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로 진화한 ‘트로트 영웅’ 임영웅
  • 민경원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6 15: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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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도 벅찬 고척스카이돔에서 앙코르 콘서트 열어
거액 몸값에도 김호중·송가인·영탁·이찬원 등 ‘귀한 대접’

“영웅시대 덕분에 ‘상(賞)남자’가 됐다.”

12월10~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앙코르 콘서트 ‘아임 히어로(IM HERO)’를 연 가수 임영웅의 말이다. 2016년 데뷔한 지 6년 만인 지난 5월 발표한 첫 정규앨범 ‘아임 히어로’로 114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올 연말 시상식의 주요 부문 수상을 휩쓸고 있는 데 대한 고마움을 팬덤을 향해 표현한 것이다. 지난 11월26일 서울에서 열린 ‘멜론 뮤직 어워드(MMA)’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앨범’ 등 5관왕에 오른 그는 12월13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드(AAA)’에서도 ‘올해의 스테이지’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대상’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아임 히어로(IM HERO)’에서 임영웅이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물고기뮤직 제공

‘영웅시대’ 등에 업고 연말 시상식 휩쓸어

2020년 3월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미스터트롯》)에서 우승을 차지한 임영웅의 행보는 ‘톱 7’과는 달랐다. 전속계약 기간 1년6개월 동안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등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던 그는 방송활동을 접고 앨범과 공연에 집중했다. TV를 틀면 볼 수 있던 그가 앨범을 구매하지 않고, 공연장에 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티스트가 된 것이다. 임영웅에게 몰표를 선사하며 그를 《미스터트롯》 진(眞)의 자리에 앉힌 영웅시대는 자연히 그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음원 플랫폼과 공연장 앞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보여준 화력은 기대 이상이다. 시청률 1% 안팎인 Mnet 《쇼 미 더 머니》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10·20대 팬덤에 힘입어 경연곡으로 음원차트가 도배된다. 마찬가지로 《미스터트롯》 마지막 회 시청률 35.7%를 기록한 50·60대 팬덤은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냈다. 임영웅이 발표한 신곡이 음원차트 1위가 되진 못해도 그가 발표한 곡을 차례차례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하고 다운로드하며 전곡이 음원차트 붙박이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12월 3주 차 멜론 주간차트를 살펴봐도 지난해 10월 발표한 《사랑은 늘 도망가》(22위)를 비롯해 100위권 내에 8곡이 포진해 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11월 음원 400위권 중 임영웅 노래가 16곡으로 점유율 6.2%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정규 1집을 발표한 지난 5월부터 7개월째 가수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6~10월 400위권에 포함된 곡이 14곡이었다면, 11월 더블 싱글 《폴라로이드(Polaroid)》와 《런던 보이(London Boy)》를 발표하면서 2곡이 추가됐다. 김 위원은 “신곡이 나오면 구곡이 차트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추가되는 건 아이유와 임영웅밖에 없다”고 말했다. 11월 기준 아이유는 400위권에 19곡이 올라 점유율 3.7%를 기록했다.

12월10~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앙코르 콘서트ⓒ물고기뮤직 제공

3대가 임영웅 공연 함께 관람하는 진풍경도

공연장은 이러한 강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다.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에서 8세부터 10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 관객을 만나볼 수 있다. 공연마다 연령별 출석 체크를 진행하는 임영웅은 “모든 나잇대가 다 있는 신기한 공연장”이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70대 팬 정모씨는 “딸과 손녀 등 3대가 함께 공연을 보러 온 건 처음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웅시대 팬덤 컬러인 하늘색 점퍼를 입고 응원봉을 들고 있는 모습은 관객들의 나이 차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가 앙코르 콘서트에서 선보인 셋리스트 역시 다채로웠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7개 도시에서 21회차 공연을 진행하며 17만 명을 끌어모은 지 넉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공연으로 탈바꿈했다. 웬만한 아이돌그룹도 객석을 다 채우기 힘든 고척돔에서 양일간 3만6000명을 동원했다. 앞서 12월2~4일 부산에서 사흘간 3만4500명을 만난 그는 “단순한 앙코르 콘서트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공연이라는 소식 들었냐”며 “신흥 콘서트 맛집”이라고 자부했다. “‘LA 보이’가 되어보겠다”며 내년 2월10~11일 미국 LA 돌비시어터 공연 소식을 발표할 때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가 작사ㆍ작곡에 참여한 《런던 보이》는 새로운 공연의 주춧돌이 돼줬다.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의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등장한 임영웅은 영국 근위병 차림의 백댄서와 함께 앙코르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문세 원곡을 리메이크해 KBS2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OST로 사용된 《사랑은 늘 도망가》를 부를 때는 터키 카파도키아 상공에 떠있는 열기구를 연상케 했고,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선공개된 동명의 곡을 부를 때는 드라마 속 배경처럼 제주의 푸른 바다가 넘실대며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을 선사했다.

