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유격수 자리 되찾을 힘은 역시 ‘방망이’
  •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7 11: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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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성 2루로 밀어내고 거물급 유격수 새로 영입한 샌디에이고, 내년 우승 올인 위해 “공격력 강화” 선언

김하성이 2022 시즌에 기록한 승리 기여도 5.1은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 역사상 유격수 2위 기록이다. 김하성은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 3인에 올랐고, “마차도(3루수)와 함께 우리 팀의 중추”라는 칭찬을 밥 멜빈 감독으로부터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하성의 내년 시즌 전망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샌디에이고가 김하성을 두고 새로운 유격수를 전격 영입한 것이다. 샌디에이고가 메이저리그 역대 12위 규모에 해당하는 11년 2억8000만 달러 계약으로 영입한 잰더 보가츠는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승리 기여도가 5.8로 김하성과 차이가 크지 않다. 샌디에이고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89승의 샌디에이고는 101승의 뉴욕 메츠와 111승의 LA 다저스를 연거푸 잡으며 가을의 돌풍을 일으켰으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샌디에이고는 실패의 원인을 공격력 부족으로 판단했다.

10월22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의 유격수 김하성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1회 멋진 수비를 선보이고 있다.ⓒAFP 연합

새로 영입한 보가츠는 유격수 공격력 2위로 ‘검증된 타자’

가장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은 1루였다. 그러나 시장에 좋은 1루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앤서니 리조는 양키스와 재계약했고, 호세 아브레유는 샌디에이고의 구애를 뿌리치고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휴스턴과 계약했다. 샌디에이고의 프렐러 단장은 포지션과 상관없이 뛰어난 타자를 영입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공교롭게도 좋은 타자가 가장 많이 몰린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샌디에이고는 다저스를 나온 트레이 터너를 영입하려 했으나, 터너가 필라델피아를 선택하자 보가츠와 계약했다. 보가츠는 2018년 이후 공격력이 유격수 2위이자 전체 20위일 정도로 검증된 타자다. 보가츠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샌디에이고의 포지션 확장성 덕분이었다. 2루수인 제이크 크로넨워스가 1루를 맡고, 김하성이 2루로 이동하며, 운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부상이 잦은 페르난도 타티스를 외야로 내보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서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며 데뷔 후 한 번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보가츠였지만, 11년 계약이라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샌디에이고는 타티스에게도 14년 계약을 안겨줬지만, 타티스의 계약은 만 22세부터 35세까지였다. 하지만 보가츠는 30세부터 40세까지의 계약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선수의 공격력은 30세 시즌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하락이 일어난다. 때문에 다저스 같은 강팀은 선수와 계약 시 연봉을 더 주더라도 계약기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샌디에이고가 30대를 온전히 보장하는 위험한 계약을 보가츠에게 해준 건 오로지 내년 시즌에 올인하기 위해서다. 샌디에이고는 내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두 명의 중요한 선발투수인 다르빗슈 유와 블레이크 스넬, 그리고 마무리 투수인 조시 헤이더가 FA로 풀린다. 게다가 매니 마차도 역시 잔여 계약을 취소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내후년이 끝나면 김하성과 함께 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후안 소토 역시 FA가 된다. 따라서 구단은 내년을 우승할 수 있는 최적기로 보고 있다. 또한 향후 마차도와 소토를 잡기 어렵다고 본다면 특급 선수를 한 명쯤 데려오는 승부를 던져도 좋다는 판단이 보가츠 영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격수로서 공격력이 정상급인 보가츠의 약점은 역시 수비다. 수비로 막아낸 실점을 계산하는 DRS 평가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2로 유격수 부문 꼴찌였던 보가츠는 그나마 올해는 5를 기록하며 향상을 보였다. DRS 5는 수비로 5점을 막아냈다는 뜻이다. 김하성은 보가츠보다 200이닝을 덜 소화하고도 DRS 10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프렐러 단장은 “김하성은 (내년 시즌) 대부분의 시간을 2루에서 보낼 것”이라며 주전 유격수는 보가츠임을 확인시켜줬다.

실력 지상주의일 것 같은 메이저리그에는 독특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상징성이 높은 선수나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에게 더 좋은 포지션과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2004년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로드리게스는 데릭 지터보다 수비가 뛰어났다. 하지만 양키스는 팀의 상징인 지터에게 유격수를 계속 맡겼고, 로드리게스는 군말 없이 3루로 갔다.

2년 전 샌디에이고와 4년 계약을 맺은 김하성은 평균 연봉이 700만 달러인 반면 11년 계약을 맺은 보가츠는 평균 연봉이 2500만 달러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더 높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거나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더 빛나는 포지션에 있어야 티켓이 더 많이 팔린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빼어난 수비 실력으로 샌디에이고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타티스를 외야로 밀어내기 직전이었던 김하성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전천후 수비수 김하성, 공격력 높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

김하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팬그래프의 계산에 따르면 올해 6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2930만 달러어치의 활약을 한 김하성을 샌디에이고는 트레이드할 생각이 전혀 없다. 프렐러 단장은 김하성의 2루행에 대해 ‘적어도 내년에는’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일단 김하성에게 2루를 맡겼다가 마차도가 떠나는 내후년에는 3루를 맡길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자리에 가져다놓아도 수비가 안정적인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에서 ‘맥가이버 칼’과 같은 존재다.

선택권이 없는 김하성은 일단 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5년 차 옵션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2년을 더 보내면 자유 이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김하성이 유격수 자리를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첫 번째 시나리오는 보가츠가 크게 흔들리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이다. 타티스를 내야로 다시 불러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가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은 김하성이다. 하지만 이는 팀에 좋은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샌디에이고에서 남은 2년을 훌륭하게 보내고 FA가 되어 다른 팀과 유격수 계약을 맺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세 번째 시나리오도 있다. 올인 전략이 실패할 경우 샌디에이고는 다시 유망주를 모으기 위해 타티스와 보가츠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김하성도 계약이 끝나기 전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될 가능성이 높다.

‘Zips’라는 성적 예측 프로그램을 만든 댄 짐보스키는 2년 전 샌디에이고의 김하성 영입에 찬사를 보내며 김하성의 공격력(조정 OPS)이 2021년 117과 2022년 118을 거쳐 2023년 121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100이 평균인 조정 OPS에서 올해 120 이상을 기록한 유격수는 131인 보가츠를 포함해 5명밖에 없다. 지난해 김하성은 조정 OPS 73에 그쳤으나, 올해는 107로 끌어올려 짐보스키가 내놓았던 예측과 차이를 좁혔다.

김하성이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해 120대로 올라선다면, 이미 수비를 확인시켜준 김하성은 좋은 계약과 함께 유격수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그 관건은 ‘공격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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