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4시] 제주 해변과 오름에 숨겨진 드래건볼…전시의 벽을 허문다
  • 오을탁 제주본부 기자 (sisa641@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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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관념을 깨는 게릴라 전시회…드래건볼을 재해석하며 팝아트 이미지 표현
작가 “보란 듯이 복사를 복사하고 게릴라 전시는 지속될 것”…전문가 “대중들 눈높이에 맞게 복사했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비엔날레 개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김이베 작가의 게릴라 전시(4월24일)는 협재 해변의 모래위에서 시작됐다.(윗 사진 두장) 그리고 작가의 게릴라 전시는 새별오름(5월15일)에서 다시 시작됐다.(아래 사진 두장) ⓒ시사저널 제주
김이베 작가의 게릴라 전시(4월24일)는 협재 해변의 모래위에서 시작됐다.(윗 사진 두장) 그리고 작가의 게릴라 전시는 새별오름(5월15일)에서 다시 시작됐다.(아래 사진 두장) ⓒ시사저널 제주취재본부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서 반드시 미술관이 필요한 걸까. 미술 세계에선 ‘정통적’인 것이 아니면, 위험한 것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미술계의 상업적 시스템과 완고한 기준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틀에 가두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권위적인 기존 미술계와 진보적인 작가들이 빚어온 대립의 역사에서도 억압을 통해 굳어진 오랜 경계심을 엿볼 수 있다.

김이베 작가의 게릴라 전시(4월24일)는 협재 해변의 모래 위에서 시작됐다. 김이베 작가는 “1960년 앤디 워홀을 중심으로 시작된 팝아트는 대중매체를 통한 예술의 확장을 가져왔는데 현재 국내 팝아트는 여전히 제도권(미술관, 갤러리)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변에서 전시되는 팝아트는 제도권에 머물지 않고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길 원한다”라고 했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작품으로 ‘행복한 눈물’이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올덴버그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 작가다. ‘행복한 눈물’은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만화 이미지를 확대한 회화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상을 다른 방향에서 바꿔 보면 김이베의 말은 크게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게릴라 전시의 주제를 드래건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되었을 때, 다시 일어나 성장하는 사이어인 종족의 특성이 자신의 인생관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통은 인간의 얼굴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진다”라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작가는 자신과 싸움을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일까.

예술은 대자연이 가진 사상의 부각적 추출이다. 영감의 불 밑에서 다감한 묵필에 의한 그림이 나타난다. 어쩌면 작가는 봄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봄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릴 형편은 아니다. 봄의 걸음이 늦으면 이쪽으로부터 봄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서러운 혼자만의 길이다. 그래서 작가는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을까.

김이베는 제주 서쪽 애월에서 그림 작업을 하며 동시에 유튜브를 매개로 미술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콘텐츠를 통해 고대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설명한다. 그러다가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제주 해변 게릴라 전시 프로젝트는 협재 해변을 시작으로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유튜브 @김고흐 에서 다음 전시 장소와 일정이 공개된다.

김이베 작가의 게릴라 전시는 새별 오름(5월15일)에서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빌보 아트 형식을 취했다. 빌보드는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광고판을 말한다.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어 상품을 정보를 강제하는 기능인데 빌보 아트가 바로 같은 목적으로 미술작품 감상을 강제한다. 감상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 온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에 정확히 반응한다.

새별오름을 오르기 위해서는 세워진 드래건볼 팝아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김이베 작가는 감상자에게 감상을 강제하는 것이다. 미술사 전체에 이런 전시 형태는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1960년대 이후 팝아트를 필두로 예술은 대중과 매우 밀접해졌는데 반세기가 지난 2022년, 아직도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들만을 예술이라 인식한다”라고 미술 대중들의 인식 문제를 지적한다.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예술 종말 선언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마련해 주었다. 그가 내놓은 브릴로 상자는 마트의 상품인데 전시장의 브릴로 상자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단토가 알던 미술의 재현적 기능과 본질적인 정의는 더 이상 유의미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어만 놓고 보면 예술이 끝났다는 말처럼 보이겠지만 이제 모든 것이 예술적일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어쩌면 완전한 개방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시각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형식들을 차용해서 자신들의 표현적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중들 눈높이에 맞게 복사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믹을 활용해 김이베 작가는 보란 듯이 복사를 복사하고 있고 게릴라 전시는 지속될 것이다. 기믹이란? 미국의 속어로 ‘속임수’, ‘홀림수’ 등의 뜻한다. 광고 분야에서는 재치나 비꼼, 기분을 흐트러뜨리는 아트, 그리고 그 밖의 트릭을 쓴 것들을 가리킨다. 세일즈 프로모션을 위한 ‘이목을 끄는 행동(Stunt)’도 기믹에 속한다.

김이베 작가는 브릴로 박스와 같이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건볼을 재해석하며 팝아트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대 미술을 비판하고 있는 태세로 단토 이후의 시대에 예술들이 복제와 복사를 이어표절 조차 성립될 수 없는 획일화를 꼬집는다. 상업미술시장인 '아트페어'가 전국노래자랑처럼 매주 진행된다. 하지만 시장의 양적 성장에 비해 예술작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미술계의 평가다.

 

◇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비엔날레 개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 11월16일 개막, 2023년 2월12일까지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는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시 원도심부터 제주 남쪽 가파도까지 제주 전체를 아우르며 10여 개의 전시장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사진은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 제주도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는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시 원도심부터 제주 남쪽 가파도까지 제주 전체를 아우르며 10여 개의 전시장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사진은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 제주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10여 곳에서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를 오는 11월16일부터 2023년 2월12일까지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제주비엔날레의 주제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이다. 인류세 등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는 가운데 대안적 아이디어를 예술적으로 살펴보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시의 주제인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자연공동체로서의 인류의 생존을 위한 삶의 태도와 예술적 실천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움직이는 달(Flowing Moon)’은 자연의 시간과 변화의 속성을 포착한 것으로, 쉼 없이 흐르며 객체들을 잇게 한 순환의 메커니즘을 나타낸다. 인공지능 시대에 불어 닥친 전염병은 과학기술의 연대 필요성뿐 아니라 전 지구적 공생을 위한 자연의 순리(順理)에 주목하게 한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절기(節氣)를 만들고 생동하는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시간은 ‘움직이는, 흐르는 달’로 개념화했다. ‘다가서는 땅(Embracing Land)’은 자연에서 호흡하는 객체들의 생기 있는 관계적 겸손함을 함의한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류는 물질이 역사와 신화를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행성으로 이어짐을 마주하며, 물리적 지층이자 시대적 공간, 역사적 장소로서 땅의 몸짓에 주목해야 한다. 고른 숨소리와 유연한 걸음으로 이어지는 생동하는 물질의 행위이자 지평을 ‘다가서는 땅’으로 의미화했다. 이러한 개념 아래 비엔날레 전시는 자연, 인간, 신화, 우주 등을 동등한 객체로 보고 그 사이 만남과 떨림, 소통과 공존의 경험을 권한다. 발이 땅을 딛고 걷는 일과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는 일과 같이, 달의 흐르는 시간과 땅의 호응하는 순간들이 자연공동체 인류의 찰나와 영겁의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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