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찾기 공방보다 초당적 ‘이태원 보고서’ 만들기에 집중을 [쓴소리 곧은 소리]
  •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정치학) (db827@naver.com)
  • 승인 2022.11.13 10: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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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참사 정치화’에 피로감…윤석열 정권의 무한책임 회피도 안 돼
정쟁 멈추고 당파 초월한 전문가들 중심으로 국가종합보고서 작성해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10월29일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156명이 압사했다. 참사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많은 인파, 양방통행, 좁은 골목, 경사로, 소음으로 위험 신호가 뒤로 전파될 수 없는 상황 등으로 ‘군중 압착(crowd crush)’의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허술한 보고 체계, 부실 및 늑장대응이 사태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주최자나 단체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도 사고를 키웠다.

이런 상황, 구조, 인식적 요인들뿐만 아니라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좁은 공간에 밀집하는 군중을 관리하는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의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민주당은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요구서를 11월9일 제출했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특검과 국정조사 수용을 거부하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민주당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체의 명단과 사진을 공개해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재난과 국민의 슬픔을 정치 도구화하는 ‘참사 정쟁화’에 몰두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1월7~8일 MBC와 코리아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즉시 국정조사를 실시해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49.9%)는 응답이 ‘경찰의 수사를 지켜본 이후 추후 논의해야 한다’(44.3%)를 압도하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한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참사 이후 민심의 흐름도 민주당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이태원 참사 직후 첫 한국갤럽 여론조사(11월1~3일)에서 윤석열 대통령(29%)과 국민의힘(32%) 지지도는 전주 대비 1%포인트씩 떨어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첫 리얼미터 정례 여론조사(4월21일~25일)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도가 각각 전주 대비 6.8%포인트, 4.7%포인트 하락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0·29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모임이 11월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안민석 의원 페이스북

9·11 테러 때 앨 고어 “부시 대통령은 나의 최고사령관”

세월호 때와 확연하게 다른 이유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수차례 사과를 했고, 민주당과 진보단체가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민주당이 ‘참사의 정쟁화’를 통해 선거법과 각종 비리 의혹을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구하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등 개발 특혜 의혹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른 것으로 표적수사는 아니라고 본다’(50.6%)는 응답이 ‘야당 대표에 대한 표적수사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42.9%)는 응답보다 많다는 것을 민주당은 유념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분열돼 있다가도 대형 사고가 나면 단합의 계기가 된다. 가령,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대통령 후보에게 석패했던 민주당 앨 고어 전 부통령은 9·11 테러 직후 “부시는 나의 최고사령관이다”면서 정적인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 퇴진도 내각 총사퇴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보 시스템의 전면 개편에 적극 협조했다.

 

군중 밀집도 예측·감지·방지하는 관리 매뉴얼 나와야

윤석열 정부와 집권당도 급락하지 않은 지지도에 고무되어 현장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야당을 공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 참석해 경찰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국회에 나온 이상민 장관도 “최선을 다해 장관직을 수행하겠다”면서 야당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이태원 참사 발생 원인이 당시 용산 대통령실 앞 시위 참여자에게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이런 태도는 사고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모습이 아니다. 국민 7명 이상(72.9%)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지적처럼 정치 책임은 사법 책임과는 달리 행위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진상 규명과 상관없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 감사, 조사가 무려 아홉 번 되풀이됐고 세월호 보고서도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 공감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책 매뉴얼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부실 덩어리였다. 결과적으로 해난 사고는 더 늘어났다. 참사를 정치에 이용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고 희생양부터 찾으면서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다. 분명, 이태원 참사의 핵심 요인은 정치가 아닌 시스템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는 수사대로 하면서 정쟁을 멈추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초당적으로 정책 수립에 필요한 진지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스웨덴의 ‘정책조사특별위원회 제도(SOU)’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현안에 대해 초당적인 인사가 위원장을 맡아 최소 1~2년의 조사 기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정책의 목표, 장단점 진단, 그리고 비용까지 산출한다. 여기서 채택된 최종 보고서는 최소 3개월 이상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레미스(Remiss)’를 거친다. 스웨덴 린네대 최연혁 교수는 이 제도의 장점으로 “정책의 과학화, 실명화, 책임화를 강조”하면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예방하고 정쟁으로 인한 소모적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실효성 있는 참사 예방을 위한 국가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군중 밀집도를 예측, 감지, 방지하는 최고의 군중 관리 매뉴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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