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없는 정부에 유가족 뭉쳤다…일방적인 ‘애도 행정’ 바뀔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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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 출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한달 만에 희생자 유족들이 스스로 공식적인 모임을 만들겠다는 뜻을 처음 밝히고, 유족 협의회 결성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이 소외됐다는 지적이 계속돼온 가운데, 정부가 이제라도 소통의 창구를 만들고 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희생자 65명의 유족은 28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가칭) 준비모임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서 유족들은 "모든 희생자 유족들이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는 협의회"라며 "정부에 유족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며,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특히 참사 이후 한 달간 정부와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유족들은 "참사 한 달이 되어가지만, 유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유족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모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참사 초기부터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 해명을 하는 등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참사 직후 지금까지 계속돼왔다. 정부는 유족들과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위패 없는 합동분향소를 운영하고 추모기간을 설정했다. 진상·책임 규명이 제대로 되지 상황에서 국가배상부터 검토하겠다고 한 것 또한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다. 또 유가족 협의체 구성을 지원하겠다면서도 정부가 정한 시간에 맞춰 연락을 하지 않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공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족이 만나 소통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막으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족들은 일찌감치 다른 유족과 소통을 위해 정부에 연락처 공유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다른 유족의 연락처 제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자체 담당자 등은 개인 정보로 제공이 어렵다는 등의 답변으로 이들 간의 소통을 차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박성준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은 "정부는 유가족이 만나 소통하는 것이 두려워 사전에 차단한 것이냐. 정부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막으려 한 것 아니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환송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길에 환송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이 모습이 포착되면서 윤 대통령이 재신임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연합뉴스

158명의 생명을 앗아 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윗선'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 했지만, 현재까지 경찰, 소방, 용산구청 등 관계자 17명을 피의자로 입건하는 데 그쳤을 뿐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없다. 이 과정에 희생자들이 언제, 어떻게 사망했고, 어떻게 그 병원으로 가게 됐는지, 향후에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유족들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상황이다. 진상 규명 과정에 유족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유가족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열렸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회가 가까스로 국정조사에 합의했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 문제를 놓고 충돌하면서 진상 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민주당의 이 장관 파면 요구에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 장관의 파면을 수용할 경우 한덕수 국무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으로 책임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는 국민의힘은 "국정조사가 난항을 겪는다면 그 책임은 진상규명이라는 본질을 망각하고 협상을 가장한 협잡을 시도하는 민주당에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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