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는 男과 女도, 갈등도 대립도 없었다 [남인숙의 귀여겨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2 17:05
  • 호수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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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속 소중한 깨달음,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일 뿐’
본능적으로 타인 구하려 나선 인간애 속속 드러나

10월29일 그 끔찍한 밤, 필자는 혼자 작업을 하던 중 인터넷 속보를 접했다. 내용 한 자 없이, 이태원에서 무언가 사고가 발생해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는 단편적인 제목만 유성우처럼 빗발쳤다.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아 밖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곧 TV와 SNS를 드나들며 사람들이 물어 나르는 소식들을 뒤져보게 되었다.

11월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 공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가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재해 후 난무하는 추측들, 그 사회의 혐오 정서 반영

초반에 사람들이 퍼 나르는 이야기는 모두 기묘하면서도 불쾌했다. 여자들이 정신을 잃고 업혀 나오고 있다며 마약 문제가 틀림없다는 말이 돌았다(심지어 이런 억측은 지상파 뉴스에서까지 여과 없이 방송되었다). 서양 명절을 챙기겠다고 환락의 현장에 합류한 한심한 여성들을 성토하는 듯한 분위기가 곧 형성됐다. 한편으로는 심폐소생술(CPR) 때문에 흐트러진 매무새로 거리에 눕혀진 여성들이 무방비로 촬영돼 그 모습이 무차별적으로 공유되기도 했다. 그 일련의 추측과 공유에서 ‘놀러 나온 여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은연중 느껴졌으며, 그것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뒤이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점점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가 군중이 몰려 일어난 압사라는 사실이 목격자들의 증언과 또 다른 방식으로 조합되었다. 남성들이 자신보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한 여성들을 밀치는 바람에 여성 희생자만 나왔다는 것이었다.

재해 후 희미한 안개와 같은 상황에서 난무하는 추측들은 대개 그 사회의 혐오 정서를 반영한다.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정부와 민간의 사실 은폐 등으로 지역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내무성에서 하달된 문서에 ‘조선인들의 방화와 테러를 주의하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를 언론이 받아 적으면서 유언비어가 양산되었다. 각지에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거짓 소문이 돌면서 수만 명의 조선인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대지진 이후라는 혼란의 시기, 그 사회의 대중은 당시의 혐오 대상인 조선인에게 굴절된 증오와 불안을 표출한 것이었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흑인폭동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백인 경찰이 검거하는 과정에서 가한 폭력으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엉뚱하게도 한인타운이 공격당해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는 ‘마약과의 전쟁’ 정책 여파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된 흑인 극빈층 사이에서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로드니 킹 사건은 일종의 발화점이었다. 그 모호한 불안의 폭발은 인종차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희생은 흑인들보다 더 입지가 좁은 한인들이 치른 것이다. 그 배경에는 흑인과 한인 사회의 혐오와 갈등이 있었다.

지나고 나서 보면 도무지 이치가 닿지 않는 이 일들은, 불안의 집단 정서가 그 사회의 가장 날것의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한 사건을 즈음해 그 시기의 갈등 지점이 어디이며, 시대적 혐오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나타나는 것이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도 전모를 알 수 없던 그 시간, 모두가 슬픔 이전 혼돈에 빠져 있을 때 경솔하게 흩뿌려진 소식들이 바로 우리 사회가 빚고 있는 갈등의 민낯이었다.

 

생존자들의 ‘진짜 증언’ 나오면서 혐오 걷혀

이태원발(發) 뜬소문이 실은 실체 없는 혐오 정서의 발현이었다는 걸 모두가 깨달은 것은 그 독한 안개가 차츰 걷히면서부터였다. 그 일은 현장에 있던 누군가의 부도덕에서 비롯된 게 아닌, 말 그대로의 ‘참사’였다. 약물 이야기는 추측에 의한 낭설일 뿐이었고, 희생자 중에는 상당수 남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생존자들의 ‘진짜 증언’이 나오면서 불확실성에 희석되어 있던 혐오도 같이 걷혀 떨어져 나갔다. 더 많은 증언이 나올수록 드러난 것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구하려 나선 수많은 이의 인간애였다.

구급대가 CPR 인력이 부족하다고 도움을 청하기가 무섭게 수많은 사람이 남녀 할 것 없이 폴리스 라인을 넘어 희생자들에게 달려갔다.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간 간호사들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큰 덩치와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올려 구해낸 장정들도 있었다. 군중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를 독려하며 어떻게든 함께 살아 나가려 했고, 함께 끼인 와중에 정신을 잃어가는 타인을 필사적으로 흔들어 깨웠다. 한 여성이 숨을 못 쉬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자기 공간을 밀어 양보해서라도 공간을 확보해 주려 애쓴 일화도 공개되었다.

사건 초반에 문을 개방해 공간을 틔워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 참사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스피커를 끄지 않아 소통을 방해했다고 비난받던 상인들도 필사적으로 시민들을 구하려 했다는 증언이 연이어 나왔다. 더 많은 증언이 나올수록 사람들이 탓하고 싶었던 ‘나쁜 사람들’은 점점 실체가 사라져 갔다. 평범한 사람들의 호의와 선의, 그리고 슬픔만이 속속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시대의 변화가 낳은 갈등과 대립은 사실 부분적인 요소의 충돌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특성을 100개로 가정한다면 그중 한 개만 주요 갈등적 특성이어도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에 적대감을 갖게 된다. 사람을 한두 가지 관념을 기준으로 해석하게 될 때 부분을 더 확대해 보는 정서가 강해진다.

우리는 서로가 싫어하는 바로 그 모습을 얼마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 중 누군가는 그런 관념의 집합체로서 존재하는 실제 나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처럼 전인격적으로 잘못된 이들이 아니다. 갈등 구도라는 필터를 통해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너머에 실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게 한다. 대립 구도 속의 여성, 혹은 남성은 추상적인 전형성을 가진 관념이고, 실제 우리는 같은 인간일 뿐이다.

깊은 상처는 직후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을 더해 가기 마련이다. 슬픔이 깊어질수록 어떠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는 과정이 한없이 아프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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