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준예산이냐, 극적 합의냐…‘예산 전쟁’ 읽는 5대 쟁점
  • 김종일·구민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8 10: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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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野, 대통령실 이전·경찰국 신설·원자로 등 尹 핵심 예산 ‘싹둑’
여야 모두 ‘패키지 협상’ 염두에 두고 ‘강대강’ 대치 전선 끌어올려
여야 대표 회동 전무…‘정치 실종→협치 실종→민생 실종’ 악순환

내년도 예산안 639조원을 둘러싼 여야의 ‘예산 국회’가 강대강 충돌 양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을 두고 진행되고 있는 예산 심사는 ‘예산 전쟁’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통상 초반에는 서로 강경하게 충돌하다가도 예산 국회가 종반전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극적 타결을 위한 물밑 협상과 대화가 이뤄지는데, 지금은 그런 기미조차 아직까진 보이지 않는다.

예산안 방향부터 ‘건전재정·긴축 기조’(국민의힘)와 ‘부자 감세 반대·민생 예산 증액’(더불어민주당)으로 완전 정반대다. 각론에서도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 관련 예산을 전면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정부 원안 사수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앞세워 ‘윤석열표 예산’을 대폭 칼질해 ‘이재명표 사업’을 되살리겠다는 입장이라 전운은 고조되고 있다.

과연 올해 국회는 12월2일이라는 법정 처리시한에 맞춰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여야는 극적 합의를 만들어낼까, 아니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맞이할까. 이를 결정할 핵심 변수와 다가올 결정적 장면들을 짚어봤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쟁점1. 역대급 ‘예산 전쟁’이 펼쳐진 이유

사실 예산안을 둘러싸고 연말 즈음에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이는 건 한두 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려되는 지점이 유독 많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국회 구도가 전례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보다 불리할 수 없는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집권 후 첫 번째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현재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은 115석으로 전체 의석의 38%에 불과하다. 제1야당 민주당은 169석으로 국회 의석 57%를 차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 외에 연대할 야당도 없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소야대 구도다.

예산안 심사가 가시밭길인 핵심 이유는 얼어붙은 정국에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전방위적인 검찰 수사, 이에 반발한 민주당의 윤석열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 등으로 정국은 이미 살얼음판이다. 여기에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서로 다른 진상 규명 방안을 두고 여야는 연일 날 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특별검사) 병행 추진을 공식화하며 대여(對與)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정치의 공간이 사라지니 협치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에 법정 처리시한 준수는 고사하고, 올해 말까지도 내년도 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해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만큼 여야의 강대강 대치 전선은 법정 처리시한이 다가올수록 점점 가팔라지는 양상이다. 이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월2일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연말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예결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준예산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예산안 심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쟁점2. ‘윤석열 예산’은 깎이고, ‘이재명 사업’은 부활

정부가 수립해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안에는 정권이 지향하는 비전과 정책의 방향이 담긴다. 집권 첫해라면 더욱 그렇다. 당연히 정부·여당 입장에선 정부 원안을 절대 사수해야 한다. 반면 야당이 나라 살림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렇듯 예산안 심사를 두고 여야의 충돌은 사실 자연스럽지만, 올해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윤석열표’ 예산은 깎고, ‘이재명표’ 예산은 늘린다는 전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양당 모두 양보가 어렵다. 여야 간 타협과 대화보다는 막판까지 정쟁과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과반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실력 행사는 ‘윤석열표’ 예산 삭감에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이 제일 감액을 벼르는 예산은 대통령실 이전 관련 비용이다. 실제 민주당은 11월16일 국토위 예산소위에서 여당이 퇴장한 가운데 단독으로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용산공원 조성사업 관련 예산 304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예산은 전부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외에도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비용과 SMR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 관련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거나 앞으로 할 예정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재명표’ 사업 예산은 대거 늘리고 있다. 민주당은 11월9일 행정안전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정부안에 빠졌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예산 7050억원을 전액 부활시켰다. 민주당은 16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지역화폐의 정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화폐는 성남시장·경기지사 출신인 이재명 대표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민주당은 이재명표 사업인 공공임대주택 사업 예산도 6조7000억원으로 대거 늘렸다.

