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 유가, 금리 3高에 곡소리 나는 민생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5 10: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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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위기 속 우크라 사태까지…“장보기 무섭다”
윤석열 정부, 추경과 금리 인상 압박 사이 딜레마

“하…안 나가네.” 4월18일 저녁 서울 노원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간편식 죽 제품 판매원이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햄·어묵, 과자 등 다른 가공식품도 찬밥신세이긴 마찬가지였다. “쫄깃쫄깃한 어묵 가져가세요”라고 외치던 판매원은 손님이 좀처럼 들지 않자 호객을 중단했다. 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대폭 할인해 파는 알뜰코너는 깨끗이 비어있었다. 농·축·수산물 매대를 찾은 소비자들은 연신 상품을 들었다 놨다 했다. 부쩍 오른 가격을 확인하고 살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기자도 4인 가족의 밥상을 위해 오랜만에 장보기에 나섰다. 최저가 상품 위주로 쌀 10kg(3만4900원), 간장 1.8L 1통(1만4880원), 칠레산 포도 1.36kg(1만980원), 감자 1kg 1봉(6980원), 오이 5개 들이 1봉(4980원), 우유 1.5L 1통(4390원), 맛살 3개 묶음(5480원), 양배추 1통(3450원), 양파 1.8kg 1망(3180원), 요거트 4개 묶음(2980원), 비빔면 4개 묶음(2980원), 부추 1봉(2680원), 콩나물 1봉(2600원), 팽이버섯 1봉(1280원) 등만 샀는데도 벌써 10만원에 가까워졌다. 냉동식품과 과자, 생필품 등을 추가로 더 사니 20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대형마트에서 산 10만원 어치 상품ⓒ시사저널 오종탁
대형마트에서 산 10만원 어치 상품ⓒ시사저널 오종탁

장을 다 보고 푸드코트에 들러 눈으로 메뉴를 훑었다. 대부분 1만원을 훌쩍 웃돌았다. 가격이 부담스러워 순댓국·1인 수육 세트(1만2500원)에 공깃밥(1000원)을 추가해 두 명이 나눠 먹었다. 든든하지 않은 배처럼 헛헛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 주유 경고등이 야속하게 불을 밝혔다. 근처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L당 2100원에 육박했다. 25일 통장을 스칠 월급과 대출이자, 공과금 등 줄줄이 빠져나갈 돈이 뇌리에 스쳤다. 

4월1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4월1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코로나19 전보다 31% 오른 밥상물가 

그야말로 미친 물가다. 시사저널이 농·축산물 무역거래 플랫폼 트릿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월초 기준 한국의 밥상물가는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해 30% 넘게 비싸졌다. 해당 물가지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민영양통계(KHIDI)상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한 음식인 김치·흰쌀밥·달걀부침·된장국을 바탕으로 산출됐다. 이 음식의 주재료인 쌀·마늘·양파·감자·건고추·흰콩·배추의 가격을 지수화했다. 

2019년 초의 지수를 100으로 뒀을 때, 올해 3월초의 밥상물가지수는 131.3으로 31.3% 상승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선언한 2020년 1월말(109.3)보다는 20.1% 올랐다. 이상기후로 인한 국내 농업 생산량 감소, 전반적인 농산물 생산비 증가 등이 물가 상승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트릿지는 분석했다. 식재료 공급은 차질을 빚는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집밥’ 수요는 늘면서 밥상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천진우 트릿지 연구원은 “미국, 브라질 등 농산물 시장 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특정 상품의 공급 감소로 가격이 오르더라도 대체품이 있어 가격 안정화를 꾀할 여지가 많으나, 한국 밥상 재료는 주로 국산에 의존하기에 대체품을 찾기 쉽지 않아 가격 억제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관계당국이 밥상물가를 안정시키려 애쓰는 와중에 추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잽이 아닌 카운터펀치 세례였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압력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러시아가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훼손은 원유와 곡물 등 주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물가 상승 충격을 안겼다. 

직격탄은 고스란히 서민이 맞는다. 이날 마트에서 노르웨이산 연어를 한참 살펴보다가 결국 구매하지 않고 발길을 돌린 허인애씨(여·55)는 “평소 연어를 즐겨 먹어 마트에 온 김에 사려고 했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그냥 내려놨다”며 국내산 가자미를 대신 쇼핑카트에 담았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는 3월에 노르웨이산 연어 판매가를 7.7~26.4% 올렸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주로 러시아 상공을 경유하는 항공편으로 들여온다. 러시아 영공 폐쇄로 우회 항로를 이용하다 보니 운임비가 증가하면서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수입소고기 코너에서 국거리를 고르던 이형선씨(여·67)는 “육류고, 채소고, 수산물이고 다 비싸 요즘은 마트에 두 번 올 것 한 번 오며 버티고 있다”면서 “휴지, 비누, 세제 같은 생활용품과 소금, 설탕, 꿀도 나중에 더 많이 오를 것 같아 미리 충분히 사뒀다”고 전했다. 

