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종] 尹대통령의 ‘좁쌀 정치’…정치 아닌 대결에만 몰두
  • 이원석·구민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2 10:0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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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사과·포용 없는 윤석열 정부…‘감정의 정치’에 휩싸여
야당 안 만나는 대통령…협치와 정치 복원 의지 안 보여

하나의 사태, 두 개의 장면. 미국 철도노조 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미 의회는 30년 만에 개입을 결정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낙태권 폐지 등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던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은 파업 시 손실이 하루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우려에 초당적으로 뭉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백악관에 초청해 철도 파업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미 정치권은 파업 전에 움직였고,  초당적으로 논의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합의(deal)’를 했다. 

한국에서는 화물연대가 파업 중이다. 철도노조도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파업 정국’이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도 지금 살얼음판 경제위기 상황이다. 그러니 노정(勞政) 모두 자신의 다급함을 외친다. ‘강 대 강’ 전면전 양상이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미국이 같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한국에선 실종됐다. 거대 양당은 갈등 해결은커녕 물밑 협상을 위한 조율 역할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대통령과 야당은 국정 논의를 위한 자리조차 갖지 않았다. 그렇게 여야는 각종 민생법안은 물론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서도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정치가 사라지면 극단의 진영논리가 부각된다.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상정하는 증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그렇게 정치는 문제 해결의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그렇게 분열은 더 촉진된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벼랑 끝 민생도, 화약고 같은 갈등도 결국은 정치만이 풀어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는 크게 세 가지가 안 보인다. 소통과 사과, 포용이다. 이 세 가지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물론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과 열린 태도로 함께 국정운영을 해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게선 최근 이 세 가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6개월 전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구중궁궐’ 청와대 문을 열고 집무실까지 옮긴 윤 대통령이다. 그런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doorsteping·출근길 약식 회견) 전격 중단으로 자신과 국민 사이에 벽을 세우고, ‘내 편’만을 위한 좁은 시야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휩싸인 것이다. 소통의 문을 점점 닫고,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한 포용도 없으며, 마땅히 해야 할 사과에도 인색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감정과 대결의 정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에 대해 ‘좁쌀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이 세 가지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윤 대통령은 이성보단 ‘감정의 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른바 분노 정치다. 정치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되고 있다”고 짚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미숙하다. 절박함이 없고,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설득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정치 1번지다. 정치 복원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겐 그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그저 문재인 정부 때리기다. 정치가 아니라 대치고, 대결”이라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중도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피기보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팬덤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검찰 출신 대통령이 등장하니 타협과 설득의 정치는 생략되고 법적인 잣대가 정치를 대체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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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소통의 상징이었던 청사 1층에 가림벽 설치

윤 대통령의 좁쌀 정치는 크게 다섯 가지 장면에서 드러난다. 먼저 뉴욕 유엔 총회 참석 도중 벌어진 비속어 논란에서다.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 총회 현장에서 국내 언론사 카메라에 윤 대통령의 비속어 등이 담기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으나 윤 대통령은 ‘모르쇠’ 전략을 펴고 어떠한 사과도 내놓지 않았다. 최초 언론들은 윤 대통령이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얘기했다고 보도했으나 대통령실은 15시간 만에야 ‘국회’는 한국 야당을 뜻하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해명했다. 여기에 대해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어찌 됐든 인정할 건 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의 해명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국제외교 무대에서 우리 국회를 향해 비속어를 사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란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국정운영 파트너인 야당을 향해 사적으로라도 비속어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마땅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소 국민을 향해서라도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정도의 사과라도 나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논란 이후 야당 의원들은 사석에서 “우리를 이 XX라고 부르고 사과도 전혀 없는 대통령에게 좋은 마음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토로하고 있다.

도리어 대통령실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MBC에 돌렸다. 여기서 두 번째 장면이 나온다. MBC는 논란이 된 발언을 직접 녹화했고, 최초로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MBC가 최초 보도하면서 자막에 ‘국회’ 앞에 괄호로 ‘미국’이라고 표기하고 ‘바이든’이라고 확정적으로 보도하면서 국익에 상당한 위협을 가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실은 논란 이후 두 달이 지난 11월 중순 아세안 순방에서 MBC가 전용기에 탑승하는 것을 거부했다. 순방을 떠나기 전 48시간도 안 되는 시점에 일방적인 통보가 이뤄졌다. 이는 대통령실의 ‘뒤끝’ 논란으로 번졌다. MBC는 결국 민항기를 이용해 순방 취재에 나서야 했고,  해당 논란은 순방 내내 꺼지지 않는 이슈가 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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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與 의원 “정부가 사과에 너무 인색해선 안 돼”

