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反지성주의’ 내걸고 내각 ‘개문발차’한 결정적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3 14: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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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반쪽 내각, 거대 야당 비협조 속 개문발차
尹, 지방선거 압승해야 사면초가 정국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
‘허니문 효과’ 대신 ‘대선 2라운드 대결 구도’ 전략적으로 택해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지금 세 가지가 없다. 국무총리와 지지율, 그리고 거대 야당과의 허니문이 없다. 제20대 대통령으로 5월10일 취임한 윤 대통령이 현재 갖지 못한 정치적 자산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아쉬운 세 가지이며 반드시 회복해야 할 세 가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내각은 반쪽에 불과하다. 특히 집권 초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유권자들의 기대감, 즉 ‘허니문 효과’는 윤 대통령이 지금의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하고 향후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무형의 가치다. 

반면 윤 대통령이 대선 승리 이후 쌓은 정치적 자산도 세 가지 있다. 이는 모두 당내 경쟁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먼저 대선 기간 경쟁했던 유승민·홍준표 전 의원을 중앙정치에서 사실상 떼어냈다. 경기지사에 출마한 유승민 전 의원은 윤심(尹心)을 내세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출신 김은혜 후보를 내세워 사실상 주저앉혔다. 홍 전 의원은 우여곡절 끝에 대구시장 후보가 됐지만 여의도 정치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히 소멸됐다.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를 수 있고, 임기 내내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들을 중앙정치 무대 뒤편으로 밀어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10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유승민·홍준표·안철수 밀어내고 무대 전면에 선 尹

윤 대통령은 공동정부를 약속한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의 입지도 최소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새 정부 구성에서 안 전 위원장에게 약속했던 ‘절반의 지분’을 실제 내어줘야 했다면 윤 대통령의 당내 입지와 영향력은 상당히 축소될 수 있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안 전 위원장과 내각 배분 문제를 두고 결별 직전까지 가는 극심한 갈등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안 전 위원장의 사실상 ‘백기 투항’을 받아냈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기 싸움을 벌였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서열 정리도 확실히 끝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인 권성동 의원을 원내대표로 내보내 당선시켰다. 이제 당의 구심점 역할을 이 대표가 아닌 권 원내대표가 하게 됐다. ‘윤심으로 헤쳐모여’를 본격화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6월 지방선거를 이 대표의 세대포위론이 아닌 ‘윤심’과 ‘정권안정론’ 등을 앞세워 치르는 것도 반갑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주창했던 세대포위론 등의 전략은 아슬아슬하게 갈린 대선 결과로 인해 상당 부분 영향력이 반감됐다. 

이렇듯 윤 대통령은 지난 두 달간 당내 경쟁자들을 빠르게 정리해 냈다. 얼핏 보면 쉬운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짧은 기간에 정치적으로 적잖은 성과를 냈다. 정치 신인이지만 무서운 정무적·전략적 실력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 대통령은 이미 정치 9단이다. 

그런데 국정 운영에서는 영 딴판이다. 여기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인수위 기간 승부수로 띄운 결정적 카드 두 가지인 ‘용산 시대’ 개막과 ‘한덕수 협치’ 인선은 모두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초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국정 수행 지지도보다도 낮은 지지율을 보여 권력 누수를 뜻하는 ‘레임덕(lame duck)’에 빗대 ‘취임덕’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선거 정치에서 힘을 냈던 ‘윤석열 정치’는 정작 통치의 영역에 발을 들이자 맥을 못 추고 있다. 

왜 윤 대통령의 정치력은 국정 운영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걸까. 여소야대라는 산을 윤 대통령은 어떻게 넘으려고 하는 걸까. 윤 대통령의 다음 승부수는 무엇일까. ‘반(反)지성주의 극복’이라는 취임사 열쇳말은 과연 무엇을 상징할까. 대체 지난 두 달간 무슨 일이 있었고, 물밑에서는 어떤 전략 아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다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시사저널이 살펴봤다. 

용산 국방부 청사ⓒ인수위사진기자단
용산 국방부 청사ⓒ인수위사진기자단

취임사 전면에 ‘반지성주의 극복’ 내세운 뜻

대통령 취임사에는 새 정부 5년의 국정 목표와 방향, 그리고 원칙이 담긴다. 윤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식에서 3450자의 취임사를 통해 그 지향점을 분명히 밝혔다. ‘자유’와 ‘도약적 성장’을 국정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특히 ‘자유’는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재 아래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양극화와 사회 갈등은 빠른 성장을 이루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시대적 요구로 평가받는 ‘국민 통합’과 ‘협치’ ‘소통’ 등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대선후보 당시에는 강조하던 가치들이다. 대신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넣었다는 ‘반지성주의’라는 표현은 사실상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들을 겨냥했다는 분석을 낳았다. 민주당은 “야당과의 협치보다는 대결, 국민 통합과 화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선택한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다”는 논평을 내놨다. 보수언론에서도 통합과 협치 정신이 빠진 것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자유’와 ‘도약적 성장’ 선언, 협치와 소통에 달렸다”, 중앙일보는 “자유’ 강조한 윤 대통령, 통합도 잊지 말아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각각 냈다.