통계청이 4월5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3%대로 올라선 뒤 11월(3.8%), 12월(3.7%), 올 1월(3.6%), 2월(3.7%)까지 5개월간 3%대를 유지하다가 3월에 4%를 넘어섰다. 물가가 4%대 상승률을 보인 건 2011년 12월(4.2%) 이후 10년3개월 만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3월의 물가 오름세 확대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석유류 상승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3월 석유류(31.2%)는 휘발유(27.4%), 경유(37.9%), 자동차용 LPG(20.4%)가 일제히 오르면서 전월(19.4%)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석유류 상승률은 지난해 11월(35.5%)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30%대로 올라섰다. 지난해 11월 이전에 석유류 상승률이 30%대를 웃돈 것은 2008년 7월(35.5%)이 마지막이다. 1.2톤 트럭으로 화물운송업을 하는 최성주씨(남·62)는 “유가가 급등하기 전 경유를 가득 주유하면 6만원대였지만, 이제 10만원대로 올랐다”며 “L당 1900원을 넘어 휘발유 값을 따라잡으려 한다. 차를 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기름값 때문에 차 몰기조차 부담”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언론에 많이 보도된 주유소 기름값이 가장 많이 오른 것 같지만, (물가 조사 대상) 전 품목 중 가장 많이 오른 열무(58.5%)를 비롯해 시금치, 부추, 소금, 수입소고기 등도 10위 안에 든다. 즉 전방위적으로 서민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면서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라고 일컬어지는 생활물가 상승률은 5.0%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훨씬 넘어선다. 이렇게 되면 식료품, 주거 등 생존에 필수적인 소비를 제외한 외식, 문화 등 비필수적 소비는 줄일 수밖에 없기에 소비의 질이 악화한다”고 우려했다. 

4월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식당가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4월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식당가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외식 소비자물가가 0.6~1.2%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3월 서울 지역의 칼국수 평균 가격은 8113원으로 1년 전보다 8.7% 올랐다. 서울 지역 칼국수 가격이 8000원을 넘은 건 처음이다. 또 서울 지역 냉면 가격은 9962원으로 1년 전보다 9.7%, 짜장면은 5846원으로 9.4% 각각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국제 물류난으로 외식 물가는 당분간 더 뛸 전망이다.  

물가 외에 기준금리 인상 러시도 서민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4월14일 기존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1.50%로 0.25%포인트 올렸다. 앞서 금통위는 2020년 3월16일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내리는 이른바 ‘빅 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28일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나 금리를 빠르게 인하했다. 이후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지난해 8월26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작을 알렸다.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4월까지 약 8개월 사이 0.25%포인트씩 네 차례, 총 1.00%포인트 상승했다. 경기 하강 우려에도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누르기 위해서다. 한은이 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연말쯤엔 기준금리가 2.0% 안팎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본격화된 금리 인상 러시는 대출자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소비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재기를 꿈꾸는 자영업자들에게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가 현실화했다. 전방위적 서민경제 위기 국면에서 세간의 시선은 새 정부로 집중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서 경제팀을 이끌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서민 생활물가와 민생 안정”이라고 못 박았다. 미증유의 상황에서 당장 ‘물가 안정’과 ‘민생 안정’(경기 부양)이란 두 개념부터 상충하는 모습이다. 고물가로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야 하는 딜레마에 우려의 목소리가 따라붙고 있다. 추 후보자는 “추경을 하기는 해야 한다. 물가 때문에 추경을 스톱(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어떤 조합을 가지고 (물가 상승) 우려를 해소하면서 추경의 목적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지키려다 국가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만큼 물가 안정에 확실히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4월14일 열린 한국경제학회 주최 포럼에서 “지금은 물가 상승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고, 민간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유류세나 상품 관세 인하 등 정책을 지속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물가 안정을 위해 시중 유동성 회수가 중요한 만큼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후보자였던 4월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경기 속도가 크게 둔화하면 그때그때 조율하겠지만, 물가 상승 심리(기대인플레이션)가 올라가고 있어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신호)을 줘야 한다”며 당분간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정부의 추경이 물가를 자극할 우려에 대해선 “규모가 얼마가 될지 아직 정부로부터 듣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만일 그 총량이 굉장히 커서 거시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당연히 정책당국(기재부)과 얘기해 물가 영향을 어떻게 조절할지 한은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IMF,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 3.1%→4.0%로 대폭 올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대폭 올렸다. IMF는 4월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0%로 봤다. 지난달 연례협의 당시(3.1%)보다 0.9%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등 요인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간 기준으로 4%대를 기록한 것은 2011년(4.0%) 이후 처음이다. 한국의 수치는 미국(7.7%), 영국(7.4%), 캐나다(5.6%), 독일(5.5%), 프랑스(4.1%)보다 낮고, 일본(1.0%)에 비해선 높다. 

IMF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로, 1월 수정 보고서 및 3월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발표된 3.0%보다 0.5%포인트 내렸다. 다른 기관 전망치와 비교하면 정부(3.1%), 한국은행(3.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0%), 투자은행(IB) 평균(3.0%), 피치(2.7%), 무디스(2.7%)보다 낮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2.5%)와 같다. 

한편 IMF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각국의 인플레이션이 이전 예측보다 더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인플레이션은 선진국의 경우 5.7%, 신흥시장과 개도국은 8.7%로 각각 예상했는데, 이는 직전 전망치보다 각각 1.8%포인트, 2.8%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IMF는 “인플레이션 상승은 중앙은행의 물가 억제와 성장 보호 사이의 균형 잡기를 복잡하게 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으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압박이 가해지면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전쟁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 악화, 원자재 가격 추가 상승이 높은 인플레와 임금 상승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빠른 대응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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