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 왔어요” 5·18 최초 희생자 아내의 망부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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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식 전날 이모저모] 故 김경철 열사 배우자의 42년 恨
5·18 기념일 하루 앞두고 유가족·시민 참배, 추모 분위기 가득
이재명, 송갑석 의원 등과 함께 참배…이후 금남로에서 진행된 전야제 참가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가 김 열사의 비석을 훑어보고 있다.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가 김 열사의 비석을 훑어보고 있다.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보고 싶어 왔어요.”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가족을 잃은 5월 광주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땡볕이 내리쬐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1묘역. 42년 전 남편을 가슴에 묻은 아내는 남편의 묘지에서 마르지 않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5·18 민주화운동 42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는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남녀 동창생들과 함께 기념행사 하루 일찍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떠난 임 그립고, 그리워”…5·18민주묘지 애끓는 망부가(亡夫歌) 

젊은 모습의 남편 영정 사진을 본 김씨는 “여전히 총각 같다”며 떠난 임을 그리워했다. 그는 ‘참된 민주화를 위해 계엄군에 희생된’이라고 적힌 비석 뒤에 남은 남편의 흔적을 읽으며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했다. 

청각장애인이었던 고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1980년 5월18일 오후 금남로에서 계엄군에게 맞아 숨졌다. 어릴 때 다쳐 언어장애 등을 안고 살았던 김 열사는 계엄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장애인증명서를 제시했지만 함께 있던 친구들이 손쓸 틈도 없이 몽둥이로 난타 당했다. 

김 열사는 이렇게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가 됐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국가기념일이 되고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들어서자 김 열사는 ‘첫 희생자’로 묘지번호 ‘1-1’을 부여받았다. 

취재진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청각장애인인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와 나눈  필담. 고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취재진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청각장애인인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와 나눈 필담. 고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취재진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청각장애인인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와 나눈  필담. 고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취재진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청각장애인인 고(故) 김경철 열사의 배우자 김미경(67·경기도)씨와 나눈 필담. 고 김경철(당시 24세) 열사는 5·18 민주화운동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희생자다. ⓒ시사저널 정성환

배우자 김씨 또한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이날 취재진과 나눈 필담에서 김씨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5.18묘지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직장 때문에 여의치 않아 참배하지 못하다가 2년 전 정년퇴직 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찾았다고 한다. 김씨는 김경철 열사와 결혼해 딸 하나를 뒀다. 

왜  하루 전날 묘역을 찾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너무 보고 싶어 어제 경기도에서 광주에 와 월산동 사는 동창생 집에서 1박을 하고, 오늘 참배 왔다”며 “내일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고 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이맘때, 김 열사의 어머니 임근단(91)씨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임씨는 아들이 묻힌 묘지를 찾아 설움을 토해냈다. “너에게로 돌아가서 다시 만날 일 있으면…”이라며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했다.

임씨는 41년간 맺힌 한을 쏟아내는 듯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애끓는 심정에 눈물을 쏟아내며 사진으로만 남은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었다. 임씨는 이날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리는 42주년 전야제 무대에 선다.

 

5·18묘역 유가족·시민 참배 열기 가득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유가족은 물론 시민과 시민단체 등 추모의 발길도 온종일 이어졌다. 

서울에서 온 김홍정(64)씨 부부는  “역사 현장에서 한분한분 이야기를 되새겨보면 생각 이상으로 참혹한 역사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년 시간을 내 참배한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유가족은 물론 시민과 시민단체 등 추모의 발길도 온종일 이어졌다. 5·18 계기 수업을 온 학생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오후에 접어들자 전남 영광 대마중 2학년 학생 등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지도교사의 인솔 하에 단체로 참배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유가족은 물론 시민과 시민단체 등 추모의 발길도 온종일 이어졌다. 5·18 계기 수업을 온 학생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오후에 접어들자 전남 영광 대마중 2학년 학생 등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지도교사의 인솔 하에 단체로 참배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 계기 수업을 온 학생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오후에 접어들자 전남 영광 대마중 2학년 학생 등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지도교사의 인솔 하에 단체로 참배했다. 

학생들은 5·18 광주 첫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의 묘부터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합동묘를 차례로 참배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사진이 걸린 묘지나 얼굴조차 없는 무명열사묘지를 지날 땐 울컥한 듯 고개를 숙이며 헌화했다. 

 

이재명 “국힘 5·18기념식 참석 다행…국민 갈등 만들지 말아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날 오후 3시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참배는 단출했다. 현충탑 앞에서 헌화한 뒤 묘역을 들르지 않고 10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 송갑석 의원과 이용빈 의원 외에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지자들도 50여명 정도만 모여 두달 전 대선 기간 중 참배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다소 굳은 표정의 이 위원장은 참배 후 현충탑에서 민주의 문까지 300여m를 송갑석 의원 등과 함께 말없이 걸어 내려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날 오후 3시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참배는 단출했다. 현충탑 앞에서 헌화한 뒤 묘역을 들르지 않고 10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날 오후 3시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참배는 단출했다. 현충탑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묘역을 들르지 않고 10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참배는 단출했다. 현충탑 앞에서 헌화, 분향한 뒤 묘역은 들르지 않고 10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참배는 단출했다. 현충탑 앞에서 헌화, 분향한 뒤 묘역은 들르지 않고 10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나가던 지지자가 “이재명 파이팅!을 외치면 고개를 들려 미소로 화답하던 그는 5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리허설을 제쳐두고 내려왔다며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그랬냐”며 반색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대거 참석하는 것을 두고 “다행스러운 일이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은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기자들을 만나 이같이 소감을 밝히고 “다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것이냐 말 것이냐로 국민 갈등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참배에 이어 민주당 광주시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석했다. 

올해 전야제는 코로나19로 축소됐던 행사들이 3년 만에 전면 부활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에는 전야제가 처음으로 취소됐고 지난해에는 방역수칙에 따라 참석 인원을 99명으로 제한해 소규모로 치렀다.

전야제는 오후 7시 20분부터 오후 9시까지 펼쳐진다. 1∼3부로 나뉘어 각각 ‘오월’, ‘진실의 힘으로!’, ‘시대의 빛으로’를 주제로 현대무용, 아카펠라, 마당극, 민중가요, 밴드, 국악 퓨전 연주 등을 선보인다.

1부에서는 극단, 무용단, 아카펠라그룹 등이 함께 1980년 민족 민주화 대성회, 시민궐기대회 등 역사적 투쟁을 재현한다.

2부에서는 2016년 9월부터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을 위해 투쟁 중인 오월 어머니 15명이 무대에 나와 5·18 정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세월을 노래로 승화할 예정이다. 전야제는 오월풍물단의 대동 마당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윤석열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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