대통령 취임사는 한 글자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다. 그 정부의 모든 역량이 담긴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대국민 메시지다. 당연히 국민 수용성이 고려된다. 야당은 물론 언론과 국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다각도로 파악하고 면밀한 검토를 거친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왜’가 된다. 왜 윤 대통령은 ‘통합’과 ‘협치’ ‘소통’ 대신 ‘반지성주의’를 앞세웠을까. 윤 대통령은 5월11일 논란이 되는 ‘통합 없는 취임사’에 대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정치 과정 자체가 국민 통합의 과정”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다소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고도의 전략적·정무적 판단이 깔려있다. 가깝게는 6월 지방선거를 치를 선거 전략이 담겨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어떻게 여소야대 정국을 넘어 여의도 정치를 새롭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전략적 방향이 녹아있다. 무엇보다 이번 취임사에는 현재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가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깔려있다고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의원들이 4월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를 위한 검찰청법 개정안 표결 처리에 대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여소야대 정국 돌파할 새로운 국정동력 필요

인수위 사정에 밝은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 취임사에는 윤석열 정부가 현재 어디에 서있는지부터 시작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갈 것인가가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현 정국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계산 아래 작성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인수위 두 달을 거치면서 현재의 여소야대 정국을 지금의 국정 동력만으로는 돌파해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대신 새 정부 출범 후 최단 기간인 22일 만에 치러지는 6·1 지방선거를 반드시 ‘압승’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해야 하며, 그때부터 실질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일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확보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했다는 후문이다. 5월말 예정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고, 물가 안정 등 민생경제에 주력하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도 했다고 한다. 

즉 지방선거 압승으로 ①단기적으로는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도 0.73%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은 정치적 약점을 극복하고 ②중장기적으로는 여소야대를 극복할 국정 동력을 확보하며 ③장기적으로는 2년 후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을 시도할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왜 윤 대통령이 당 안팎의 비판에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평가받는 경기와 충청에 윤심을 앞세운 후보들을 내보냈는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연출했는지가 설명된다.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이 새 정부에서의 협치와 통합보다는 야당과 각을 세워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동했다. 윤 대통령 측에는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한덕수 카드가 역효과가 나는 국면에서 탈출할 계기가 절실했다. ‘부모 찬스 내각’이란 비판을 받는 인사청문회도 큰 부담이었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이 검찰 기소-수사권 분리(검수완박) 법안을 추진했다. 이게 결정적 장면이자 결정적 반전의 순간이 됐다는 게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결정적 반전의 순간된 검수완박 중재안 파기

당초 국민의힘은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당 안팎에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저지’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사전에 윤 대통령 측과 충분한 물밑 조율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강경파의 논리가 치고 나온다. 지금 한 발 물러서고 양보하는 것보다는 검수완박을 막아내며 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에 훨씬 더 유리하고 효과적이라는 논리였다. 

그렇게 윤 대통령이 사실상 중재안 파기를 원한다는 뜻이 당에 전달된다. 윤 대통령은 당시 대변인을 통해 “일련의 과정을 국민들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잘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려’라는 말로 탐탁지 않은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한마디로 윤 대통령은 사면초가 상황에 빠져있었다. 용산 시대와 내각 인사 모두 국민에게 외면받고 있었다. 울고 싶은 상황이었는데, 마침 민주당이 검수완박 강행으로 뺨을 때려준 격이 됐다. 내부적으로 대선 2라운드의 대결 구도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논리가 우세해졌다. 그렇게 강경파들의 시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인수위 사정에 밝은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기왕 거대 야당과의 대립 전선이 검수완박으로 확실하게 쳐진 상황을 오히려 더 넓히고 키워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던 공식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전략이 이 순간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검수완박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키기 위한 ‘방탄 입법’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 관계자는 “어느 순간 전략과 기조가 확 바뀌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치고 나오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확실히 변했다는 게 감지됐다. 새 정부의 인사와 메시지, 전략 모두 바뀌었다. ‘사라진 허니문’을 역설적으로 동력 삼아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전략이 세워졌다”고 했다. 

 

“과학기술 지식인과 자유시민 그룹 부상할 것”

윤석열 정부의 임기는 5년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정치는 계속돼야 한다. 지방선거 너머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활동했던 보수 논객 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은 ‘피렌체의 식탁’ 기고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장 국장은 “통상 소수 여당이 다수 야당을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은 협치가 아니면 정계개편 정도”라면서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바로 시민사회의 지지 여론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수위 과정에서 나온 ‘민관합동기구’와 ‘플랫폼정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통령비서실은 대폭 축소한 반면, 대통령특보실과 민관합동위원회 기구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진영 지식인들과 자유시민 운동가들이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환경과 일반 자유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화운동가 중심의 적폐청산위원회를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았다면,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로 무장한 지식인 그룹과 자유시민 그룹을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설명이다. 

 

“지방 선거 후 언론개혁 나설 가능성도”

장 국장은 지방선거 이후 윤석열 정부가 언론 개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대부분의 보수진영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반지성주의 진원지로 방송을 지목한다”며 “각종 방송 시사 프로그램의 해당 진행자와 패널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싶다. 자발적인 흐름도 형성되겠지만, 일정 부분 언론과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취임사에는 언론에 대한 그 어떤 말도 담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지방선거 때문으로도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면 진원지를 그냥 놔두지는 못할 것이다. 언론 개혁이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포털로도 확산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반지성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과연 지방선거 이후 정국을 주도할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성적표는 인수위 두 달에 대해 냉정한 국민의 평가다. 이제 20여 일 후면 국민은 선택하고 알릴 것이다. 윤 대통령이 얻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그 성적표는 지금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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