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KBO리그 지배하는 1982년생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4 17: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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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왕 다툼 벌이는 이대호에 “은퇴 안 돼” 목소리 더 커져
추신수·오승환도 톱타자·마무리로 팀 주축 활약

한국 야구사에서는 1973년생(박찬호, 염종석, 박재홍, 정민철, 임선동, 조성민 등)에 이어 1982년생을 ‘제2의 황금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캐나다 에드먼턴)에서 금메달을 합작해 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의 영광에도 이들의 활약이 있었다. 황금세대를 이뤘던 김태균·정근우·이동현 등은 화려한 날을 뒤로하고 이미 은퇴했다. 하지만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해 추신수·김강민(이상 SSG 랜더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은 아직 리그에서 뛰고 있다. 40세의 나이로 KBO리그 제일 맏형인 이들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후배들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보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8월2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 투어 행사에서 친구인 SSG 추신수의 영상 메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초 3000안타 가자”…이대호 은퇴 만류하는 팬들

2022 시즌 KBO리그 등록선수 중 최고령인 이대호(1982년 6월21일생)는 일찌감치 은퇴를 예고했다. 현재 한창 은퇴 투어 중이다. 이승엽에 이어 KBO리그 역대 두 번째인 그의 은퇴 투어는 7월16일 올스타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2만3000명이 넘는 만원 관중이 그의 응원가를 열창했다. 10개 구단 중 첫 테이프(7월28일)를 끊은 두산 베어스는 이대호의 좌우명인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천 달항아리를 선물했다. KIA 타이거즈(8월13일)는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2010년·비공인)을 세웠던 광주무등야구장과 이대호의 타격폼으로 구성된 미니어처 트로피를 준비했다.

NC 다이노스는 이대호에게 마산구장 홈플레이트와 그의 프로 데뷔전과 KBO리그 복귀전 기록지가 담긴 액자를 안겼다. 2001년 9월19일 1군 데뷔전을 치른 곳도, 일본과 미국을 거쳐 국내로 복귀해 처음 경기를 치른 곳(2017년 3월31일)도 마산이었기 때문이다. SSG 랜더스의 선택은 조선시대 마패였다. ‘조선의 4번 타자’ 별명에서 착안했다. 키움 히어로즈(8월31일)에 이어 삼성 라이온즈(9월8일), KT 위즈(9월18일), 한화 이글스(9월20일), LG 트윈스(9월22일) 순으로 은퇴 투어는 이어진다.

은퇴 투어가 진행 중이지만 팬들은 아쉬움을 곱씹는다. 그의 최근 성적 때문이다. 이대호는 호세 피렐라(삼성), 이정후(키움)와 타격 수위 다툼을 벌일 정도로 전성기 못지않은 타격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대호가 타격 1위에 오르면 최고령 타격왕이 된다. 지금껏 40대에 타격왕이 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이미 KBO리그 출신 한국 타자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작성해 나가고 있다. 이승엽이 보유 중이던 기록(2842개)을 8월14일 넘어섰다. 이대호는 일본(4년 622안타), 미국(1년 74안타) 활약 시기를 포함해 프로 통산 2859개(KBO리그 2164개·8월30일 현재)의 안타를 쳐내고 있다. 일부 팬이 한국 선수 최초의 3000안타를 기원하며 이대호의 은퇴를 만류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뉴스1

‘볼넷 1위’ 선구안 여전한 추신수…500세이브 노리는 오승환

이대호의 인천구장 은퇴 투어 때 간식 차를 쏜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 또한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8월26일 오른손 중지 염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될 때까지 꾸준히 SSG 1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타율 0.265(373타수 99안타), 14홈런 72득점 53타점 13도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했던 그는 현재 볼넷 1위(68개)에도 올라있다. 나쁜 공을 골라내는 능력이 여전히 탁월하다. 40대 나이에도 그는 OPS가 0.824(출루율 0.392+장타율 0.432)에 이른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월드시리즈 왕좌에 오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우승 반지가 간절하다. 국내에 복귀했던 지난해에는 SSG 선발 마운드가 붕괴하면서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우승 가까이에 와있다. 개막부터 지금까지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는 SSG는 시즌 104경기 만에 70승에 선착했다. 70승 선착팀의 정규리그 우승 확률은 75%(32차례 중 24차례·전후기 리그와 양대 리그 제외). 추신수의 우승 꿈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추신수와 함께 SSG 최고참인 김강민 또한 타선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로 SK 와이번스(SSG의 전신)의 전성기를 이끌며 4차례 우승을 견인했던 그는 현재 SSG 주전 중견수인 최지훈을 도우면서 팀 승리의 밑돌을 놓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왼쪽다리 대퇴부 통증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가면서 잠시 은퇴도 고민했으나 김원형 SSG 감독의 격려 속에 다시 힘을 내 후반기에 1군에 복귀했다. 성적도 나름 쏠쏠하다. 59경기 출전, 타율 0.287 4홈런 14타점. 김강민 또한 생애 5번째 우승 반지를 원하고 있다.

‘돌부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은 현재 KBO리그 최고령 투수다. 그는 여전히 사자 군단의 뒷문을 책임지고 있다. 8월30일 현재 4승 2패 23세이브 2홀드로 세이브 부문 4위에 올라있다. 나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구위 저하로 평균자책점은 3.60으로 마무리 투수치고는 다소 높은 편이다. 블론세이브도 5차례나 있다. 7월 7경기에서 홈런 4개를 맞으면서 블론세이브를 4차례 기록한 게 컸다. 하지만 8월에 반등(9경기 2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1.04)에 성공했고 프로 8번째 20세이브 고지도 밟았다.

KBO리그 최초 350세이브 기록을 넘어선 오승환은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승환은 일본(한신 타이거스)에서 80세이브, 미국(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42세이브를 올렸다. 현재 한·미·일 프로 성적을 다 합하면 484세이브에 이른다. 삼성의 후반기 남은 경기 수를 고려하면 내년 초반에 500세이브 고지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그의 팔은 500세이브를 올리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KBO리그 최고령 기록을 살펴보면 투수는 송진우(43세7개월7일), 타자는 조인성(41세11개월28일·외국인 선수 제외)이 갖고 있다. 이들의 경우에서 보듯 이미 끝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는 이대호를 제외한 나머지 1982년생 3인방은 향후 활약에 따라 얼마든지 현역 연장을 할 수 있다. 이대호의 은퇴 투어를 지켜본 추신수는 “아직까지 은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은퇴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서 “나이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친구가 은퇴한다고 하니 ‘나도 그런 나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속내를 밝혔다.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야구장에 온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30대 초중반에 은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백인천·강병철·허구연·이광환·김용희 등은 30대에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40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초라하지 않은 끝을 향해 오늘도 내일을 향해 한 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는 1982년생이다. 그래서 이대호를 향한 팬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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