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물가 비상·금리 인상에 글로벌 경제도 ‘패닉’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5 12: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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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아시아 등 기록적인 물가 상승에 고민
미국 FOMC 행보에 전 세계 이목 집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글로벌 경제를 본격적으로 강타하고 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앞두고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공급 부문이 수요 증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터졌다. 거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발 변수마저 덮치면서 글로벌 경제에 본격적으로 충격을 주는 상황이 됐다.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국인 러시아가 전쟁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세계 식량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신음하면서 에너지와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각국이 겪는 경제적 고통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이 급등하는 물가다. 미국 노동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5% 올랐다고 4월12일 발표했다. 1981년 12월 이후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취합한 전문가 전망치(8.4%)보다 높다. 미국 경제정책의 핵심이 물가를 잡는 데 맞춰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소비가 강세를 보여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이 정도 물가상승률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긴축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유럽 주요국들도 수십 년 만에 기록적인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19개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5%를 기록했다. 1999년 1월 유로존이 생긴 이래 가장 높은 월간 물가상승률이다. 가장 탄탄한 실물경제로 유로존의 기둥 노릇을 해온 독일은 7.3%로, 1981년 11월 7.3%(당시엔 서독) 이래 40여 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는 스페인의 3월 물가상승률 잠정치는 9.8%로, 1985년 5월 이후 약 37년 만에 최고치다. 2020년 1월31일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의 경우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0%를 기록했다.

신흥국이라고 나을 게 없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같은 달 인도는 6.95%, 브라질은 11.3%를 각각 기록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50%를 넘었다. 환율 위기 등과 겹쳐 그야말로 ‘초(超)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AP 연합
최근 치솟는 물가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원자재난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입회장에서 업무를 논의하는 트레이더들ⓒAP 연합

아르헨티나·터키 물가상승률 50% 초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FT는 4월17일 ‘브루킹스-FT 추적지수(TIGER: Tracking Indexes for the Global Economic Recovery)’를 근거로 올해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과 전쟁으로 인한 경기회복 둔화라는 쌍끌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다수의 국가가 물가 상승 압력과 생산 증가세 둔화, 경기회복 심리의 하락을 동시에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TIGER은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와 FT가 공동 개발한 지수로, 글로벌 경제의 회복 상황을 살피는 데 사용된다. 금융시장과 투자자 신뢰도, 실물 경제지수 등을 세계경제와 개별 국가의 경제지수와 비교해 산출한다. FT는 “지난해 말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성장 모멘텀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경기 심리와 금융시장도 최고점에 이른 뒤 하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TIGER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하향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중반 이후 상승 국면이었지만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팬데믹에서 벗어나 되살아나던 세계경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이처럼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앞다퉈 ‘빅 스텝’에 나서고 있다. 빅 스텝은 기준금리를 통상적인 인상 폭보다 더 크게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것은 ‘베이비 스텝’이라고 한다. 빅 스텝은 자금의 시중 공급을 막아 물가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출받기가 그만큼 더 힘들어지고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유동성을 줄여 주식시장이 얼어붙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자들도 은행에 자금을 넣어두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투자를 유보하게 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 앞다퉈 ‘빅 스텝’ 나서

캐나다 중앙은행은 4월13일 기준금리를 1.0%로 0.5%포인트 올렸다. 캐나다 중앙은행의 빅 스텝은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이다. 게다가 티프 매클럼 총재는 이날 “내수를 완화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2%로 유지하려면 기준금리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해 추가 인상까지 예고했다. 매클럼 총재는 기준금리가 2~3%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는 경제활동을 둔화시키지도, 촉진하지도 않는 ‘중립 수준’의 금리로 평가된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빅 스텝에 나선 핵심 배경이 물가 급등이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로 30년 만의 최고치인 데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도 애초 목표치의 두 배가 넘는 5.3%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은행 차원에서 인플레이션에 초강력 통화긴축으로 대처할 필요가 큰 상황이다.

주목되는 건 미국의 행보다.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5월 정례회의에서 빅 스텝을 결정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달 ‘제로(0) 금리’에서 연 0.25~0.5%로 금리를 올렸는데, 올해 안에 중립 금리인 연 2.25~2.5%에 이르려면 두 차례의 빅 스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여섯 차례 남은 FOMC 정례회의에서 매번 0.25%포인트씩 올려도 연말 금리가 1.75~2%에 그치기 때문에 빅 스텝이 필요하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CNBC방송에서 “5·6·7월 FOMC 회의에서 연달아 기준금리를 0.5%포인트씩 인상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5월 FOMC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관심은 앞으로 몇 차례 더, 언제 빅 스텝을 추가로 밟을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곧 새 총재를 맞게 될 한국은행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 것인가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주유소나 마트에서 느끼는 물가 인상이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게 아니라 포스트 팬데믹과 전쟁 때문에 세계경제가 받는 타격의 일부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전쟁은 해법을 찾기 쉽지 않고, 포스트 팬데믹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여전히 안갯속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서 미로를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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