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발이라 안 돼” 편견을 깨부순 우상혁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8 12: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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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혁, 어릴 때 교통사고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10mm 작아
‘넘사벽’ 올림픽 육상 메달에 한발 더 가까이

매일 술이었다. 훈련을 거르는 날이 늘어났다. 종아리 부상과 기록 저하. 선수로서의 삶이 다 끝난 듯 보였다. 알코올에만 의존했던 그때, 김도균 코치가 그에게 한마디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벼랑 끝에 있던 나를 구해준” 말이었다. “넌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어.”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은 다시 신발 끈을 조였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한국 육상 역사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김 코치의 말대로 그는 ‘세계적인 선수’도 됐다. ‘짝발의 비상’이다.

5월1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한국의 우상혁 선수가 바를 넘으며 성공하고 있다. ⓒREUTERS

한국 육상 트랙&필드에서 올림픽 최고 성적(4위) 세워

우상혁은 양발의 크기가 다르다. 8세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 탓에 오른발(265mm)이 왼발(275mm)보다 10mm 정도 작다. 신체적 조건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밸런스 유지 훈련을 더 많이 해야만 한다. 왼발을 마지막 구름 발로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짝발에 대한 편견으로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육상 관계자들도 더러 있었다. 노골적으로 “쟤는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상혁은 그들의 편견을 깨부수고 싶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뒤늦게 열린 도쿄올림픽이 그 출발점이었다. 사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여정이 험난했다. 랭킹 포인트 최종 산정일이던 6월29일까지 우상혁은 세계랭킹 35위(올림픽은 32위까지 출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 코로나19로 국제대회 출전이 어려워 랭킹 포인트를 쌓지 못했다. 대한육상연맹은 우상혁을 위해 최종 산정일 마지막 날인 6월29일 높이뛰기 우수선수초청 공인기록회를 열었고, 우상혁은 2m31cm(개인 최고 기록)를 뛰면서 올림픽 본선행을 결정지었다. 랭킹 포인트 순위는 31위였다. 그는 도쿄행을 결정지은 뒤 “정말 절실했고 간절했다”는 말을 개인 SNS에 남겼다. 그만큼 올림픽 무대에서 증명하고 싶은 게 있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 이은 생애 두 번째 올림픽 출전에서 그는 첫 결선 진출과 한국신기록을 목표로 세웠다. 리우 대회 때는 2m26cm의 기록으로 결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각오대로 우상혁은 보란 듯이 13명이 다투는 결선에 올랐고, 내친김에 한국신기록(2m35cm)마저 갈아치웠다.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기록(2m34cm)을 24년 만에 1cm 더 올려놨다. 개인 최고 기록은 4cm를 경신했다. “큰 무대에 강한 체질”이라는 그의 말은 맞았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개인 종목 올림픽 최고 성적(4위) 또한 세웠다. 마라톤·경보를 제외하고 한국 육상 올림픽 최고 성적은 8위(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진택, 1984년 LA올림픽 남자 멀리뛰기 김종일,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김희선)였다.

5월13일(현지시간) 우상혁 선수가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3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

‘한국 최초’ 수식어 계속 만들어내

우상혁은 대회 기간에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도 많은 시선을 끌었다. 그는 경기 전에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와 몸짓으로 현장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경쟁자들조차 그의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그가 ‘스마일 점퍼’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배경이다.

우상혁은 스스로를 향해서는 “할 수 있다” “나는 꼭 한다” “올림픽에 왔다” “자, 가자” 등의 주문을 여러 차례 외쳤다. 2m30cm를 넘었을 때는 카메라를 향해 “이제 시작이에요. 레츠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를 다 마쳤을 때는 군인 신분답게 TV를 시청 중이던 국민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는 짝발 때문에 대체복무가 가능한 병역판정검사 4급을 받았으나, 국군체육부대에 지원해 지난해 3월 입대했다. 사회복무요원 신분으로는 경기 출전이 제한되지만 상무 소속의 군인 신분은 국제대회 출전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기 전후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우상혁은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압박감이 넘치는 상황에서 도전에 실패해도 금세 털어내고 다시금 웃는,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MZ세대 선수로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2022년. 그는 기세를 몰아 본격적인 ‘우상혁 시대’를 열었다.

세계 최정상 육상 선수들만 참가해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던 2022 세계육상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 개막전(5월14일·카타르 도하)에서 2m33cm를 뛰면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홈코트 이점이 있던 도쿄올림픽 공동 금메달리스트 무타즈 에사 바심(31·카타르)을 가뿐히 제쳤다. 바심은 2m30cm를 뛰었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뛰어넘은 2m33cm의 기록은 올 시즌 실외 남자 높이뛰기 세계 최고 기록이다. 올해 실내 세계 최고 기록도 우상혁이 보유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체코 후스토페체 대회 때 2m36cm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현시점에서 우상혁이 세계 최고 점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올림픽 다음 해라서 바심, 장마르코 탬베리(30·이탈리아)와 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잠시 쉬어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이들은 다이아몬드리그 이전에 국제대회 출전을 거의 하지 않았다. 7월15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개막하는 세계육상세계선수권에 맞춰 이제야 컨디션을 가다듬고 있다. 이 때문에 도쿄올림픽에 이은 1년 만의 진검승부는 7월에 펼쳐질 전망이다.

우상혁 또한 이를 인지해 원래 참가하려던 다이아몬드리그 2차전 버밍엄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5월19일 귀국을 택했다. 우상혁은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고, 계속해서 유럽 실내 육상대회에 참가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7월까지는 국내에서 숨고르기를 하면서 세계선수권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우상혁은 세계실내육상선수권(3월)에서 우승한 뒤 “실내 대회 세계 챔피언이 됐으니까 실외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의 경쟁자는 역시나 바심과 탬베리가 될 전망이다. 우상혁은 세계선수권을 넘어 1년 연기된 항저우아시안게임(2023년) 금메달, 2024 파리올림픽 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우상혁의 ‘점프’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막연히 “육상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아버지의 손을 끌고 육상부를 찾아갔다. 충남고 3학년 때인 2014년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뒤에는 당차게 “아직은 최초가 아니지만 앞으로 최초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 최초’ 수식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짝발’에서 시작된 그의 도약은 한국 육상의 큰 발자국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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