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설’로 허가받아 창고로 사용… 이런 토지거래허가제 왜 필요한가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7 07:3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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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 강남3구 3년간 거래 전수조사…“개발 심리만 더 자극할 것”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이뤄진 거래 중 규제 위반 소지가 의심되는 사례가 더러 발견됐다. 복지시설로 거래 허가를 받아놓고 접근조차 불가능하게 막아두거나, ‘자기 경영’ 원칙을 어기고 임대를 준 경우 등이다. 땅값을 제한하기 위해 거래 목적을 까다롭게 했는데도 구멍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이에 토지거래허가구역 무용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시사저널은 ‘땅값불패’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중 2019년 5월부터 올 5월초까지 최근 3년 동안 거래가 허가된 지역을 전수조사해 봤다. 부동산거래신고법에 따라 △주거용 △농업·축산업·임업용 △복지편익시설용으로 매매를 허가받은 땅은 2년 안에 그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목적 의무 이행이 늦어지면 강제금이 부과된다.

기자는 5월11일 낮에 조사 대상 토지거래허가구역 중 서초구 염곡동의 한 필지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해 3월 복지편익시설용으로 거래 허가가 떨어진 지역이다. 그런데 땅 가장자리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 걸 빼면 허허벌판이었다. 흙과 잡초가 무성한 채로 관리 상태가 허술해 보였다. 주변은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할 수 없었다.

5월11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주변의 토지거래허가지역 전경ⓒ시사저널 임준선

잡초에 둘러싸인 ‘복지시설’…“행정상 착오”

인근 주민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몇 번 보긴 했지만 꽤 오랫동안 이 상태로 유지돼 왔다”며 “복지편익시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고 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거래 허가 이후 ‘창고’로 용도변경이 이뤄졌다. 원래는 정미소로 쓰던 곳이었다.

서울시 토지관리과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말하는 복지편익시설은 ‘국토교통부 토지거래업무처리규정’에 따라 각종 상가 등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건축법상 창고는 근린생활시설이 아니라 ‘창고시설’로 분류된다. 거래 허가 목적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목적 의무 이행기간이 아직 남았다 해도 이미 1년 넘게 창고로 쓰면서 규정 외 사익을 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무관청인 서초구청은 “행정상 착오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구청 부동산정보과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근린생활시설로 거래 허가를 받았다”며 “목적 이행기간 내에 창고가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변경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이어 “이행기간을 어기면 강제금도 부과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자는 또 강남구 율현동의 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찾았다. 이곳의 건물은 2019년 5월 복지편익시설용으로 거래 허가를 받았고, 현재 건물 전체가 카센터로 사용 중이다. 카센터는 근린생활시설에 포함되기 때문에 복지편익시설로 분류된다. 문제는 카센터의 운영 주체가 새 건물주가 아니란 점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투기 방지라는 목적하에 실수요자만 매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목적 의무 이행기간인 2년 동안 ‘자기 거주’ 또는 ‘자기 경영’ 원칙이 적용된다. 즉 매입 목적을 주거용으로 신고한 사람은 실거주를 해야 하고, 복지편익시설용으로 신고한 사람은 직접 운영해야 한다. 다만 일부 임대는 가능하다.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주로 임대수익 확보를 목적으로 매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임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통임대를 허락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율현동 카센터 건물의 전(前) 주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팔기 전부터 계속 카센터에 임대를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입자(새 건물주)도 카센터의 임차권을 끼고 건물을 산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입 후 2년 동안 직접 운영해야 함에도 카센터와의 임대차 계약을 깨지 않은 것이다. 실제 네이버 지도로 살펴본 결과, 해당 건물은 매매 이전인 2018년 말부터 줄곧 카센터로 이용돼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5월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염곡동의 한 토지거래제한구역. ‘복지편익시설’로 거래 허가를 받았는데 창고로 운영 되고 있다.ⓒ시사저널 공성윤

“중개업자가 서류 다 챙겨주니 거래 쉽다”

주무관청인 강남구청 부동산정보과 관계자는 “이미 거래 허가(2019년 5월) 이후 목적 의무 이행기간인 2년이 지났기 때문에 강제 처분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목적 의무 이행기간 동안 실사를 나간 적은 없나’란 질문에 관계자는 “답할 의무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구청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부당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이상 실사를 나가게 돼 있다.

일각에선 부당 사례를 일일이 다 파악하긴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단 강남구에서만 올해 들어 5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총 175건이 거래 허가를 받았다. 지난 한 해에는 918건에 달했다. 더군다나 주거용으로 허가받은 지역은 규제망을 피하기가 더욱 쉽다. 집 문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매수자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구 토지거래허가구역의 D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주소 이전만 해놓고 집을 비워두는 방법도 있다”고 귀띔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초구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민 A씨는 이런 말도 했다. “예전에는 투기를 잡겠다는 분위기가 강했고 정보 공유도 힘들어 집을 사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개업자들이 필요 서류를 다 챙겨주기 때문에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매입할 수 있다.” A씨는 이어 “토지거래허가구역 중에는 나대지(건축물이 없는 빈 땅)가 많은데 주거 목적으로 매입해 집을 지으면 용도변경이 되니 땅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투기 방지를 위해 설정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오히려 땅값 상승을 부추기는 셈이다. 게다가 주변 지역에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피한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는 올 4월 64억원(전용 129㎡)에 거래됐다. 올 1월 거래가가 61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불과 3개월 만에 3억원이 뛰었다. 강남구 도곡동의 도곡렉슬 아파트(전용 176㎡)의 거래가는 2020년 6월 43억원, 올 4월 58억원을 기록했다. 약 2년 사이 15억원이 올랐다. 2020년 6월 송파구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된 잠실동은 같은 기간 아파트 값이 평균 24.8% 올랐다.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의 한계를 지적한다. 최지유 하나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같은 강력한 투기 수요 제한책이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더 자극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거래 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무상거래인 증여를 촉발시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는 실수요 시장이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거래 제한 영향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4월21일 압구정, 여의도, 목동, 성수동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하며 제도 유지의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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