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먹는 ‘NPL부실채권 시장’은 외려 급성장 [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7 14:05
  • 호수 17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 들어 전국 NPL 경매 진행 건수 151건 급증
전문가들 “위기 때 NPL 시장 투자 기회는 확대될 것”

경기 불황의 지표로 통하는 부실채권(NPL)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 추세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맞물리면서 연체율이 증가하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위기 때마다 역설적으로 빛을 봤던 NPL 시장이 또다시 기지개를 켤지 주목된다.

시사저널은 경매정보 플랫폼 지지옥션을 통해 경매가 진행된 전국 NPL 건수를 월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8월 8건에 불과했던 NPL이 9월 35건, 10월 46건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11월에는 36건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이후 12월31일까지 경매가 이뤄졌거나 진행 예정인 NPL은 151건으로 급증했다. 감정평가 등으로 매각기일이 잡히지 않은 NPL은 390건에 달한다. 지지옥션에 공개된 NPL에는 시중은행 6곳이 출자해 설립한 자산관리회사(AMC) 업계 1위 유암코 등이 보유한 물건도 포함돼 있다.

NPL의 담보가 되는 부동산 중 소위 ‘깡통전세’로 불리며 경매에 나와도 팔리지 않는 주택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9월13일 경매 물건이 다수 포함된 서울 강북구의 한 오피스텔 우편함에 각종 우편물이 쌓여 있는 모습.ⓒ시사저널 박정훈

불경기 때마다 주목받는 NPL 시장

NPL은 통상 원금이나 이자가 3개월 넘게 연체된 부실채권을 가리킨다. 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은행은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개 NPL을 시장에 팔아 손실을 털어낸다. NPL의 도매상 격인 AMC는 NPL을 할인된 가격에 사들인 다음 재매각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구체적으로 NPL의 담보로 잡힌 부동산이 경매에서 낙찰(매각)되면 AMC가 배당금을 가져가는 식이다.

시중에 NPL이 많이 풀린다는 건 은행이 부실화된 채권을 많이 내놓았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NPL 보유 규모는 2020년 13조9000억원, 2021년 11조8000억원, 올 상반기 10조3000억원 등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은행의 NPL 매각 규모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이는 은행 입장에서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나금융그룹 AMC인 하나F&I는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채권의) 원금상환 유예가 종료되면 미뤄뒀던 NPL 매각이 집행되면서 은행의 매각 규모가 현 수준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은행이 NPL을 매각하는 데는 각자 자체 기준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담보 물건의 장기 유찰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낙찰에 계속 실패하면서 채권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1월 서울에서 진행된 아파트 경매 162건 중 낙찰된 물건은 23건에 그쳤다. 낙찰률로 치면 14.2%에 불과하다. 이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21년여 만에 최저치다. 또 전국 아파트 낙찰률은 13년여 만에 가장 낮은 32.8%를 기록했다.

경매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 주목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PF 대출마저 힘들어지자 돈줄이 막힌 건설사들은 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최근인 11월말에는 매출액 500여억원 수준의 경남 지역 중견 건설사 동원건설산업이 2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자금난이 채권 회수율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시간문제다. 또 채권 회수율이 하락하면 NPL 시장 투자 기회는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짙다.

‘위기는 기회’란 격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NPL 시장은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불경기 때마다 관심을 끌었다. 금융권은 이미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1월 NPL 투자 전문회사인 ‘우리금융 에프앤아이(F&I)’를 출범시켰다. 2014년 민영화 과정에서 NPL 전담 회사를 매각한 우리금융이 다시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실제로 우리F&I는 출범하자마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고, 올 3분기 NPL 누적 매입 규모를 3200여억원까지 끌어올렸다. 법조계에서도 NPL 시장에 대비해 조직 개편에 나섰다. 지난 11월에는 법무법인 세종과 화우가 NPL 관리팀을 가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5년 3월10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 앞에서 응찰 예정자가 게시물을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간접투자 가능하지만 개인 리스크 커 주의 요망

최근에는 개인도 NPL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금융투자협회 통계 분석 결과, 올 1~11월 개인투자자의 국내 채권 순매수액은 18조45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3배 급증한 규모다. 다만, NPL은 같은 채권이지만 개인의 직접투자가 불가능하다. 일부 경매학원이나 컨설팅 업체에서 “개인도 NPL을 직접 거래할 수 있다”고 광고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행 대부업법은 NPL 매입 주체를 금융기관과 대부업자, 공공기관 등록 업체 등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NPL 담보 물건에 대위변제(채무를 대신 갚는 것)를 실행해 채권을 가져오거나, NPL을 보유한 AMC로부터 채권에 대한 배당금을 받기로 약속하고 물건을 대신 낙찰받을 수 있다. 일종의 간접투자인 셈이다. 하지만 수익률이 높은 NPL은 개인이 접근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게다가 담보 물건이 너무 싼값에 낙찰되거나 계속 유찰이 반복되면 수익은커녕 투자금 회수도 힘들어질 수 있다. NPL 투자의 문이 넓어진다고 해도 개인 입장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