수정부의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 앉는 정부로 국민에게 비춰지는 현실은 윤 당선인이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다. 탕평도 없고 새로움도 없는 내각의 식상함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국민이 원했던 것은 낡은 진영 대결에 갇힌 정치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새로움이 담긴 정권교체였지, 물러났던 지난 시절의 사람들이 그대로 부활해 과거로 돌아가는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대선이 끝난 이후로 구정권 세력과 신정권 세력이 마치 민심 잃기 경쟁이라도 하는 모습이다. 누가 더 잘못하는지를 경쟁적으로 국민 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사방에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검수완박 법안을 의석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모습에서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겪었던 여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진영정치를 심판하겠다고 했으면서, 역시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 함께 가고, 시작부터 내로남불 소리를 듣는 윤석열 당선인 쪽의 모습도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왜 우리 정치는 대선 때도, 끝나고 나서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국민 노릇을 하기가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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