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안 보이는 한국 언론,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정년 맞은 학자의 마지막 고언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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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백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신간 《민족지의 신화》 출간
한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기사검색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한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다.ⓒ연합뉴스

‘언론의 위기’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고정값이 되어버렸다.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 사람조차 전통 미디어의 위상과 영향력이 뚝 떨어졌단 사실을 안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자구 노력은 부족했고 효과도 없었다. 시간만 흘러갔다. 어느덧 한국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전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전락했다. 

작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본 채백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도무지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현재를 진단했다. 올해 8월 정년을 맞은 채 명예교수는 “40년이 넘는 연구자 생활 중 한국 언론에 쓴소리를 많이 했음에도 위기가 심해져만 가는 현실에 대해 작게나마 책임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한국 언론을 향한 마지막 고언’ 격으로 책을 썼다. 

“어려울 때일수록 과거 돌아봐야”  

8월10일 출간된 책 제목은 《민족지의 신화》다. 최신 미디어 동향과는 어쩐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두 인쇄 매체의 과거 행적을 조명한다. 그것도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시대별 변화상을 차근차근 짚는다. 책에서 다뤄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오랜 기간 우리나라 신문시장을 과점해온 미디어다. 정보력, 여론 주도력 등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다. ‘언론의 위기’라는 카테고리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한다. 이는 곧 언론 전반의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신간 《민족지의 신화》 표지ⓒ컬처룩
채백 부산대 명예교수의 신간 《민족지의 신화》 표지ⓒ컬처룩

채 명예교수는 책에서 “인쇄 미디어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나, 인쇄의 장점은 여전하다”며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벌어지는 문제들의 일정 부분은 인쇄 미디어를 통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직 인류의 사회문화적 근본은 상당 부분 인쇄 문화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옆을 보고, 뒤를 돌아봐야 한다”면서 한국 언론사를 대표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과거에서 현안을 풀어갈 열쇠를 찾자고 제언했다. 

책이 집중적으로 다룬 지점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관통하는 민족지 신화다. 민족지 신화는 두 매체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민족지라는 개념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말한다. 일제 식민 지배의 가혹한 탄압에 맞서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며 투쟁했다는 것이다. 2년 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 기념 사설에서 하나같이 민족지 신화를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잃어버린 나라의 이름 ‘조선’을 제호로 달고 빼앗긴 글로 민족의 설움을 대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시밭길이었다”며 창간 5개월 만에 정간당했으며 복간되고 3일 만에 다시 정간당했던 점을 내세웠다. 아울러 1940년 일제가 조선일보를 폐간시킨 것은 강요와 압박으로 잠재울 수 없는 민족언론의 존재가 껄끄러워서였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100년의 역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창간 2주 만에 첫 발매 금지를 당한 후 1940년 8월 강제 폐간되기까지 무려 63회의 발매 금지, 489회의 압수, 2400여 회의 기사 삭제, 4회의 정간을 겪었다”면서 자신들이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음을 강조했다. 채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 통제를 당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식민 지배에 맞섰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일제강점기의 언론 통제는 일본인이 발행했던 신문이나 조선총독부 기관지에도 일정 부분 가해졌다”며 “설령 총독부로부터 수없이 탄압받은 기록을 저항과 투쟁의 증거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두 신문의 친일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1978년 이후 굴절되기 시작한 민족지 신화 

책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제의 민간지 허용 방침에 따라 창간된 1920년 이후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민족지 신화는 왜 등장하게 됐는지를 담담하게 제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신문의 지면이 민족지 신화에 대한 허와 실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팩트’ 역할을 수행한다. 채 명예교수는 “광복 직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관계자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회고로 시작된 민족지 신화는 해당 신문사들에 의해 1950년대부터 본격화해 학계의 지원 속에 1970년대 들어선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실리고 다수의 국민도 사실로 믿게 되는 정착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 과정은 지면을 비롯해 언론인들의 회고와 전기, 사사(社史) 등 신문사 자체의 모든 자원을 기본으로 하면서 학계·교육계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널리 확산하며 공고해져 가던 민족지 신화는 최민지 신문평론가가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을 펴낸 1978년을 기점으로 굴절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갖는 역사적 한계와 1930년대 후반 친일상을 직접 기사를 인용하며 폭로한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은 민족지 신화를 부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책이 밀알이 돼 1980년대에 일제강점기 언론 특성과 한계에 관한 학계의 비판적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1990년대 이후론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들이 두 신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채 명예교수는 “이처럼 거스를 수 없는 흐름과 함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자사 지면과 사사에서 일제 말기 친일 행태를 일부 인정하기에 이르렀다”면서 “하지만 두 신문 모두 100주년 기념 사설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듯 민족지 신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점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더 나아가 한국 언론이 수용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된 근본 원인은 아닐까.’ 채 명예교수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하는 화두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스스로의 문제에 관해 ‘일제강점기에 부분적으로 공이 있었으니 과오(친일 행적)는 어느 정도 용납해 줘야 한다’는, 이른바 공과(功過)론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채 명예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개인도 아니고 공적인 언론 기관으로서 사회의 기대나 본령에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로 가면서 해선 안 될 행태까지 보인 것을 일부의 공이 있다고 상쇄할 순 없다”며 “이 논리를 계속 견지해서는 독자들이나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권위주의적 태도 탈피와 저널리즘 회생 절실 

이어 채 명예교수의 일갈은 한국 언론 전체로 향한다. 뉴스 소비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정치 권력에, 또 자본 권력에, 최근 들어선 포털 생태계에도 무기력하게 굴복해온 기성 언론의 비굴함을 목도해 왔다.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며 독자나 시청자들의 실망감을 해소해준 매체는 찾기 어려웠다.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자화자찬하고 기득권만 사수하려 드는 모습은 특정 언론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넘어 분노조차 남지 않은, 체념과 조롱의 일상화로 귀결됐다. 

언론사와 언론인 역량이 곤두박질치는 사이 뉴스를 소비하는 세상은 훌쩍 진보했다. 소수의 매스미디어가 정보를 집중 관리하며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와 다르다. ‘신문에 났다’ ‘방송 봤냐’는 말이 곧 팩트요 진실임을 의미하던 시대는 끝났다. 매스미디어의 보도에 아랑곳없이 사건 당사자나 현장에 있던 시민이 SNS 등을 통해 다른 정보를 올리며 기성 미디어의 뉴스를 검증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채 명예교수는 “이런 시대에 과거와 같은 신화적 인식은 먹혀들 수가 없다”면서 “한국 언론이 꺼져가는 신화를 부여잡기보다 이제라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론 “누구나 금세 검색해 크로스체크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수용자들을 계몽 대상으로 여기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려라”며 “인식의 전환과 함께 자신들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개선하면서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되살려 주어진 역할을 다해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즉 지금이 가장 빠르다’는 평범한 격언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며 채 명예교수는 책을 마무리했다.

 

■ 채백 부산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올해 8월 정년 퇴직했다. 현재는 동 학과의 명예교수다. 한국 언론의 역사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다수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 《한국의 공동체와 미디어》(공저), 《한국 언론사》, 《부산 언론사 연구》, 《한국 신문의 사회문화사》(공저), 《사라진 일장기의 진실》, 《독립신문 연구》, 《한국 언론 수용자 운동사》, 《출판학》, 《미국의언론 개혁》, 《세계 언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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