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파고드는 ‘푸틴 공포’ “우리도 우크라이나처럼 되지 말란 법 있나”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4 14: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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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해야” 국민여론 급상승

북유럽 국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논의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세계 안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을 표방해 왔던 양국의 달라진 입장을 지금 국제사회는 크게 주목하고 있다.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발트해 지역 안보환경을 변화시켰고 위기의식을 느낀 두 나라는 나토 동시 가입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모양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향후 푸틴 정권의 침공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물리적 환경에 놓여있다. 핀란드는 지난 세기 러시아와 두 차례 큰 전쟁을 치렀고, 러시아와는 1340km에 달하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전쟁 만행은 핀란드 국민의 기존 반러 정서에 더해 공포감을 크게 증폭시켰다. 4월13일 의회에 제출된 안보정책보고서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핀란드의 전신인 핀란드대공국(1809~1917)은 러시아제국의 일부였을 만큼 핀란드와 러시아 양국 간 갈등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벨라루스 역사저널 ‘나샤 히스토리아’는 이렇게 당시의 역사를 복기하고 있다. ‘1939년의 핀란드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 악명 높다고 알려진 겨울전쟁이 그것이다. 스탈린은 핀란드에 일부 영토를 양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핀란드가 거부하자 ‘먼저 공격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전쟁을 개시했다. 3개월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핀란드는 2만6662명의 인명피해를 겪었고, 국토의 약 11%를 소련(러시아)에 빼앗겼다. 이후 ‘영토 수복’의 기치를 내걸었던 ‘계속(繼續)전쟁(Continuation War)’에서도 1941년 6월25일 발발 이래 6만여 명이 전사했다.’

ⓒEPA 연합
지난 4월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할 당시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왼쪽)와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EPA 연합

핀란드, 나토 가입 찬성률 68%까지 올라

핀란드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이 급변하고 있고, 정치권도 이에 반응하고 있다. 국영방송 YLE는 나토 가입에 대한 지지율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수십 년간 25%에 머물렀는데, 2월말에는 53%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고 3월 중순에는 62%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MTV의 4월 여론조사에서는 찬성률이 68%에 이르고 있다. 나토 가입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헬싱키대학의 이로 사르카 박사도 이런 속도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는 YLE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국민의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나토 가입 담론에서 주권 상실 등 부정적인 면이 주로 논의된 것과 반대로 지금은 긍정적인 면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정치인과 연구자들은 나토 가입에 따른 리스크와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에 대해 신중히 평가하고 검토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좌파연합당 등 좌파진영에서는 미국 외교정책의 불확실성과 이에 대한 불신 등으로 나토 가입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스웨덴과의 공동 가입에 크게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년간 평화를 유지해온 중립국 스웨덴도 사회 분위기가 크게 변하고 있다. 400년간 핀란드와 같은 국가이기도 했던 스웨덴은 러시아의 침공에 함께 대비하기 위한 핀란드의 나토 동시 가입 제안에 정부 차원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협력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는 스웨덴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4월11일 발표된 스웨덴 여론조사기관 노뷰스(Novus)에 따르면 핀란드 가입 시 스웨덴도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63%인 반면, 가입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18%에 그쳤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나토 가입 찬성률이 불과 30~35%였다.

스웨덴은 1700년 러시아와 ‘대북방 전쟁’을 치르기도 하는 등 냉전시기를 포함해 수백 년간 러시아를 주요 적국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독일에 전쟁무기 제작에 필요한 철광석을 팔고 자국 영토 사용을 허용하는 등 실리적 외교로 세계대전에서도 전쟁의 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둔 열띤 나토 가입 논쟁이 지금 불붙고 있다.

ⓒEPA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이 2019년 8월21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 연합

스웨덴 “좀 더 신중해야”…핀란드와 온도 차

사민당 소속 국회의원(1957~91)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 에버트 스벤슨(96)은 스웨덴 일간지 ‘예테보리 포스텐(Göteborgs-Posten)’의 사설을 통해 “푸틴의 만행으로 대중이 겁에 질리자 스웨덴은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침략당할 것처럼 믿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은 훨씬 더 나빴으나 우리는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정부가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신중론을 폈다.

이에 맞서 나토 가입을 옹호하는 ‘리버럴 뉴스 에이전시’의 요아킴 브로만 편집장은 사설을 통해 “가혹한 현실이 나토 가입에 대한 저항을 무너지게 했다”며 반박했다. 그는 중립성이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표방했지만 나치독일의 침입을 받았던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경우와 함께 현 우크라이나 상황을 예로 들며 “러시아가 우리를 침범하지 않을 것”과 “침공이 있다면 주변국들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좌파당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불충분한 역사적 지식과 오해를 반(反)나토 주장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스웨덴의 주요 정당들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집권해온 사민당은 “안보정책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국의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지만, 최근 친나토 입장으로 바뀌었다. 중장년 세대는 미국·소련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시했던 좌파 성향으로 반나토 입장이 강했던 반면, 젊은 세대는 친나토로 현실적인 면이 강하다. 스웨덴민주당도 비슷한 상황인데, 이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국영방송 SVT가 2020년 12월 주요 8개 정당의 나토 정책을 소개한 보도에 따르면, 나토 가입에 찬성하는 정당은 중도당·중앙당·기민당·리버럴당 등 총 4개다. 찬성 근거로는 나토가 유일한 안보협력체제로 발트해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한다는 점, 스웨덴은 외부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 이미 스웨덴과 나토 간 긴밀한 협력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녹색당은 역할을 긴장 완화와 대화 촉진에의 기여라고 보고 좌파당과 함께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1955년 영세중립을 헌법에 명시한 오스트리아만 유일하게 유럽연합에서 나토 비회원국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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