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에 “파국” 외친 노동계…출구 못 찾는 ‘강대강’ 대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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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등 노동계, 업무개시명령에 강력 반발
尹대통령 “명분 없는 요구” 일축하며 강경 태세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11월2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11월2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노동계의 '강대강' 대치가 골을 메우지 못한 채 극한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정부가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자 노동계는 이에 반발하며 "노동 계엄령, 반헌법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하철과 철도 노조 파업도 예고된 상태여서 정부의 노동정책과 갈등 조율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시멘트업 운수 종사자 2500여 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하면서 노동계를 향해 엄포를 놨다. 

윤 대통령은 엿새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집단 행동을 '국가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불법 행위'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명분 없는 요구를 계속한다면 모든 방안을 강구해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총력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를 중단하고 현장 복귀한다면, 정부가 화물운송 사업자 및 운수종사자의 어려움을 잘 살펴 풀어줄 수 있다"며 '선복귀 후협상'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이번 업무개시명령 발동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은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의 강성 노조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하며 법치주의에 입각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11월2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이봉주 위원장이 삭발 투쟁식을 마친 후 머리끈을 동여매고 있다. ⓒ 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11월2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이봉주 위원장이 삭발 투쟁식을 마친 후 머리끈을 동여매고 있다. ⓒ 연합뉴스

노동계 일제히 반발 "대통령 그릇된 노동관"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국토교통부가 명령서 송달에 착수하면서 노동계는 격앙된 분위기다. 

업무개시를 거부한 화물연대는 성명을 내고 정부 조치에 대해 "화물노동자에게 내려진 계엄령"이라고 성토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반(反)헌법적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탄압 수위가 높아질수록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응수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 거점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반발하는 집회를 열고, 지도부 삭발 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노총도 업무개시명령 즉각 철회를 요구하면서 "대통령의 그릇된 노동관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파국을 가져온다. 결과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 정부에 있음을 직시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와 교섭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또 정부의 이번 명령은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판단한 그간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되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대정부 공세에 힘을 실었다. 한국노총은 "민생과 국민경제를 볼모로 한 노동자 겁박을 멈추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화물노동자) 노동자성을 인정하라고 촉구했을 땐 '개인사업자'라더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더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강제로 업무를 지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정부가 만들었다"며 안전운임제 영구화 및 대상 확대를 비롯한 실효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동투 본격화하는 노동계…살얼음판 걷나

정부와 노동계의 살얼음판 분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주52시간제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계가 반발해 온 굵직한 정책을 예고한 데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손질 등 민감한 이슈를 잇달아 추진하면서 노정 간 긴장이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화물연대 파업에 '무관용 원칙'을 내걸며 정면 충돌했고, 서울지하철(1~8호선·9호선 일부)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전국철도노조도 이번 주 각각 파업을 예고한 상태여서 상황이 악화일로다.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대화 및 협상, 갈등 조정 역할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 파업을 계기로 파업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제정 움직임도 산업계와 정부·여당이 한 목소리로 반대하면서 노정관계 불씨로 남아 있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약속을 파기한 것도 모자라 과잉대응으로 사태를 치킨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화물연대를 협상 가치조차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를 이간질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무능·무책임·무대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태도가 사태를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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