3시간 동안 부른 26곡 중 트로트 비중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정규 1집에 수록된 《사랑해요 그대를》과 《사랑역》, 《미스터트롯》 이전에 발표한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2018), 《따라따라》(2017) 등 4곡을 묶어 “최근에 발표한 곡부터 예전에 발표한 곡까지 임영웅 트로트 메들리로 엮어서 들려드리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할 정도였다. 즉석에서 관객들이 요청하는 《소나기》 《미워요》 《두 주먹》 등을 한 소절씩 부르며 아쉬움을 달랬다. 《미스터트롯》 경연 당시 선보인 노래 중에서는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대신 그가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오갈 수 있는 가수인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이적이 작사ㆍ작곡한 발라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필두로 부캐 임영광과 함께한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푸에르토리코 출신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라틴팝 《데스파시토(Despacito)》 등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래퍼 gong이 만든 레게 힙합곡 《아비앙또(A bientot)》를 언어유희로 풀어낸 영상 ‘아비안도(我備安都)’에서는 백성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을 만드느라 고심하는 ‘건행국’ 5대 영종으로 등장해 사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타 PD 출신인 주철환은 “트로트의 3대 정서는 한(恨), 흥(興), 정(情)인데 임영웅은 곡에 맞게 완급 조절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다른 사람의 곡을 커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히트곡을 만들어간 것도 성공 요인”이라고 짚었다. 임영웅은 “400석에서 시작해 4000석, 4만 석에서 공연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생생하게 꿈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꿈을 놓지 않도록 하겠다. 고척 지붕 오늘 날려보자”며 돔 공연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순간을 만끽했다. “4만 석 공연장 오픈했는데 다 안 차면 어떻게 하냐”고 팬들을 떠보기도 했다.

임영웅의 몸값은 사실상 측정 불가다. 나훈아ㆍ심수봉 등 대선배에 이어 지난해 말 KBS 송년특집 단독쇼 《위 아 히어로 임영웅》을 노개런티로 진행하거나 지난 11월 TV조선에서 방영된 전국투어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임 히어로 임영웅 101》 정도를 제외하면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출연료를 책정할 수 없는 탓이다. 트로트 가수의 주수입원인 행사도 뛰지 않으니 개런티도 알 수 없다. 1년 기준 4억원가량의 광고 모델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상반기 5편의 광고를 촬영했으니 약 20억원 정도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는 식으로 추정할 뿐이다.

왼쪽부터 김호중·송가인·영탁·이찬원ⓒ연합뉴스·뉴시스·뉴스1

임영웅 몸값 측정 불가…김호중은 4000만원선, 송가인 3500만원선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를 운영하고 있는 이진호는 “여러 회사와 에이전시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트로트 가수 행사비 1위는 회당 출연료 4000만원 선인 김호중”이라고 밝혔다. “군대에 다녀와서 더 바빠졌고 몸값도 뛰었다”는 설명이다. 1~4위 모두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출신으로 송가인(회당 출연료 3000만~3500만원), 영탁(회당 출연료 2500만~3500만원), 이찬원(회당 출연료 2300만~2800만원)이 뒤를 이었다. 이진호는 “국가급 행사나 자선행사 등 명분이 있는 행사 금액은 1억원 선이지만 이 역시 임영웅 소속사 마음이기 때문에 임영웅 몸값은 그때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웅이 트로트 가수 최초로 고척돔에 입성했지만, 1만 석 규모의 케이스포돔(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트로트 가수 풀도 늘어났다. 김호중이 9월30일부터 10월2일까지 3회 공연을 진행했고, 영탁이 7월29~31일 3회 공연을 진행한 데 이어 11월18~20일 앙코르 콘서트 3회까지 마쳤다. 영탁은 내년 1월11일 애틀랜타를 시작으로 14일 뉴욕, 19일 샌프란시스코, 22일 LA 등 미국 4개 도시 투어도 앞두고 있다. 12월22일 《미스터트롯2》가 시작되는 만큼 이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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