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 변호사 “권력형 성범죄는 진영 논리가 아닌 인권의 문제”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7 12: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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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지현 전 검사 미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범죄 사건 맡은 김재련 변호사가 말하는 권력형 성범죄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로 우리 사회 전체가 요동쳤지만, 최근에도 박완주·최강욱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의 성범죄 의혹이 불거졌고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는 당내 인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은 검사 시절 성 비위 전력으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며, 윤 비서관이 과거에 쓴 시는 성추행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 큰 문제는 성범죄 의혹에 휩싸인 인사들이 성범죄 의혹 자체를 부인하거나, 해당 인물이 소속된 조직에서도 성범죄 사건을 무마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는 서지현 전 검사의 ‘미투(Mee Too, 나도 당했다)’ 사건과 고 박원순 시장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 변호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권력집단의 성범죄 은폐 시도부터 지지자들에 의한 2차 피해까지, 권력형 성범죄의 민낯을 직접 목격했고 피해자와 함께 유·무형의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시사저널은 김재련 변호사를 만나 권력형 성범죄의 시작과 끝을 낱낱이 들여다봤다. 김재련 변호사는 “권력형 성범죄는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아닌 인권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권력자의 이름을 가리고 사건을 바라보면 실체적 진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상황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자의 ‘밧세바 신드롬’

“박원순 시장은 2017년 1월경부터 나에게 본격적으로 사적인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사적 연락은 2017년 1월 박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대다수 비서진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노골화됐다. 2018년 6월 서울시장 3선이 확정된 후부터 심각한 위기의 순간을 겪었다. 그는 선을 넘었고, 멈추지 않았다. 어떤 제왕적인 권력을 이룬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서운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2019년 시장실로부터 탈출해 다른 부서로 이동했지만, 사적 연락은 계속되었고, 수위도 심각해졌다. 이제 다른 부서로 갔으니 몰래 만나기 좋겠다고 했고, 2020년 2월에는 텔레그램 대화를 통해 성관계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했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中 발췌

박원순 전 시장은 3선이 확정된 후 “제왕적 권력을 이룬 사람”처럼 “무서운 것 없이” 성범죄를 저질렀다. ‘밧세바 신드롬’이란 용어가 있다. 성경에서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민족의 영웅으로 떠오른 다윗이 부하의 아내였던 밧세바에게 욕정을 품어 임신하게 만들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부하를 죽게 만들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쟁취한 권력자의 윤리적 타락을 이르는 말로, 권력자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돼 결국 나쁜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박원순 전 시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2018년 3월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성범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에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가해 기간을 재차 확인하시고는 안희정 사건을 보면서도 반성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냐고 흥분하셨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김재련 변호사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는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공적인 비서 업무 외에도 박원순 시장의 사적인 일에 동원됐다. 박원순 시장이 장복하던 약을 대신 타오거나 속옷을 정리하게 하고, 시장 가족들이 먹을 명절 음식을 사오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혼재된 것”이라면서 “피해자는 하급자로서 어쩔 수 없이 최고 상급자의 사적인 일에 동원된 것일 뿐인데, 상급자는 하급자가 자신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 자신을 세심히 돌봐주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서 언어적 성희롱을 시작으로 신체적 접촉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권력자들이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성범죄를 ‘불필요한 신체접촉’이라고 표현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마음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어떤 악의가 있어야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부주의한 게 아니었고 의도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의 야만적인 이기심에 가슴이 쓰라렸다. 나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의 피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그냥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中 발췌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히기도 힘들지만, 더 큰 시련은 성범죄를 밝힌 이후부터 시작된다. 권력자가 속한 거대 집단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일쑤다.

최근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가 당내 성범죄를 폭로하자, 정의당은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던 사안”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강민진 대표는 곧바로 “당이 공식 입장을 통해 성폭력을 ‘불필요한 신체접촉’으로 표현한 점이 경악스럽다”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박원순 전 시장 성범죄 피해자는 “가깝고 믿었던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상대편이 절대적 약자일 때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가진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이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김재련 변호사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조직, 진영일 뿐 권리의 주체인 개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피해의 주체이자 존엄의 주체인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고 피해 호소인이라는 괴랄스러운 용어로 피해를 소거해 자신들의 진영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습속의 반복으로 인해 결국 권력형 성범죄는 계속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적 진영 논리를 걷어내면 위력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우리가 어떤 공감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재련 변호사는 “권력형 성범죄 사건의 경우, 재판을 거쳐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등 법적·사회적 결과가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면서 “권력형 성범죄 사건도 형사사건이기 때문에,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 증거를 모으고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또다시 엄청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조직 구성원들이나 주변인들의 조그마한 응원과 지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성폭력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때나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왜 지금까지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문제를 삼는 것인가요’라는 것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라는 질문은, 피해자의 생과 사를 결정지을 정도로 큰 차이를 가져온다”면서 “무심코 던진 돌이지만 개구리는 맞아 죽는 법이다.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강조했다.

2020년 7월13일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대리인 김재 련 변호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공개는 악질 범죄”

“무엇이 2차 가해인가.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협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이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중략)…2차 가해 과정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내 사진과 실명이 노출되는 일이었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中 발췌

권력형 성범죄가 다른 성범죄와 가장 다른 점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2차 가해’에 있다. 지지자들은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이 그럴 리가 없다. 조작이고 음해일 뿐”이라는 식이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에서 피해자는 물론 김재련 변호사도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다.

가장 대표적인 2차 가해는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한 것이다. 김민웅 전 교수는 2020년 12월 자신의 SNS에 성폭력 피해자가 2016~18년 박 전 시장에게 보낸 생일축하 손편지 사진을 그대로 공개해 피해자의 실명을 노출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결국 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4월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비밀준수 등) 혐의로 김민웅 전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김재련 변호사의 경우 “피해자가 밝힐 생각이 없었는데, 김재련 변호사가 배후에서 피해자를 조종해 박원순 시장을 음해했다”는 유언비어에 시달렸다. 이 밖에 유튜버 등의 인신공격성 발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김재련 변호사는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악질적인 범죄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그러나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한 40대 여성은 지난해 9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집행유예는 공무원이 아닌 경우 실효적 처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면죄부’를 준 셈이다.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형 성범죄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사실상 징벌에 가깝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기관의 장이거나 회사의 대표인 경우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피해자와 분리시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사실상 퇴사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럴 경우, 60세까지를 정년으로 보고 봉급을 피해자에게 모두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만 근로자들의 근로권을 위협하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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