이에 포용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감정이 가득 실렸다는 것이다. MBC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권의 비토가 그저 뉴욕 유엔 총회 발언 관련 보도 때문만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는 게 정가와 언론계의 분위기다. 현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 보도를 많이 해온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특히 언론의 비판에 특정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포용 없이 비판 주체에게 공세를 가하는 건 언젠가 언론 등 모든 비판의 주체를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실제 MBC가 편파적 보도를 해왔다고 하더라도, 순방에서 특정 언론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것은 긁어 부스럼이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언론의 갈등이 더 중요한 외교 무대에서의 성과를 가렸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장면은 도어스테핑 중단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에 무리하게 대통령집무실을 옮기면서 소통을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한 건물에서 일하고, 1층에 기자실을 둬 기자들과도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윤석열 정부 용산 시대의 상징이었던 도어스테핑 전격 중단 사실을 최근 발표했다. 명분은 MBC 기자가 전용기 탑승 거부에 대해 아세안 순방 직후 있었던 도어스테핑에서 퇴장하는 윤 대통령에게 재차 질문한 것 때문이었다. 대통령실은 이를 ‘불미스러운 사태’라고 표현했다. 대통령과 기자들이 만나던 청사 1층 로비엔 곧바로 가림벽이 설치됐다. 이는 물리적인 벽 이상의 심리적인 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닫힌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듯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실의 갑작스러운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MBC 기자의 질문이 다소 거칠었다고 해도 대국민 소통 창구를 닫는 것은 작은 일을 크게 키우는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평소 실언 등이 나와 골치 아프던 도어스테핑을 이참에 없애버린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후 한 언론을 통해 청사 1층 기자실의 외부 이전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으나 최근 언론을 대하는 대통령실의 태도에 비춰봤을 때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10월29일 158명의 희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 또한 참사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 규명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서다. 윤 대통령이 다른 자리를 통해 유감의 뜻을 밝히긴 했으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는 없었다. 또 국가 재난·안전의 핵심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선 책임을 물으려는 어떠한 움직임도 아직 안 보인다.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 장관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참사 유가족들은 11월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가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책임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내에서도 정부의 대응에 대해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시사저널에 “정부가 사과에 너무 인색해선 안 된다. 특히 이번 참사와 같이 많은 국민이 아파하는 일에 대해선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상민 장관의 거취도 여러 가지 정부·여당에 부담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시급하게 결정돼야 한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사실상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참사 직후부터 여권 내에서 일정하게 나오던 이야기들이다.

마지막 장면은 윤 대통령이 최근 연일 ‘자기편’만 관저로 초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11월25일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를 불러 만찬을 가졌다. 공식적으로는 관저 입주 뒤 첫 초청 행사였으나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그보다 며칠 앞서 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철규 의원 등 핵심 중 핵심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을 이미 초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이 측근들을 만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윤 대통령의 정치엔 야당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 인사 등을 초청해 만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대통령의 자리는 어느 한 진영이나 지역의 수장이 아니다”

정권이 바뀐 뒤부터 시작된 야당 인사들을 향한 대대적 수사에 대해 야권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의 갈등의 골은 깊게 파일 대로 파였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과 여당이 국정운영의 파트너이자 국회의 거대 다수인 야당을 범죄조직으로 보는 듯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포용의 부재다. 법적인 문제는 법으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가 아니라 법조인들이 내세울 만한 논리와 발언들이 계속 나온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며칠 되지도 않아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 강경 대응에만 몰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체로 일치한다. 지나치게 감정의 정치에 매어있고, 정치적 실력이 부족하며 여전히 법조인의 사고를 하고 있단 점이다. 현 정치 실종 사태의 책임도 어쨌거나 권한이 큰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더 크게 있다는 것도 대체적인 시각이다. 내놓는 해결책들도 동일하다. 결국은 대통령이 더 냉철하게 사고하고 마음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최진 원장은 “대통령의 자리는 어느 한 진영이나 지역의 수장이 아니기 때문에 초월적으로 봐야 한다. 합리적이고 냉철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라고 했다. 최창렬 교수는 “대통령이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야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고 지금의 답답한 교착상태도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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