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일대 ‘집회 메카’ 되나…선진국 사례 보니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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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인근 라파예트공원 대표적인 집회·시위 장소
英총리 관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 해마다 대규모 시위
지난 3월 13일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서 진행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활동가들이 '침묵의 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3일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서 활동가들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서울 용산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집회·시위를 허용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머무는 '관저'와 공적 업무를 보는 '집무실'을 구분하면서, 앞서 청와대 인근 집회·시위를 제한해온 것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향후 용산 일대가 집회·시위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민 소통'을 앞세워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새 정부의 취지와 맞아떨어진 상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은 앞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를 근거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낸 집회 신고에 대해 불허 처분했다. 해당 법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데, 집무실 또한  대통령 관저에 포함된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관저의 사전적 정의는 '정부에서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이라며 집무실과 구분짓고 집무실 100m 이내 구간에서의 행진을 허용했다. 

청와대와 100미터 거리인 사랑채 앞 분수대 또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던 집회·시위가 용산 일대로 몰리는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을 향해 목소리를 내면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집회·시위의 성격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통령 취임 첫날 대통령 집무실 인근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일대에서 녹색연합, 환경정의 등 시민 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던 경복궁역 등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지난 6일부터는 삼각지역으로 시위 장소를 옮겨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며 내세운 명분은 '국민 소통'이었다. 지난 10일 취임식에서도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간다는 의지를 강조하고자 객석과 더 가까운 돌출무대에서 취임선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회·시위와 관련해서는 기존 청와대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청와대 이전 TF 팀장)은 앞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그분(시위자)들이 적절히 의사표시를 할 공간을 검토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지난해 7월 14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코로나19 봉쇄 해제 일정 연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지난해 7월 14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코로나19 봉쇄 해제 일정 연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선진국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 백악관 북쪽에 위치한 라파예트공원은 대표적인 집회·시위 장소로 쓰인다. 백악관 울타리 앞에서도 시위 참여자들이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최근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진행됐다. 2020년에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들기도 했다. 사전신청이 필수이지만 불허 처분이 내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주변 시위를 제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철회되기도 했다. 

영국 총리 관저가 위치한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도 시위대로 둘러싸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런던 시내 중심부 트래펄가 광장에서 빅벤으로 가는 큰 도로변에 위치한 10번지는 3층에 총리 관저가 있고, 2층과 1층에 각각 국무회의장과 비서실장실 등이 있다. 2015년 시리아 폭격에 반대하는 시민 50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2017년에도 브렉시트 개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해 코로나19 봉쇄 해제 일정 연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독일 총리의 집무실인 연방총리청은 슈프레 강변에 있는 8층짜리 건물이다. 독일의 시위대는 이 건물 바로 앞까지도 진입할 수 있다. 지난해 시위대 수천 명이 코로나19 방역조처에 반대하며 베를린 도심을 가로질러 연방총리청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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