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청년 소멸, 해답은 메가시티에 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6 10: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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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시사저널 주최 ‘굿시티포럼 2022’ 개최…전문가들 “도시의 개념 변한 만큼 정책도 바뀌어야”

한국의 지방 도시가 죽어간다. 경제 성장과 기술 발달로 외형은 화려해졌을지 모르지만 지방 소멸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징후 가운데서도 ‘사람’이 빠져나간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농어촌에서 시작된 지방 소멸은 지방 소도시로, 이어 지방 대도시로 번졌다. 이전과 다른 균형발전 전략이 절실한 이유다.

8월29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과 온라인에서 동시 진행된 시사저널 주최 ‘굿시티포럼 2022’는 점점 악화하는 지방 소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주제는 ‘초광역 메가시티를 디자인하다’이다. 이날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전문가들이나 지자체 관계자들은 “생활권과 경제권을 한데 묶는 초광역 메가시티를 서둘러 구축해야 지방 소멸을 억제하고 국토 균형발전으로 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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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권·경제권 하나로 묶는 초광역 도시

전문가들은 우선 메가시티의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전 국토교통부 1차관)는 “대부분이 메가시티를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대도시로 단순하게 분류한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34개 메가시티 중 24개가 개발도상국에 위치하는 만큼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메가시티는 행정구역이 아니라 경제권 중심의 기능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진종헌 공주대 경제학과 교수도 “도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경제 공간이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대도시권의 경제 역량은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면서 “메가시티는 이질적 도시의 기능을 상호 보완해 시너지를 발휘하고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 도시의 상황은 현재 녹록지 않다. 당장 ‘소멸’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소멸 우려 지역은 거점 도시로 뭉쳐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성장세 좋은 스타트업이나 R&D(연구·개발) 및 ICT 기업은 현재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몰려 있다. 학력 등 좋은 스펙을 갖춘 청년들은 근무환경이 더 쾌적하고 편리한 수도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지방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 고령화와 구인난이 가속화되고, 생산인구 감소로 소멸 우려 지역은 앞으로 더욱 늘어나게 된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도심융합특구다. 도심융합특구를 조성해 산업과 기술, 주거, 기반시설 등을 융복합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청년들을 지방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자체들도 시도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초광역권(메가리전·mega region)’ 도시를 추진 중이다. 메가리전은 노동과 자본이 비용에 따라 재배치되는 ‘도시 및 주변 교외배후 지역 통합체’를 의미한다. 대도시와 주변 지역이 환경, 경제, 인프라 등 상호작용 등을 통해 공간·기능적으로 연계하는 형태다.

권대우 시사저널 대표이사 부회장이 시사저널 ‘굿시티포럼 2022’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부산·충남도의 메가리전 구축 청사진

가장 두각을 보이는 곳이 부산·울산·경남을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으로 묶는 특별지자체 부울경 특별연합이다. 4월18일 설치 근거가 되는 규약안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날 포럼 첫 번째 세션(메가시티와 도시의 진화)의 화상 축사를 통해 “부울경 메가시티는 지역 주도의 발전 전략으로, 여러 부분에서 연계 수준이 높고 규모의 경제 실현도 가능하다”면서 “2040년까지 부울경이 글로벌 8대 경제광역권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도청은 산업·인재·공간 등을 메가시티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충청권 첨단 바이오 산업 구축과 미래차 관련 에너지 소재와 부품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인재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이필영 충청남도 행정부지사는 “충남도는 현재 충청권 상생협력기획단과 합동추진단 등 각종 TF 조직을 동원해 스마트 메가시티 설치 방안과 대내외 공감대 형성과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2023년 이후 메가시티 출범을 목표로 초광역 협력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시급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이수일 부산시 행정자치국장은 “중앙정부가 권한을 부울경 특별연합으로 더 많이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 승인으로 부울경 특별연합은 지자체로부터 이관받은 18개 사무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위임받은 3개 사무를 처리하게 됐다”면서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일자리와 산업, 문화관광 등 분야에서 획기적인 수준의 권한을 정부로부터 이양받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부터 정부 주도로 다양한 초광역권 구축 정책이 추진됐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권역 설정과 정부의 지원 방향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지 못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 원장은 “중앙부처별 칸막이식 예산 지원이나 권역 내 지자체 사이의 소지역주의 발흥 등으로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면서 “지역 주도로 기획되고 합의된 비전과 목표를 바탕으로 정책을 펴나갈 효과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8월29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시사저널 주최 ‘굿시티포럼 2022’에서 김현수 단국대 교수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메가시티로 풀어라’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네덜란드 광역도시 란스타드, 벤치마킹 대상

네덜란드의 광역도시인 란스타드가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헤이그, 유트레이트 등 각 도시들이 현재 55km 범위 내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경제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란스타드 내 13개 도시는 각각의 산업이나 기능 전문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진종헌 공주대 지리학과 교수는 “메가시티는 도시 간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간적 접근성이다”면서 “메가시티는 단핵도시(점), 연담도시(선), 네트워크도시(면) 방향으로 발전한다. 회랑 형태로 성장하지만 궁극적으로 네트워크 도시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K메가시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을 고려한 메가시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 관점에서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해야 한다”면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각 지자체에 배치해 수도권에 대응하는 기능적인 공간을 만드는 게 K메가시티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 (전 국토부 제1차관)이 8월29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시사저널 ‘굿시티포럼 2022’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br>
김경환 서강대 교수 (전 국토부 제1차관)이 8월29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시사저널 ‘굿시티포럼 2022’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br>

“메가시티 성공 키워드는 ‘경제’와 ‘삶의 질’”

김경환 서강대 교수 기조 연설

김경환 서강대 교수는 8월29일 ‘굿시티포럼 2022’ 기조연설에서 초광역 메가시티 정책의 포커스가 ‘삶의 질’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 1차관을 역임했고 윤석열 후보 대선 캠프에서 주택정책 공약을 설계한 바 있다.

우선 메가시티의 개념에 대해 김 교수는 “인구수나 행정구역 구분이 아닌 경제권 중심의 기능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면서 “인구가 1000만 명이 안 되더라도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정치, 문화 등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전 세계 대도시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되고 메가시티도 늘어나면서 대도시의 경쟁력이 나라 전체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며 “대도시의 경쟁력이란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도시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즉 경제적 역량을 말한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주요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를 살펴보면 웬만한 신흥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압도할 정도”라며 “대도시권이 개별 국가를 넘어 글로벌 경제를 이끌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이라는 대도시권이 있지만, 비(非)수도권에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메가시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등 우리나라 대도시들의 경우 주민 만족도가 낮은 데다 하락세를 나타내왔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메가시티 관련 논의와 정책의 목적은 경제적 역량에 기반해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가시티 구축의 방법론에 관해선 권역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야 하고, 도시와 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 기술, 관용성 등도 수반돼야 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세계 주요 대도시권은 포용적인 경제, 건강, 기후, 모빌리티, 인프라 업그레이드 등을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다”며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또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메가시티를 운영할 때 지자체 간에 참을성이 요구된다”면서 “제도와 법령, 그리고 인식의 변화는 물론 (통합에 따른) 주민 피로감을 해소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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