 

쟁점3. 巨野의 실력행사…뾰족한 수 없는 與

현재 국민의힘은 예산 정국을 돌파할 여건과 전략 모두가 마땅치 않다. 우선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전체회의를 거쳐 감액 예산을 최대한 복구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에 대해선 뾰족한 방어책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결위를 제외한 17개 상임위에서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운영위, 법사위, 기재위, 외통위, 국방위, 행안위, 정보위 등 7개뿐이다.

여당은 11월17일부터 열린 내년도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를 ‘예산 전쟁 2라운드’로 삼고 있다. 예산소위에서 삭감된 윤석열 정부의 핵심 예산을 최대한 복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예산소위 구성도 민주당 9명, 국민의힘 6명으로 수적 열세라 상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각 상임위에서 줄줄이 삭감한 윤 대통령의 핵심 공약 관련 예산을 확실히 정리하고, 이재명표 사업 예산을 추가로 증액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세제개편안 통과도 큰 숙제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지금껏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소득세 과표 기준 상향, 종합부동산세 일부 완화 등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민주당은 이를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만 유리한 ‘부자 감세’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법인세 인하 등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세제개편안은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처리되는 예산 부수 법안으로 11월30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해 논의가 가능한 시간이 열흘에 불과하다. 금융투자세 도입, 소득세 과세표준 상향 조정 등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납세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여야 모두에 부담이다. 세제개편안은 기한 내에 심사를 끝내지 못하면 12월1일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쟁점4. ‘한국판 셧다운’ 준예산 현실화할까

예산 국회에서 여야의 강대당 대치는 전략적이다. 예산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고, 막판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의도된 강경 포석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해는 정부와 여야 모두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에 해당하는 준예산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준예산은 새로운 회계연도 개시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했을 때 전년도에 따라 예산을 집행하는 제도다.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한 번도 시행된 사례가 없다.

지금의 강대강 치킨게임이 이어져 여야가 11월30일까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2014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1일에는 정부가 국회로 제출한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그대로 부의된다. 관건은 정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민주당이 이를 부결시키는 경우다. 169석의 민주당은 단독으로 정부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국회에는 부결된 안건이 회기 중 다시 제출되지 못하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있다. 즉 정부는 새로운 예산안을 만들어 국회에 다시 제출해야 한다.

12월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내년 1월1일부터는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초래된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세출 예산 639조원의 47%에 달하는 300조원 규모의 재량지출 집행이 멈춘다. 준예산은 공무원 급여와 교부금 등 법정 의무지출만 집행할 수 있다. 나머지 재량지출은 일단 통제한 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과거에 시작해 계속되는 사업에 한해서만 전년도만큼 집행을 허가한다. 매년 고시되는 정책금융을 통한 주택자금 대출, 서민 대출 등이 모두 중단된다. 정부가 준비한 위기극복 예산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예산, 상당수 약자 보호를 위한 복지 예산은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쟁점5. 막판 타결 가능성과 협상 시나리오

현재 정국은 급랭 상태 그 자체지만, 초유의 준예산 사태는 여야 모두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여러 가지 협상 시나리오가 물밑에서 거론되고 있다. 관건은 예산을 둘러싼 입장차를 줄이는 것이지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수용 여부와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도 핵심 변수라는 분석이 많다.

국민의힘 속내가 좀 더 복잡하다. 대외적으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수용 불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물타기 수단이라는 비판과 함께 야당의 정치공세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판단이 우세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에는 ‘국정조사 불가피론’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집권여당이 대형 참사에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과 함께 야당 단독으로 실시하는 국정조사는 더 큰 부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국정조사를 피할 수 없다면 내년도 예산안이나 정부조직법 등 원내 주요 현안에서 대야(對野)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4선의 윤상현 의원은 “예산안 통과, 민생법안 처리 문제 이런 것들과 다 연계해 패키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시점과 여론의 흐름이 예산안 정국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야당이 시한으로 제시한 11월24일 전에 수사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로 참사의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가려진다면 야당이 국정조사를 밀어붙일 명분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여당이 불응할 경우 11월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 3당’ 단독으로라도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조사계획서를 처리하겠다고 이미 예고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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