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사라진 자리에 ‘격노’…강경해지는 尹대통령의 메시지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11.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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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지르는 사람만 있고 끄려는 사람은 없다”
‘국정 마비’ 우려에도 극렬 대치 치닫는 與野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합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10일 대선 승리 이후 당선 소감으로 이 같이 말했다. 대선을 거치며 여야 간 신경전이 극에 달한 만큼, 협치를 통해 그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겠다는 약속이었다. 윤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양식 있는 민주당 정치인과 멋지게 협치하겠다”고 수차례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을까. 대선 이후 9개월이 흐른 현재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선 협치가 사실상 실종됐다. 정부여당은 각종 정치 현안에 강경 모드를 장착했다. 야당과의 사이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여야 간 대치 국면의 장기화로 당분간 협치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자조가 나오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尹대통령의 메시지 갈수록 강경해진다”

30일 정치권엔 전운이 감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과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다. 예상 시나리오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고 내달 2일 본회의 단독 처리를 시도한다. 예산안은 정부안이 아닌 야당 수정안으로 통과되거나 법정 시한을 넘긴다. 이 경우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보이콧한다는 계획이다. 국정 마비에 가까운 파국이 예고된 셈이다.

정치권에선 “불을 댕기는 사람들만 있고 끄려는 사람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태도를 보이는 데다, 메시지 수위도 한껏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실의 강경한 태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 예고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 해임을 수용할 수 없으며, 국정조사 보이콧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각종 현안에 연일 강경 모드를 장착한 상태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김건희 여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국격과 국익을 훼손했다” “허위사실 유포만큼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실이 특정인을 형사고발한 첫 사례이자, 국회의원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한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내놓는 발언의 수위도 강경하다. 윤 대통령은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튜브 매체 ‘더탐사’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택 무단침입 논란과 관련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라”고 경고했다. 화물연대 파업에는 “명분 없는 요구” “용납할 수 없는 범죄”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갈수록 강경해진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협치’ 지운 자리에 ‘대치’…파국 치닫는 與野

윤 대통령이 ‘협치’를 멀리하는 시그널은 지난 10월25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자리에서 한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협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협력과 협조라는 단어로 대신했다”는 입장이지만, 시정연설에서 의례적으로 언급하는 단어를 생략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윤 대통령의 넥타이 색도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이었다. 통상 협치를 주문하는 자리에선 대통령의 넥타이 색을 야당의 색으로 맞춘다. 때문에 윤 대통령의 빨간 넥타이를 두고 “야당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신호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 취임 200일 넘도록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협치에 무심한 장면 중 하나다. 대통령이 취임 후 6개월 넘게 야당 지도부를 만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 사이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는 다섯 차례 만남을 가졌다. 야권에선 즉각 “대통령이 협치를 포기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야당과의 만남을 추진하지 않은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야권 공세 타깃이 된 셈이다. 

여야 간 신경전이 극렬해질수록 국정 컨트롤타워로서 윤 대통령의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있다. 당장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밑바탕이 될 예산안부터 표류 중이다. 야당이 경고한대로 수정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윤석열 정부로선 준비해 온 각종 정책을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야당의 수정안이 예산을 대폭 삭감한 버전이어서다.

일단 여야는 예산안 합의와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예산안의 경우 내달 2일까지인 법정시한을 넘기되 정기국회 마감 시한인 9일을 넘길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은 민주당에서 이날 내로 구체적 방법과 시기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결정에 따라 향후 정부여당의 대응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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